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1-2013.01.25

국내에 나와있는 서핑책은 두 권밖에 없는 것 같다.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검색능력으론... 전에 읽은 책 보다는 조금 더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있고 다양한 서핑 경험들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보통 서핑에 빠진 사람들은 서핑은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니라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핑은 그 어떤 스포츠보다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운동이기 때문에 수시로 파도를 체크하고 자연을 느끼고 순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스포츠 그 이상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서핑의 그 달콤한 유혹, 언제 다시 빠져 허우적거릴 수 있을까?

한국에서의 서핑은 지리상의 조건때문에 더 큰 의지가 필요한데 나는 움직이게 될까?

나는 다시 파도를 찾아 발리로 떠나게 될까?

 

서핑을 알고 배우게 된 건 큰 행운인 것 같다.

Posted by 릴리06

2012.12.06-2012.12.11

 

- 신체기관의 진화 욕구는 동물적 본능인 데 비해 정신의 진화 욕구는 인간적 의지이기 때문에 고통을 자진하는 강한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 자연은 아름답다. 둥근 것은 아름답고 곡선은 우아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의 곡선은 불편하고 비싸다.

...

반면 직선은 쉬복 각면체는 편리하다.

...

동그라미가 포함되지 않은 사각형과 삼각현의 세계에 예측 불가능한 변화는 없다. 또 예외도 없고 빈틈도 없어서 배타적이다.

 

-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고, 그들은 재론의 여지 없이 이대로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 안정이란 다름 아닌, 보통 사람들만 가만히 참고 있으면 되는 것이고, 평화란 피지배자들이 가만히 참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 정의의 상징인 슈퍼히어로조차 악당을 쳐부술 땐 '초인적 능력'이 필요하다니, 부당함에 맞서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초월적인 능력이 필요할 정도로 어려운 일인 것일까.

 

-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베푼다는 것은 참 간단할 수는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받는 사람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게 배려해야 하고, 돕는 사람의 자기 만족보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절박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또 매일 밥 한 그릇을 주며 도와줄 것인지 아니면 돈 버는 법을 가르쳐줄 것인지, 종자돈을 빌려줘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인지 등 도움을 주는 수준과 방법도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 인생에서 행복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고, 고통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 수많은 사람들이 예술은 생활화되어야 한다고 절실하게 외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생활 속의 예술'이란 것은 경제적 여유를 기본 조건으로 한 관람, 청취, 수집 등의 '감상 문화'가 대부분이다.

 

-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는 그 즐거운 놀이 문화들, 예술에 대한 동경들, 순수한 꿈이 소박하게 이루어지는 나만의 시간들. 나를 표현하고 나를 찾고 나에게서 행복을 찾는, 꿈을 즐기는 시간들.

 여러분은 그 모든 꿈들을 언제, 왜 그만두셨는지 기억하시나요?

 

- 진정한 삶이란 '시간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물질적 소비가 주는 '소유의 기쁨'만 있는 삶은 시간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불해야 하는 쫓기는 삶에 불과한 것이다.

 

- 생각해 보니 좋은 시절이란 흘러간 것이 아니고 우리가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일 뿐이다.

 

- '예술'이란 이름의 높은 성은 이미 수많은 전위적 예술가들에 의해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숭고한 성벽을 갖추었다. 어려운 상징과 난해한 기법을 동반한 개념과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예술 작품을 느긋하게 감상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Posted by 릴리06

2012.12.02

잔잔한 특유의 감성을 잘 보여주는 일본 소설이다. 처음엔 옴니버스 구성인지 모르고 읽다가 당황했다.

 

누구나 막다른 골목에 있는 것만 같은 인생의 어려운 시절이 있다. 큰 그림, 큰 흐름에서 보면 나중엔 너무나 사소한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힘든 고통을 겪어내야 한다. 이런 시련들이 내 인생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리라는 믿음은 변함없지만,그 때마다 하나씩 생기는 내 마음의 장벽들이 순간 순간 보일 때마다 씁쓸함을 느낀다.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을 때는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그 시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다가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힘을 내서 일어서면 된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주는 어마어마한 힘이 꼭 필요하다. 내가 잘 못하는 기다리는 시간들.

 

- 무슨 일에든 지나치게 성실한 성격인 나는 모든 것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그것은 몸에 밴 버릇이랄까 타고난 성품이라서 바꿀 수 없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상담을 받을 걸 그랬나 봐. 하고 나는 마음속 깊이 수치스러워하면서 생각했다.

 

- 사람들의 일방적인 평가였지만, 지금의 사사모토 씨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보다 큰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작은 일에 마음 조리며 살고 싶지 않다. 최근의 몇몇 일들을 겪으면서 더 그런 생각이 많아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내 일은 그렇게 생각하기엔 너무 꼼꼼하고 자잘한 것도 잘 챙기는 그런 성격을 필요로 한다. 싫다. 큰 흐름, 큰 그림을 보자.

 

-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강의 흐름을 보는 것과 똑같다는 것도 알았다.

 

-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면 '다카나시는 오늘 뭘 할까.'하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평생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힘든 일을 겪을 때 저녁이 되면 힘들 것 같은데 생각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불쾌한 감정이라는 것은 말도 몸서리치게 싫다. 조금 신기한 것 같다.

