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용의자 X의 헌신 /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야기 2012. 10. 23. 23:56

2012.10.22-2012.10.23

 

'광해' 이후 볼만한 영화가 없었는데 '용의자X'가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두 천재 이과생들의 두뇌 싸움이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져들어서 본 소설이다. 영화는 평점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하던데, 소설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 펼쳐진 이미지들을 하나의 영상으로 만족시키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라서 그럴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순수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교수님들 중에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봐도 어린아이같은 구석이 있으신 분들도 많다. 복잡하고 교묘한 사회 생활에 등을 돌린 채 순수한 학문만을 파고들다보면 사람이 단순해지고 맑아지는 걸까? 

 

요즘에 책에서 이과, 문과에 대한 이야기를 유독 많이 접하는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 이과와 문과로 양분되어 있는 것인가? 어쨌든 나도 이과 성향이 강한 아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더 이과쪽의 이야기에 더욱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살아갈수록 순수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이야기 스토리를 따라 읽다보니 딱히 인상깊은 표현이나 사색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 그것은, 절대로 완벽하다고 믿고 있던 수식이 예상하지 못한 미지수 때문에 서서히 흐트러져갈 때 느끼는 감각과 비슷했다.

 

- 왜 이런 공부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학문을 하는 목적이 생겨난다. 수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로도 이어진다. 그런에 그들의 소박한 의문에 대답하지 않는 교사가 너무 많다. 아니,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가르치고 학생에게 일정한 점수를 주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모리오카가 던진 그런 질문 따위는 그냥 번잡하고 귀찮을 따름이다.

 

- 진실을 숨기는 건 괴롭다. 숨긴 채 행복을 거머쥔들 그게 진정한 행복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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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리버보이 / 팀 보울러

책이야기 2012. 10. 22. 15:32

2012.10.18-2012.10.22

 

 

사실 이 책이 청소년 도서인지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동 도서에서도 배울 점이 모두 있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도 지난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을 가다듬으며 읽기 시작했다.

 

보통 인생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를 많이 한다. 처음에는 작은 샘물에서 시작해서 좁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돌에 걸릴 때도 있고 순탄하게 내려갈 때도 있고 때론 빙 둘러갈 때도 있다. 하지만 강물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이 고난과 슬픔, 기쁨과 환희가 함께 섞여 있지만, 행복한 순간도 힘든 순간도 모두 강물의 큰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이제 인생을 마감하려는 할아버지와 그 할어버지가 손녀에게 해주고 싶은, 그리고 많은 청소년에게 해주고 싶은 인생의 진리를 이야기, 리버보이를 내세워서 풀어나가고 있는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판타지적 요소인 리버보이의 등장으로 생동감을 더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선 눈물 한 방울도 함께...

 

-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헐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아."

 

- "삶이 항상 아름다운 건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 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채이고 강한 햇살을 만나 도중에 잠깐 마르기도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은 없어. 어쨌든 계속 흘러가는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난 그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 울어야 할 순간에 울음을 참으면 병이 난다. 그 시간을 충분히 누린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소설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할아버지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아빠를 떠나보내야 했던 불과 몇 개월 전의 일들이 계속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성인인 나에게 어쩌면 가벼울 수 있는 소설이었지만 절대 가볍게 읽히지 않았다. 나는 아직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할만한 준비가 안 된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일이 너무나 일찍 나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나를 그리고 우리 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별의 인사를 나누며 인생을 정리하는 과정, 이 과정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우리 아빠를 떠나보내면서 더욱 힘들었던 점은 너무나도 참기도 힘든 극도의 슬픔 속에서 남은 사람들을 누군가를 먼저 떠나 보내기 위해서 용기를 내야한다는 점이었다. 그 용기는 나 스스로 어쩌면 타인에 의해서도 반드시 내야만 하는 용기이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지친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만 생각하면 목부터 메여오고 눈물이 줄줄 흐른다.

 

병원에 있는 한달 반동안 그렇게 집에 가고 싶어했는데, 곧 퇴원한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 영정사진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의 마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슬프고 힘든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나니 이젠 내 삶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몇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그 전에 아빠가 지갑에 친구들 사진만 있고 자기 사진이 없다며 서운해 했던 것이 생각나 다이어리에 아빠 사진을 넣어뒀고,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쓰라고 주시려고 했던 돈도 내 지갑 깊숙히 자리해 있다. 그리고 평소 연락도 자주 안한다며 많이 서운해 하셨는데, 왜 이리 서운해 했던 것만 생각이 나는지 후회만 많다.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면 데리러 와주고 서울에서 내려갈 때도 집앞에서 마치 기다리는게 아니었던 척 기다리고 계셨는데 그 아빠의 마음을 몰라줬던 내가 무뚝뚝한 성격이어서라고 변명하기도 미안한 이 마음을 어떻게 갚아나가야할지 모르겠다.

