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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3 #21 뉴욕 다이어리 / 제환정

2012.08.22-2012.08.23

 

조만간 뉴욕에 가고 싶어서 이 책을 일어보았다.

이 책을 읽어보니 뉴욕이 꿈의 도시만은 아닌 것 같지만 뉴욕의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는만큼 보이고 경험한만큼 느낄 수 있는 것은 확실한데, 지금 나는 너무 알려고만 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위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에는 열두 달이 아니라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는 사람들은 세기말 같은 우울한 혼란을 경험한다. 무언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기대와 그 기대에 대한 부담감.

 

정말 지금의 나는 세기말을 겪고 있다. 30이라는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해질까?

 

- '즐거운 여행'의 판타지는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설렘이나 무사히 귀가해 그 여행의 전리품들을 즐길 때 완성된다. 멋진 경치를 보는 순간순간이나 기거이 보겠다 별렀던 곳에 섰을 때의 뿌듯함, 이국적인 야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느끼는 여유로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초특가 물건을 덥석 집어들 때 등의 상황을 제외하면, 여행은 낯선 곳에서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고행이다. 허나 우리의 기억은 그 순간순간을 달콤하게 미화해버린다.

 

- 혹자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아슬아슬하게 추함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극과 극은 연결되어 있다. 패셔니스타와 촌스러움은 한 끗 차이다.

 

- "너의 부모님이 혹은 할머니가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에 (백인 아이들은) "엄마는 교사이며 할머니는 가정주부예요'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우리 할머니와 엄마는 노예였어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살았어." 수업 시간에 들은 흑인 교수의 고백에 마음이 짠했다.

 

- 헤게모니 문제다. 두 언어 사이에는 언제나 힘이 작용한다. 대부분 이민 1세들은 영어보다는 모국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2세의 경우 대개 가정에서 부모가 쓰는 언어보다는 영어를 더 유창하게 한다.

 

- 사람들은 흔히 "사랑의 끝은 죽을 만큼 아프다"고 말한다. 그 집착의 대상이 사랑이라는 붕 뜬 감정인지, 혹은 그 사람인지, 아니면 그러한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이라는 낭만적이고 무시무시한 결과로 사랑이 끝났을 대 그 드라마틱한 최후는 인격 수양에 따라 추이가 달라진다.

 

나는 보통 그러한 관계에 집착을 하는 것 같다.

 

- 당신이 관광객처럼 보인다면 주인이 50센트쯤 되는 돈을 더 챙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가. 그는 아이 넷을 둔 가장일 가능성이 높고, 당신은 뉴욕을 즐기는 행복한 사람인데. 관광객다운 인심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은가.

 

-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보니 행복한 사람들이 편견이나 선입관을 더 많이 가질 수도 있단다. 행복한 사람들, 즉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모든 게 다 괜찮아'라는 낙천적인 사고를 갖는데, 문제는 이런 사고 방식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막는다는 데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사고도 불행한 사람들의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다. 어쨌든 심플하게 살던, 복잡하게 살던 그건 선택의 자유가 있으니깐.

 

- 낯익은 작품을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들어도, 선뜻 카메라를 들이대게 되지 않는다. 어쩐지 순간의 느낌이나 기억을 강제로 박제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거니와 지나는 사람들을 벽으로 막는 것 같아 미안함이 앞선다.

 

내가 5주동안 터키와 그리스를 돌아다닐 때 가장 아름다웠던 석양 풍경을 꼽자면 딱 2번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때 나는 필름이 없었다.(그 때만 해도 몇 십통의 필름을 들고 다니며 열정적으로 수동카메라를 찍으며 여행하던 시절이니...) 그 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사진을 못 찍은 아쉬움이 그 풍경과 더해져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닐지.

 

- 평생을 벌어봤자 한 점도 사지 못할 쟁쟁한 그림들과 하루를 같이 보내는 저 경비 아저씨에게 예술은 무엇일까.

 

- 춤은 시작하는 순간에 완성되고 완성되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그 찰나의 황활함과 의미들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얼마나 명쾌할까. 하지만 이런 소멸의 가능성, 예정된 죽음이 춤을 더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예술로 만든다.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나같은 인간은 미술이나 음악이나 무용이나 다같은 예술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정확히 서로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었다.

 

- 사람들은 대부분 이 '죽어버릴 것 같은 첫사랑의 열병;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그 생존의 증거로서 사랑에 대한 냉소를 백신처럼 갖고 산다.

 

사랑에 대한 냉소를 백신처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만큼 사랑을 하는데 상처를 받지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그 냉소가 애잔함과 그리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 예술가라는 직업은 얼핏 화려해 보이지만, 안정된 직업 없이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면서 고단한 노력만 기울이다 끝나는 것이 대부분.

 

 

Posted by 릴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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