책이야기

#36 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 드 보통

릴리06 2012. 11. 1. 16:35

2012.10.23-2012.10.31

 

언젠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 번 읽다가 말았던 책!

 

도서관에서 문득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빌렸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많은 호평을 받지만 나에게는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보다 덮어버린 책이 대다수였다. 이건 왜 이리 어려워~ 이러면서...

 

이번엔 차근차근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익숙한 표시가 보인다. 이 표시는 내가 책을 읽을 때 인상깊은 부분을 체크해두는, 맞다. 바로 내가 해 놓은 표시였다. 이 책을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적이 있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여기 이 익숙한 표시가 내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순간 아~~ 내가 이런 것도 안지우고 반납했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하고 음~~ 몇 년 전과 비교해서 내 생각의 변화가 보이겠군... 생각하니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래서 자기 책을 가지고 읽는 것이 더 좋은가 싶기도 하다. 하나의 책에 계속해서 변화하는 내 생각을 덧칠해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첫 번째 읽을 때는 참 무슨 사랑을 이렇게 어렵게 설명해놨냐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 읽을 때는 상황마다 딱딱 어울리는 그의 탁월한 비유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 책을 읽었던 사이의 시간만큼 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이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이 주목한 것은 인간의 양면성이 아닌가 싶다. 어떤 현실을 합리화 시키며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이성과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괴로워하는 감정, 이 어쩔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의 인산 심리를 잘 포착하고 묘사하고 있다.

 

+ 내용 정리 후

 

내가 표시해놓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깜짝 깜짝 놀라며 다 정리했다. 보통의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이런 모습인 것 같다. 만나고 결혼을 해도 관계 속에서 계속 사람은 외롭다고 한다. 혼자여서 외로운 것보다 관계 속에서 외로운 것은 더욱 답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 "이 안쪽이 피곤해.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겉보기에는 흥미로운 일들을 하는데도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아."

 

- 그 과정에 중요성이나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람도 없이.

 

- 평범한 물건을 액자에 넣으니 그 형태와 색, 울림을 관성적으로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액자는 이런 의미였다.

 

예전에 사진동아리를 할 때를 생각해보면 어떤 사진이든 크게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두면 다 그럴듯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래서 뭐든 크게 뽑는게 좋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속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과 계기가 필요하다.

 

- 솔직함(무례와는 습자지 한 장 차이)이라는 것의 장점이 뭐냐 하는 이야기는 관두고, 어쨌든 조애나는 정곡을 찔렀다. 앨리스는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렸다.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예전에는 혼자인 것이 농담과 가벼운 장난의 대상이었지만, 점점 말 못 할 무게감이 더해졌다.

 

- 앨리스가 지금 에릭을 사랑하는 것일 리가 없다면,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이 동어 반복적인 묘한 감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거울에 비친 사랑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애정의 대상보다는 감정적인 영정에서 더 많은 쾌감을 도출하는 것을 뜻한다.

 

- 고정된 상(像)과 현실적 제약의 독재에서 벗어나, 독자의 상상에 맡길 수 있다는 것이 책의 특권이다. 안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톨스토이가 정확히 밝힐 필요 있었을까?

 

- 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덕에, 호텔과 매혹적인 연인은 풍부한 상상력의 방아쇠 구실을 할 수 있었다.

 

- 그렇지만 우리가 그녀를 가여워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에릭에게 끌린 데에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들이 보기에도 매력적이라는 점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 타인의 도움 없이도 좋고 싫은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수지에게는 부러움을 살 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음식 비평가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은 폴란드 식당을 런던 최고로 꼽았고, 세상이 칭찬하거나 관심을 쏟지 않는 남자라도 사랑했다.

 

- 그녀의 자신감은 늘 확인을 받아야만 자라는, 불안전한 구조였다. 원하는 걸 얻거나,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바람이 빠지는 타이어 같아서 늘 다시 채워줘야 했고, 그게 불가능해지면 이전의 낙관이 오만한 허위로 보이는 상태로 급속히 빠져들었다.

 

- 내 필요를 고백할 때는 감정적으로 벌거숭이가 된다. 당신이 없으면 헤매게 될 거라고, 독립적인 사람처럼 보이려 애썼지만 꼭 그렇지도 않으며, 인생의 방향이나 의미도 모르는 형편없이 유약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

그러면 감정의 옷 입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른 속, 상징적인 생식기의 약함, '당신이 필요하다'는 엄청난 비밀을 남에게 들키지 않도록 만든 옷장 전체로 이루어진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조종할 수 없는 사람, 곧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시시덕거림으로써 우리를 미치게 하거나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 남들이 싫어할 만한 점을 어느 정도 자각하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비판함으로써 외부의 공격을 대부분 피할 줄 안다.