 

아빠,

 

그렇게 집에 가고 싶어했을 때 한번 갔었더라면.

내가 다정하게 다시 아빠한테 안부전화 할 수 있다면,

아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랑스러운 딸이었다면,

아빠가 그렇게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자는 아빠를 깨우기 싫어서 서울로 돌아오던 날, 깨워서 인사라도 했었다면,

 

무엇보다

우리에게도 안녕이라는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내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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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24 18:10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 2012.10.25 23:52 수정/삭제

      비밀댓글입니다

  • 2012.11.19 14:30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 릴리06 2012.11.21 16:3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란옥아, 나 지금 배고파 ㅜㅜ

#33 자기혁명 / 박경철

책이야기 2012. 10. 19. 10:18

2012.10.14-2012.10.19

 

 

나는 같은 책을 두 번 읽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새로운 내용을 읽고 싶지 아는 내용을 다시 보는 것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주말, 문득 읽을 책이 다 떨어지고 책장을 둘러보다 '자기혁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1년전에 꼼꼼하게 읽는다고 읽은 책이었는데,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너무 많고 나에게 의미가 되어주는 내용도 달라졌다. 1년 전의 내가 읽은 책과 1년 후의 내가 읽는 책은 그 사이의 나의 생각의 변화에 따라서 매우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느꼈던 점은 블로그에 내용을 정리한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은 내용의 망각 속도가 매우 달랐고, 그리고 내용의 내면화의 정도도 두드러지게 차이가 났다. 이 정리 습관을 잘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나에게 가져다 줄 큰 변화에 대한 기대에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두 번째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강조하는 자기 안의 혁명,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익숙한 것을 지양하는 자세,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항상 고민이 되는 상황에서 나의 선택의 기준은 '변화 속에 답이 있다.' 이다.

 

아래의 한 문장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 같다.

 

인생은 자기 자신에 대한 도발이고 혁명이다.

 

- 낮선 것과 조우하지 않는 한 새로운 생각은 없다. 이렇게 새로운 상황에 대한 생각들이 사유되고, 그것들이 의식에 젖어들어 나의 행동이 교정되고 내면화되는 과정이 바로 긍정적 습관화, 소위 긍정적 애티튜드의 형성이다. 반면 좁은 범위에서 습관화된 행동과 생각만 반복하게 되면, 우리는 모든 낯섦을 거부한 채 누에처럼 고치를 짓고 거기에 안주하세 된다.

 

낮선것을 만나기 위한 나의 노력은 평생동안 이어져야 할 것이다. 기성세대라는 틀 안에 나를 가두지말고 조금 더 움직이고 조금 더 생각하여 그러한 것이 나중엔 귀찮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습관화가 필요하다.

 

- 스스로 자아라고 믿는 의식은 내가 가진 편집가위로 기억하고 싶은 것, 자랑스러운 것, 앞뒤를 매끄럽게 연결하기 위해 무시해도 좋을 만한 것들만 남기고 기억을 싹둑싹둑 잘라버린 결과물이다.

 

내 기억은 생각보다 내가 가진 왜곡, 절단, 접합의 가위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억이다. 나름 객관적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그럴 순 없는 것 같다.

 

- 내 삶이 '새로운 자극 - 도전 - 생각 -축적된 사유 - 태도화 - 새로운 자극'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 속에 있어야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사건,지식,정보)하지만 본질은 단순하다."라고 말했다.

...

그 일부의 지식으로 판단하려 드는 태도가 나를 오류에 빠뜨리는 원인인 셈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과감하게 현상(내가 참이라고 인식하는 것들)을 버리고 본질을 직선으로 관통하려면, 다양한 체험적 지식을 통해 얻은 새로운 생각과 기존의 것을 비교하고 개선하는 긍정적 태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많은 지식과 정보는 내가 본질을 파악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것같지만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방해가 된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많은 정보를 아는 것보다 정화하고 필요한 정보만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인터넷으로 공부하는 것과 책으로 공부하는 것의 차이점과 비슷하지 않을까?

 

- 침묵은 온갖 충동과 감정, 유혹에 흔들리는 나를 관찰하고 경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침묵의 순간, 세계에 대한 나만의 사색이 시작되는 것이다.

 

침묵이 가장 큰 외침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침묵을 하면 상대방은 나에 대한 상상을 더 많이 하게 되면서 내가 한 어떠한 말로 이야기한 것보다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말하기보다 더 어려운 침묵하기!

 

- 만약 창의성을 고민한다면, 사람을 만나되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땅을 밟되 처음 밟는 땅을 밟고, 책을 읽되 생소한 분야를 읽어야 한다. (다양한 경험과 독서, 공상)

 

- 사물은 내가 인식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인데, 나의 인식이 정교한 프레임에 걸려 오작동한다면 나에게 사물은 혹은 우주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고, '바람풍'을 '바담풍'이라고 부르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것이 어떠 현상에 직면해서도 본질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프레임의 오류, 복잡한 현상을 하나의 프레임으로만 설명하려고 하지마라.

 

- 지금 중국에서는 한 해에 1,000만 명의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중 40퍼센트가 실업자다.

...

기업들이 자신의 이익만 증가하면 그만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주의를 견제하지 못하면 우리 청년들의 미래는 앞으로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전문분야, 첨단분야의 일자리마저 중국이 흡수해버릴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 이 '폐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의 시대'에는 상대적 욕망을 자극해서 가진 것을 버리게 하는 데 주력했는데, 이때 욕망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동원된 것이 테크놀로지, 브랜드, 스토리, 컬처 등이다.

 

- 즉 행복과 불행의 가늠자는 지루함인 것이다. 내가 행복하려면 그것을 손에 넣어도 지루하지 않은, 그것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그 빛이 사라지지 않는 대상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추구해야할 가치는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많다.

 

- 새뮤얼슨은 '행복'을 '가진 것/욕망'으로 규정했다. 가진 것을 늘리거나 욕망을 줄이는 것이 행복의 척도라는 의미다.

...

18세기 초입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었고, 자연이 생산성의 절대적 요인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것을 늘림으로써 행복해지려는 시도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상과 철학은 욕망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18세기 전후 상황이 역전되었다. 행복의 추구는 '욕망 통제'에서 '가진 것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일찍이 이 분제를 간파한 케인스는 "가진 것을 늘리려면 가지려는 욕망이 그보다 더 크게 자라야 한다."고 답했다.

...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개인의 경제적 성취와 소수집단의 부만을 대상으로 남을 때 욕망은 날카롭고 사악하며 통제 불가능해지지만, 그 대상이 사회 전체로 넓어지면 욕망은 부드럽고 선량해진다.

 

- 우리는 대개 성과의 차이가 능력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태도의 차이, 즉 집중력의 차이 때문이다.

 

- 애티튜드 혹은 태도는 전생애에 걸쳐 나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 지금까지 문명과 문화의 발달은 0.1퍼센트의 창의적 인간이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꿈꾸지 않는 것을 꿈꾸며, 모두가 보지 못하는 어두운 곳에 깃발을 꽂고 이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땅이라고 외치면, 0.9퍼센트의 안목있는 인간만이 그것을 알아보고 그들과 협력하고 후원하며 새로운 문명을 건설한 결과다. (제러미 리프킨)

 

- 수학적 지식이 바탕이 된 학문들은 탐을 쌓아올리는 특징이 있다. 반면 철학이 바탕이 되는 학문의 특징은 수평적이고 산발적이다.

...

과학기술 시대에 '높이 더 높이'를 외치며 첨답만 쌓아올리고 인문학이라는 땅을 다지지 않는다면 정작 그 탑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끝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즉, 과학기술이 하드디스크라면 인문학은 운영체제에 해당하는 셈이다.

...

물리학을 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필요하듯 인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철학을 접해야 한다.

 

제노사이드를 읽으며 고민한 이과와 문과의 역할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다. 문과(철학)없는 이과(과학기술)은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 하지만 사람은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서 머리가 가슴과 충돌하면 혼란에 빠지고 고통이 뒤따른다.

 

머리와 가슴이 부딪히고 충돌하면 정말 괴롭다. 실천하면 일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실천할 용기가 없을 때 우리는 가슴을 외면해버리고 만다. 적당한 자기 합리화와 함께~ 머리로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내 가슴도 함께 따라오고, 따라서 내 몸도 함께 움직여야 진정한 지성인이고 인격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유를 통한 실천! 나의 숙제다.

 

- '사회'라고 불리는 성인의 세계에 진입하면 '자율'이라는 이름의 더 무거운 금기가 주어진다.