 

- 위대한 러시아 심리학자 파블로프는 덜 알려진 실험을 통해, 반응하도록 훈련하던 신호에 충분한 혼란을 주면 개가 몸을 떨고 대소변을 보면서 신경증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밝혔다.

...

종소리가 따로는 이것을 의미하다가 때로는 다른 것을 의미하면 개는 천천히 광견 상태에 빠져들었다.

 

- 평소에는 멀쩡한 사람도 사랑을 하면 편집증에 걸리고, 별별 최악의 생각을 다 한다. 편집증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따르는, 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상대를 높이 평가하니 내가 버려질 가능성이 점점 커질밖에. 하지만 일단 재앙의 시나리오에 끌려들면 사랑은 상처를 악화시킬 뿐이다.

 

- 자기가 사랑스럽게 타고났다고 생각하면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상대의 기둥 없이도 케이블을 수백미터 늘어뜨릴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해가 부족함을 벌충하므로 당신을 사랑해란 말이 덜 필요하다. 당신이 왜 날 사랑하지 않겠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본 태도다. 내가 나한테 느끼는 감정을 당신이라고 못 느끼겠어?

 

- 당신은 날 많이 사랑하지 않아라는 억압된 두려움과 내가 말도 안 되는 걱정으로 당신을 괴롭히면 안 되는데라고 타고난 심리적 규범이 폭발적으로 뒤섞여 상호 작용하는 것이 애인의 편집증을 낳는 마법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성을 찾고 성숙해지려 노력해도, 나는 조금씩 미쳐가......

 

- 사랑에서는 권력이 훨씬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정의에 의존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 누군가 이웃집 정원으로 들어가서 거기 있는 위험을 끌어안아야 한다. 용기를 내서 "커피 마시러 올래요?" 라거나 "혹시 그 영화 봤어요?" 라고 물어야 한다. 누군가 헛기침을 하고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게 좋아요." "우리 결혼할까요?"라고 말해야 한다. 자신의 말을 권력의 저울에 올려놓고, 두려워하면서 상대방이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기를 바라야 한다. 하지만 책임을 따지기는 어렵다.

...

그가 정중히 거절한다면 관심이 없나보다 하고 양해해야 할 뿐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 진실은 얻기 어려운 보물이며,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경박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편견이다. 진리는 올라야 할 산과 같아서, 위험하고 모호하며 품이 많이 든다. 도서관의 환한 불빛 아래에 학문의 좌우명은 이렇게 쓰여 있다. 읽기 힘든 책일수록 더 진리에 가깝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다. 마음이 열려 있고, 명쾌하고, 예측 가능하고 시간을 잘 지키는 애인보다는 힘들게 하는 애인이 더 카치가 있는 것 같다.

 

- 공항은 두 문화가 극적으로 부대끼는 곳이었다.

 

- 저자는 우리가 혼자만의 느낌이라고 기쁨에 떠는 연인들처럼, 독자는 책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서 외친다. '세상에, 나랑 똑같이 느끼는 사람이 있네! 나 혼자만......을 느끼는 줄 알았는데.'

 

- 독자에게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책에는 그럴듯한 편견이 따른다. 스탕달은 어떤 생각을 소설에 도입하는 것을 음악장에서 총을 쏘는 것에 비유했다.

 

- 앨리스는 생일, 축제일, 동창 모임이나 결혼식에서와 같이 당연히 행복해야 하는 때는 늘 초조했다.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 일을 즐기기가 힘들었다.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감탄을 늘어놔야 하는 경우에 그랬다. 행복해야 한다고 계속 되새기는 것보다 서글픈 일이 있을까.

 

- 흔히 아픔과 고민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지성인의 주장)...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반대 주장도 있다. 생각이 아픔이나 문제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그것들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것이다.(자연주의자의 주장)

 

- 아무리 여자를 칭찬해도, 기본적으로 에릭은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이 열등하다는 근본적인 믿음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 남자는 여성들에게 관대할 수 있었다.

 

- 앨리스로서는 이번이 처음으로 휴가 이야기를 자세히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직장에서 대강 이야기를 했지만, 수지와 대화하며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을 따져볼 참이었다.

 

- 리넨 드레서를 산 일이나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보내는 일이나, 앨리스는 고전적인 소비의 덫에 걸린 것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는 행위에 무의식적으로 깔린 목적은 단순히 그것을 가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변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스운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은 모델이 입은 옷이 아니라 모델 자체였다.