 

- 어릴 때부터 참고 통제하는 습관을 익히는 것이고, 그렇게 예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공부가 가능하다고 공자는 생각했다. 즉 예는 좋든 싫든 해야만 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내키지 않지만 할 일은 하는 태도와 인내심이 길러지며, 이런 인내의 바탕 위에서 비로소 자신을 견제하고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의 사생활(도덕성편)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다. 스스로의 욕망을 참을 수 있는 아이, 결과에 이르는 길까지를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아이가 결국 성취도 좋다는 나에겐 정말 인상깊은 다큐멘터리였다. 사실은 공자도 옛날부터 그 본질을 통찰하고 있었던 진리였나보다.

 

- 새로운 환경은 이질적인 환경에서 나온다.

 

- '운명적'이라는 말은 너무 유연해서 욕망을 추구하는 나와, 좌절과 권태를 거듭하는 나 모두를 위한 변명으로 사용할 수 있다. 때문에 어떤 것이든 선택의 결과를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탁월한 말은 없다.

 

- 세상의 모든 슬로건은 콤플렉스의 반영이다. 어떤 이가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외친다면 그의 최대 약점이 바로 그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 변화는 스스로 변화하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와 같다. 매일 스스로 변화해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아침과 다른 저녁을 맞는 사람에게 변화하는 패러다임 혹인 세상은, 속속들이 들여다보이는 느린 장면이 된다.

 

-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취해야 할 <주역>의 기본원리는 계사전의 '궁즉변,변즉통,통즉구'라는 구절에 모두 녹아 있다. 이 아홉 글자의 뜻을 우리말로 풀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영원하다'는 뜻으로, 이 말은 사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선언이기도 하다.

 

온전히 자기가 경험한 만큼이 자신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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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하악하악 / 이외수

책이야기 2012. 10. 13. 21:21

2012.10.12-2012.10.13

 

- 나는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장난감도 자연 속에서 재료를 구해서 직접 만들어야 했고 간식도 자연 속에서 채취해서 자급자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시의 아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무조건 돈으로 해결한다. 창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부모를 도의 공급처로만 인식하게 된다.

 

- 꽃병을 없애주세요. 애완용 강아지나 고양이가 예쁘다고 머리르 절단해서 실내를 장식하지는 않잖아요.

 

어디선가 식물도 동물과 똑같이 감정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꽃을 꺾었을 때 하얀 진물같은 것이 식물의 피라고... 음악을 들려주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은 식물이 더 잘 자란다는 연구 결과는 매우 많이 있다. 생물에는 식물과 동물이 있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지만 어쩌면 현실 속의 우릴의 인식은 식물을 생물로 여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 가슴이 메마르면 눈물도 메마른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타인의 아픔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가슴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참 눈물이 많은데 가슴이 메마르지 않았다는 증거인가? 어쨌든 나의 너무 많은 눈물은 때론 나를 난처하게 하기도 한다.

 

- 변명을 많이 할수록 발전은 느려지고 반성을 많이 할수록 발전은 빨라진다.

 

- 꽃이 피었을 대는 꽃을 질길 줄 알고 열매가 열렸을 때는 열매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시기에 맞는 생각 과업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시기를 잘 이겨내면 다음 시기를 마치 선물처럼 받는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고는 다음 시기에 가서는 또 그 다음 시기를...... 다 필요없고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

- 과학자들의 이론에 의하면 어떤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알기 이전의 상태로 복원할 수 없다. 그 이론을 사람과의 만남에 적용시키면 어떤 사람을 알고 난 다음에는 알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결론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따위로는 완전무결하게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연은 소중하다.

 

빅픽쳐

 

- 자기보다 더 아픈 자의 고통을 헤아려본 적이 없는 자의 하소연은 대부분 엄살이거나 허영일 가능성이 높다.

 

- 내조를 잘 하는 아내는 우렁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평생을 다 바쳐 만들어가는 것이다.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편도 동화책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겠지? 아내가 평생을 다 바쳐 만들어가는 것!

 

- 많이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많이 깨닫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 세상이 그대를 과소평가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라. 그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우주 유일의 존재다.

 

나는 세상의 평가, 사람들의 평가에 많이 연연해 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 때는 내가 내 생각과 철학에 따라서 올바른 가치판단을 한 후의 행동이라는 가정이 필요하다. 가끔 드는 생각은 지금은 이런 내 사고방식이 좋지만 이러다 점점 남의 의견에도 귀를 닫게 될까봐 염려가 되기도 한다.

 

- 운이 꼬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초래한다. 하지만 헤어나는 방법이 있다. 일부러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무조건 베풀어라. 그러면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된다.

 

이 똑같은 말을 다른 책에서도 본 적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을 도우라는 말, 속는 셈치고 실천해 보아도 좋을 것 같은 이야기다.

 

- 인간은 '알았다'에서 어리석어지고 '느꼈다'에 의해서 성숙해지며 '깨우쳤다'에 의해서 자비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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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13계단 / 다카노 가즈아키

책이야기 2012. 10. 11. 22:41

2012.10.08-2012.10.11

 

 

제노사이드를 읽고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작가에게 푹 빠졌다. 그런데 그에겐 더 유명한 13계단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학교 도서실에 있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제노사이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읽기 시작했다. 제노사이드보다는 일단 분량이 적고 내용도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내용의 심오함은 절대 뒤지지 않았다.

 

이 소설은 사형제도의 모순과 이 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형제도를 찬성하고 반대하는 여러가지 입장이 있지만 사실 사형이 선고되어도 집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에게 사형제도에 대해 물어봤다면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것이 나를 비롯한 사형제도를 온전히 몸과 마음으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보통 대답이 아닐까?

 

* 사형제도에 대한 나의 단상

 

왜 그랬을까? 예전 같았으면 책을 읽으면서 그냥 이런 문제점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며 넘어갔을 것 같은데, 이 책을 보면서는 사형제도에 대해서 읽을 때마다 계속 곱씹으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대학원 소수자 인권 수업 중에 실정법과 자연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실정법은 자연법을 기준으로 삼고 만들어지는데 실정법 중에 하나인 사형제도가 자연법의 기본인 생명권을 해칠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인권 교수님이기 때문에 사형제도에 대해서 반대하시는 입장을 가지고 계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찬성하는 입장이셨다.

 

사형제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형을 시켜도 사회가 나아지지 않고 법을 통해서 계도가 되지않는데 생명권을 빼앗으면서까지 사형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냐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찬성자들은 그럼에도 약간의 개선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형수들은 정말 엄청나게 천벌받을 행동을 한 사람들이 받는 형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나 원인을 찾아보면 사회와 가정에 있다. 그 사람이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 그것이 사형제도 폐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한 소급. 어쨌든 교수님의 결론은 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 사회가 어떤 가치를 신봉하냐에 따라 사형제도를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그러고 이어지는 인권 교수님의 박정희 예찬론.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역사적인 평가로만 박정희를 알고 있지만 그 시절을 집접 겪어보신 교수님의 평가이기 때문에 그 시절이 그렇게 힘든 것만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란 참 어렵다.

 

그러면서도 학문적으로 아는 것과 내 가치관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구나 하는 걸 알았다.

 

법률의 가변성을 생각하면 함부로 생명권을 빼앗는 사형제도는 합리성과 효율성만을 근거로 내세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나도 지금 당장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해서 무어라 결론짓기 힘들고 그럴만한 깊이도 아직 없지만, 내가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연장선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고민해봤다.

 

-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자신의 본 모습이었을 것이다. 준이치는 쓰라린 굴욕감을 느꼈다. 매스컴만 아니었으면 동생 아키오는 주변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을 터였다.

 

- 이 나라에서는 흉악 범죄의 피해자가 된 순간, 사회 전체가 가해자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피해자를 괴롭힌들 사죄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요.

 

- 형법이 강제력으로 지키려는 정의는 어쩌면 불공정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지닌 참사관이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정의라는 이름하에 심판하려 할 때 그 정의에는 보편적인 기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아무리 아들을 잃었어도 남겨진 아버지에게는 지켜야 할 생활이 있는 것이다. 매일 세 차례씩 먹고, 싸고, 자는 것, 지인을 만나면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노동으로 수입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 즉 정치가를 선거에서 당선시키기 위해 범죄에 손 댄 자들이 우선적으로 용서받고 있는 것이다.

 

- 특별 배급된 단팥방에 어쩔 줄 몰라하며 맛있게 먹어 치우는 살인범들. 어째서 그들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하는가. 이래서는 희생자들이 위안을 못 받지 않는가, 하며 난고는 일종의 충격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 똑같은 처지에서 제대로 살아온 사람도 수없이 많아. 너는 그런 사람들 얼굴에 먹칠하는 놈이야.

 

- 한번 교도소에 다녀오면 손목시계를 못차요. 수갑이 떠올라서요.

오랫동안 교도관으로 있었어도 그건 몰랐어.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입니다.