 

- 누구와 사귈 때, 사람만 달랑 올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축척된 문화가 따라오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관습이 따라온다. 특정한 지역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함께 온다. 이러한 성향은 민족성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계층과 지역과 집안의 특성이 뒤섞여 구성된다. 본인은 이 무의식적인 요소들의 집합을 정상 상태로 여린다.

 

- 약한 쪽이 자신을 드러내고, 강한 쪽은 자기를 절제하게 마련이라면, 인터뷰어는 강한 쪽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강한 쪽이라면 마키아벨리식 책략에 따라 질문을 해야겠지만, 앨리스는 단지 자신이 드러날까봐 두려워서 질문하는 쪽에 서는 것이었다.

 

-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 프로이트 식으로 이해하자면, 스스로도 모르는 자아의 영역, 해결 안 된 갈등의 영역이 광활하긴 해도, 스스로 알고 갈등의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어떤 동력이 존재한다.이러한 틀에서 꿈과 말실수는 표현법을 모색하는, 혼란스럽지만 대단히 논리적인 시도다.

 

- 친구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LED의 불빛이 밝고 희망차게 4라는 숫자를 깜빡이면, 여지없이 누구의 전화이면 좋겠다는 마음을 드러내 버렸다. 응답기 주인은 바라던 그 사람이 드디어 전화했다는 생각이 밀려드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라플랑슈 퐁탈리스가 '욕망이 성취되었다고 상상하는 심리적 각본'이라고 정의한 전형적인 소원 성취 형태였다.

 

이러한 상태는 삶의 활력도 되긴 하지만 정말 심신을 지치게 만든다.

 

- 한 사람 내부에서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믿음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 자기기만의 뚜렷한 특징이다.

 

- 책임 떠넘기기라는 고전적인 실내 놀이가 있다. 사람 두 명, 금기시되거나 위험한 일, 책임감을 느끼거나 비난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되는 놀이다. 방법은 놀이에 참가한 한 사람이, 양쪽이 원해서 일어난 일에 대해 다른 한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가도록 미묘하게 상황을 조작하는 것이다.

...

상대가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밟았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비난을 받게 될 사람)은 마지막 4단계를 취하는 사람이다.

...

"그래요, 내가 다르게 받아들여서 미안하군요. 물론 당신 잘못은 아니지요. 내 말을 잘 들어요, 앨리스. 앞으로 헷갈리고 위선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한테 보이면 고맙겠군요."

 

- 그이도 다를 바 없는 인간이구나. 조지 버나드 쇼가 말한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과장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라는 유명한 경구의 진부한 메아리였다.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까 씌워지는 그런 마음, 알고보면 그 사람도 보통의 사람인데 우린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투영시키면서 상상을 하고 만족을 느끼고자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보통의 사람이지만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 관계란 스스로 균형을 잡고자 하는 원초적이고 잔혹한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방정식으로 나타냈을 때, 두 사람이 함께 하려면 양쪽에서 40단위에 이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자. 양쪽이 20단위씩 노력을 내놓는 관계가 가장 합리적이겠지만, 원래 한쪽이 상대방보다 더 많이 노력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떻게, 또는 왜 그럴까? 덜 노력하는 편은 어떻게 정해질까? 상대가 얼마나 신경 쓰느냐를 측정하는 몹시 냉소적인 감각에 따라서 그렇게 된다.

 

- "언제나 당신보다는 내가 노력을 해야 했어요.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저 이렇게 된 게 불가피한 일은 아니었는데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으면 좋겠어요. 나는 당신을 이해하려고, 당신이 왜 그러는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화가 끓어오르고 울고 싶네요. 모든 게 쓸데 없는 낭비였어요."

 

내 주위의 대부분의 남녀관계의 마지막은 남자의 사랑의 변심? 혹은 무심함?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 중 자기 주변은 여자가 문제라고도 이야기를 하니 둘 다 문제는 있다.) 여자 혼자 관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20을 넘어 30, 35,36,37,38,39의 노력을 쏟아붓다보면 그럴수록 차오르지 않는 우물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지치고 먼저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헤어지자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나 정말 힘드니깐 너도 좀 노력해줄래?

2. 나 이제 힘들어서 치사해서 너랑 못해먹겠다.

어느 여자도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100% 1번 혹은 2번의 이유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1번과 2번이 어느 정도 섞여있냐의 문제이지. 관계를 적절히 유지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도 유지되는 관계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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