 

- 법률이라는 것은 항시 권력 측이 자의적으로 이용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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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

책이야기 2012. 10. 8. 00:27

2012.10.01-2012.10.07

 

추석 때 집에 가서 읽을 책을 찾다 예전에 동생이 '한 편의 헐리웃 영화'를 보는 것같은 스릴과 즐거움이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라 읽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초반부터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는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계속 읽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 소설의 매력이다.

 

'우와~ 정말 멋진 소설이다!'라고 끝내기엔 너무 많은 내용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음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전쟁의 잔혹성, 그리고 인간의 새로운 흉악한 모습들을 계속 느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고, 나는 이 좁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아둥바둥하고 있는 것인가, 어차피 100년 뒤엔 지금의 65억 인구는 모두 죽고 없을텐데... 라는 비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어느 정도의 픽션은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소설에 반영된 내가 모르는 세상의 현실의 문제가 나를 더욱 흥미롭게 했음에 틀림없는 오랜만에 만난 판타스틱한 책!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아는 세상은 참으로 좁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말 세상은 흥미로운 일들 투성이다.

 

- 불행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보는 타인 입장인지, 직접 격는 당사자 입장인지에 따라 완전히 견해가 달랐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선 함부로 이야기해선 안된다. 내가 모르고 내뱉었던 수많은 말들이 내가 똑같은 일을 겪었을 때 나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올 때 그 부끄러움이란 정말 말로 하기 힘든 지경이다.

 

- 불가능하다던 파란색 레이져의 발명을 둘러싸고 개발에 성공한 기술자와 그를 고용한 회사 사이에 법정 투쟁이 점점 확대되었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얻은 이익이 1200억 엔 중에 발명에 대한 대가로서 기술자에게 지불된 금액은 겨우 6억 엔이었다. 원래 200억 엔의 대가를 받아야 할 것을 빼앗긴 셈이었다.

...

"문명이 한번 멸망해 봐야 알겠지. 과학 문명을 다시 부흥시키는 건 이과밖에 없어. 문과 놈들은 아무리 지나도 전기조차 못 만들걸."

...

연구 생활이 몸에 배고 난 뒤 알게 된 것은 '이과는 살아가는 데 서툴다'는 사실뿐이었다.

...

"문과 사회에서는 거짓말이나 눈속임을 잘하는 놈이 출세하지만, 과학자는 거짓말 하나라도 하면 안 돼."

 

문과와 이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의심할 것 없이 이과적 성향(이과와 문과라는 것도 어쩌면 사람들에 의해 구분지어진 흑백논리일지도 모르지만)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면 나 스스로 그 흑백논리에 갖혀서 나는 문과적 과업들, 예를 들면 독서나 글 쓰기와 담을 쌓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최근에서야 든다. 요즘 나는 글 쓰기를 좋아한다. 내가 쓴 글을 다듬어 가고 내 생각을 정리해 나갈 때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진다.

 

어쨌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챙긴다고, 현재 이과연구자들은 재주부리는 곰이 되어버린 걸까? 아무리 좋은 연구를 해도 그것을 고용한 기업 사이와의 관계에서 과학자들이 이득을 취하기란 힘든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연구밖에 모르는 과학자들, 거짓말을 털끝만큰도 하면 안되는 그런 사람들은 의외로 순수해서 거짓말이나 눈속임을 잘하는 문과인들이 보기엔 쉬운 상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우리에겐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도덕성이 필요하다.

 

확실히 문명의 발전을 몇 백년씩 당길 수 있는 방법은 이과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를 좀 더 살기 좁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문과인들과 예술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실 이런 구분은 무의미한 것 같다. 문과이냐 이과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쨌든 우리는 한 명 한 명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 이 다음 세대의 인류가 출현할 수 있는 장소는 문명국이 아니라 주변과 교통이 단절되어 있는 미개척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지역에 사는 소수 집단에서는 개체 수준의 유전자 변이가 집단 전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남미나 아프리카 부족들 사이에선 자신들의 부족의 계승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근친상간이 많이 이루어지고 자연히 유전자 변이에 따른 기형 출산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형이라는 것, 보통의 인간이랑 다르다는 것이지 꼭 열등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 보통의 인간을 뛰어넘는 생물의 탄생의 가능성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흥미 진진

 

-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 2차 세계 대전 중에서 근거리에서 적 병사와 주우한 미군 병사가 총의 방아쇠를 당긴 비율 : 20%

최전선의 병사들은 자신이 죽으리라는 공포보다 적을 죽이는 스트레스를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지. 그래서 발포율을 높일 만한 심리학 연구가 시행되었고, 베트남 전쟁의 발포율은 95%까지 급상승했어. 사격 훈련 때 표적을 원형 표적에서 인간형 표적으로 바꾸고 진짜 인간인 것처럼 자동적으로 튀어나오게 했어. 거기다 사격 성적에 따라 가벼운 징계를 내리거나 보수를 주었지.

...

죽일 상대의 거리를 멀리 두는 것이 중요해. 두 가지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어.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 예를 들어 적이 인종적으로 다르며, 언어도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다르게 되면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며 그만큼 죽이기 쉬워진다. 평소에도 다른 민족과 심리적인 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즉 스스로가 소속된 민족 집단의 우위성을 믿으며 다른 민족을 열등하다고 느끼는 인간이 전쟁에서 손쉽게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싸우는 상대가 윤리적으로도 열등한, 짐승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라고 철저하게 가르쳐 두면 정의를 위한 살육이 시작된다. 이러한 세뇌 교육이 모든 전쟁에서, 혹은 평소에도 전통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적국 사람들에게 '잽'이라거나 '딩크' 따위로 멸시하는 별칭을 붙이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

전쟁 당사자 중에서 가장 잔인한 의사를 가진 인간, 즉 전쟁 개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만큼 적으로부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없다. 살인에 뒤따르는 정신적 부담을 거의 받지 않는 환경에 있기에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잔학성을 더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

'사람은 어째서 전쟁을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명령하는 인간의 정신 병리를 먼저 해명해야 한다.

 

아프리카 소년병을 키우는 과정에서의 그 인간성의 잔혹함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추악했다. 어머니를 강간하고 칼로 찔러 죽이고, 옆에 동료를 물고 뜯고 싸우고 옆에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 전쟁의 광기. 지금 아프리카에선 많은 부족들 사이의 전쟁이 빈번하고 세계대국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진행형이다.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계속 있는한 전쟁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진정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사람들의 상처입고 황폐해진 마음, 그 마음이 계속 남아 이어지는 아주 무서운 행위라는 것을 아주 마음 아프게 느꼈다.

 

- 평소 정훈에게 감도는 부드러운 분위기는 '정'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겐토는 생각했다.

 

이 소설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이정훈이라는 한국 유학생. 일본인 작가가 정훈이라는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정보를 수집했으며 제대로 이해하고 썼음이 느껴지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 돈의 주변에는 얕은 인간만 모이네.

 

- 20만년에 달하는 인류 역사 중 의학이 발달되지 않은 약 100년 전까지 현생인류와 현저하게 용모가 다른 신생아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살해되었으리라. 인위적인 도태. 그중에서는 진화한 개체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를 없애려는 인간의 습성이 진화의 싹을 솎아내고 있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기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란 말일세.

...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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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손미나

책이야기 2012. 9. 29. 00:48

2012.09.26-2012.09.28

 

 

책을 고를 때 내 마음의 상태가 반영되는 것 같다. 다시 뜨거워지고 싶었을까? 손미나를 작가로서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남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기로 해본다.

 

초반엔 그냥 아르헨티나에 대한 이미지를 머리에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탱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2부부터는 내용에 푹 빠져 읽어내려간 것 같다. 탱고에 담겨있는 사랑에 대한 철학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순간 매료되었던 것 같다. 탱고를 사랑에 비유한 노라의 이야기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탱고, 몸치인 내가 탱고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온전히 파트너와 교감하며 탱고를 추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올 겨울에 남미를 가볼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물리적인 거리만큼 심리적인 거리도 먼 곳이긴 한 것 같다. 예전 여행 준비와는 다르게 뭔가 맑은 날 햇빛처럼 '쨍'한 느낌이 아직 오지않아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남미에 대한 의지가 조금 더 생겼다고... 하자.

 

요즘엔 어떤 책이든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을 하나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 실제로 많은 수의 아르헨티나인들은 자신이 과연 누구인가를 고민하면서 평생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영원하 이방인처럼 살아간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사람은 스페인어로 말하면서 프랑스인처럼 생각하고, 유대인처럼 일을 하며 스스로를 독일인이나 영국인이라고 착각하는 이탈리아인이다'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기 직업 외에 예술적인 일을 하나씩 더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직업이 두개인 셈이지. 나도 마찬가지고......"

 

- 카를로스 가르델. 무엇보다 그는 아름다운 탱고 선율 속에 담긴 노랫말들로 아르헨티나인들의 아픈 상처와 한을 달래준 사람이었고, 그래서 가르델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나이팅게일'이라고도 불린다면서......

 

- 그의 말대로 인생이란 결국 혼자 걷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친 영혼과 가슴을 받아줄 누군가를 끝없이 찾는 것 또한 인간의 타고난 숙명 아닐까. 때로는 그 대상이 인연이 아닌 친구일 수도 있고, 삶의 여정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간 낯선 이일 수도, 또 한 편의 시나 노래일 수도 있겠지만,

 

- "탱고를 출 때 여자에게는 다리가 하나뿐인 거나 마찬가지야. 다른 하나는 남자의 것이라고 흔히 말하지. 꼿꼿하게 서야 하지만 그에게 다리 하나를 완전히 맡겨야 해. 사랑할 때도 그렇잖아? 정말로 상대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는 완전한 사랑이란 불가능하지. 그리고 절대 발이 땅에서 떨어져서는 안 돼. 항상 한 발을 바닥에 붙인 채로 사랑하는 사람을 쓰다듬듯이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움직여야 해. 탱고는 춤이 아니야. 탱고는 그저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거지. 사실 그게 다야. 그래서 기본이 더욱 중요해. 누군가와 함께 걷기 위해선 우선 혼자 잘 걸을 수 있어야 하지. 마치 인생이 그런 것처럼."

 

- 가까운 사이일수록 각자의 시간과 공간, 또 자유를 허용해야 그 관계가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말이지. 서두르고 재촉해서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란다.

 

- 그녀의 말대로 인간이기에, 누군가엑 의지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외로운 영혼, 그것을 받아주는 상대와 음악에 맞춰 자유오 행복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시간이 탱고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탱고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 저는 탱고의 모든 것을 알고 느끼고 싶습니다. 실은 가끔 게이 바를 찾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이미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탱고는 다른 춤과 달리 남자라도 여성의 스텝을, 그리고 여성도 남성의 스텝을 배우기 위해 역할을 바꾸어 춤을 연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탱고는 상대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 잠은 잘 때건 깨어 있을 때건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는 거지. 심장이 뛰고 있어도 꿈이 없다면 그것이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 인생이란, 그녀(수영)의 말처럼 참으로 신기한 일들로 가득한 듯하다. 그래서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세상을  품는 일은 분명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고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을 얻게 해주는 값진 일이라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해 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참으로 멋진 경험이라는 것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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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결혼 못하는 남자 / 오자키 마사야(극본) 하사구치 이쿠요(글)

책이야기 2012. 9. 26. 09:41

2012.09.18-2012.09.26

 

도서실에 갔다가 일본 소설이 읽고싶어서 집을 책이다. 그런데 초반에 조금 읽다보니 예전에 우리 나라에 이런 드라마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찾아보니, 맞다! 그 드라마의 원작.

 

원래는 일본에서 드라마 각본으로 처음 만들어진 이야기인데 드라마가 워낙 히트를 치면서 소설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드라마도 제작되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주인공을 내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그려보고 움직여볼 수 있는 상상력에 있는데, 계속 지진희와 엄정화 이미지가 떠올라서 그들이 내 머릿속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 드라마를 본 건 아니지만 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래서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성공하기 힘들다. 독자들의 상상력은 어떻게든 충족시켜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미 영상으로 접한 이야기를 (실화가 아닌 이상) 다시 책으로 보는 건 비추천!

 

결혼 못하는 남자 '구아노 신스케'는 자신의 삶을 너무 사랑하고 혼자하는 일에 익숙하고 편함을 느끼다 보니 결혼을 안하는 남자가 되었는데, 이런 생활이 오래되면 나중엔 결혼 못하는 남자가 되는걸까?

 

인생은 참 별 것 없다는 생각은 많이 든다. 그래서 즐겁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살아가냐는 문제이다. 물론 배우자도 매우 중요한 '누구'에 해당하는 사람이지만 그 외에도 나랑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사람들은 너무 많다. 그런 인연들이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만들어내는 아우라가 비슷한 인연들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이 끌어당기기 위해선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지!

 

- 신기한 우연 같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 "내겐 그 혼자라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

"달라요? 뭐가 어떻게 다른데요?"

"나느 어디까지나 잠재의식 활성화라는 자기 계발의 수단으로 탄 겁니다. 그쪽은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려고 탔잖아요."

 

- 같은 언어를 쓰는 인간끼리인데도 웬일인지 켄(애견)보다 더 소통이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 지정한 사랑이란 상대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힘이다. 평생의 반려를 정하는 조건이라면 일시적인 로맨틱한 기분이 아니라 이렇게 일치되는 가치관이 제일 중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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