 

- 니시야마만큼 솔직해지기는 아마 어렵겠지만, 그의 인생처럼 있는 그대로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Posted by 릴리06

2012.11.11

한 달 전쯤인가 어린 왕자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은 되는데 도서관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못 읽고 있다가 ipad 교보 전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간단하게 책을 빌리고 반납할 수 있어서 참 편리하고 여행 가서도 책을 가지고 가지 않아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잘 익혀두었다가 발리가서 요긴하게 써야지.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마음이 맑아지고 머리가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지금 아이들 눈에 일일이 설명해 줘야 아는 '어른'의 모습으로 보일까?

 

20대가 되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한 해 한 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이 부담은 신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의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뭐든 하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 하고 싶어지지 않을 것만 같아서... 내 마음이 늙어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내가 길들이고 길들여진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

그만큼 책임감도 많아진다는 것,

 

쉬운 책같지만 정말 어려운 책이다.

 

- 어른들은 혼자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 주어야 하니 어린 나에게는 여간 벅찬 일이 아니다.

 

'어른'인 선생님의 눈으로 평가받는 아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하긴, 아이들의 설명을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클 때가 많다.

 

-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뱀)

 

-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한테 너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니까."(여우)

 

- "매일 같은 시각에 오는 게 좋을 거야.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여우)

 

- "너희는 나의 꽃과 하나도 닮지 않았어. 너희는 아무 의미가 없어. 누구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도 길들지 않았으니까. 너희는 길들여지기 전의 여우와 같아. 길들여지기 전의 여우도 수많은 여우와 같았어. 하지만 이제 나의 친구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우가 되었지."

 

- "비밀 하나를 알려 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안녕, 잘 가." (여우)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정말 중요한 것을 볼 수 있을까? 본질을 흐리는 현상에 속으면 안된다.

 

- "네 장미가 너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은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어서는 안돼.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으니까. 너는 네 장미를 책임져야 해."(여우)

 

여우의 말 중에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다.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나에게 길들여지고 내가 길들여졌으면 나에겐 특별한 물건이 되는 것처럼, 어쩌면 인생은 나를 세상에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이야기가 아닐까?

 

- "사람들은 서둘러 급행열차에 오르지만 정작 자신들이 무엇을 찾는지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늘 분주하게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예요."

 

 

Posted by 릴리06

2012.10.23-2012.10.31

 

언젠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 번 읽다가 말았던 책!

 

도서관에서 문득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빌렸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많은 호평을 받지만 나에게는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보다 덮어버린 책이 대다수였다. 이건 왜 이리 어려워~ 이러면서...

 

이번엔 차근차근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익숙한 표시가 보인다. 이 표시는 내가 책을 읽을 때 인상깊은 부분을 체크해두는, 맞다. 바로 내가 해 놓은 표시였다. 이 책을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적이 있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여기 이 익숙한 표시가 내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순간 아~~ 내가 이런 것도 안지우고 반납했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하고 음~~ 몇 년 전과 비교해서 내 생각의 변화가 보이겠군... 생각하니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래서 자기 책을 가지고 읽는 것이 더 좋은가 싶기도 하다. 하나의 책에 계속해서 변화하는 내 생각을 덧칠해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첫 번째 읽을 때는 참 무슨 사랑을 이렇게 어렵게 설명해놨냐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 읽을 때는 상황마다 딱딱 어울리는 그의 탁월한 비유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 책을 읽었던 사이의 시간만큼 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이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이 주목한 것은 인간의 양면성이 아닌가 싶다. 어떤 현실을 합리화 시키며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이성과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괴로워하는 감정, 이 어쩔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의 인산 심리를 잘 포착하고 묘사하고 있다.

 

+ 내용 정리 후

 

내가 표시해놓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깜짝 깜짝 놀라며 다 정리했다. 보통의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이런 모습인 것 같다. 만나고 결혼을 해도 관계 속에서 계속 사람은 외롭다고 한다. 혼자여서 외로운 것보다 관계 속에서 외로운 것은 더욱 답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 "이 안쪽이 피곤해.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겉보기에는 흥미로운 일들을 하는데도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아."

 

- 그 과정에 중요성이나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람도 없이.

 

- 평범한 물건을 액자에 넣으니 그 형태와 색, 울림을 관성적으로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액자는 이런 의미였다.

 

예전에 사진동아리를 할 때를 생각해보면 어떤 사진이든 크게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두면 다 그럴듯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래서 뭐든 크게 뽑는게 좋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속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과 계기가 필요하다.

 

- 솔직함(무례와는 습자지 한 장 차이)이라는 것의 장점이 뭐냐 하는 이야기는 관두고, 어쨌든 조애나는 정곡을 찔렀다. 앨리스는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렸다.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예전에는 혼자인 것이 농담과 가벼운 장난의 대상이었지만, 점점 말 못 할 무게감이 더해졌다.

 

- 앨리스가 지금 에릭을 사랑하는 것일 리가 없다면,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이 동어 반복적인 묘한 감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거울에 비친 사랑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애정의 대상보다는 감정적인 영정에서 더 많은 쾌감을 도출하는 것을 뜻한다.

 

- 고정된 상(像)과 현실적 제약의 독재에서 벗어나, 독자의 상상에 맡길 수 있다는 것이 책의 특권이다. 안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톨스토이가 정확히 밝힐 필요 있었을까?

 

- 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덕에, 호텔과 매혹적인 연인은 풍부한 상상력의 방아쇠 구실을 할 수 있었다.

 

- 그렇지만 우리가 그녀를 가여워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에릭에게 끌린 데에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들이 보기에도 매력적이라는 점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 타인의 도움 없이도 좋고 싫은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수지에게는 부러움을 살 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음식 비평가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은 폴란드 식당을 런던 최고로 꼽았고, 세상이 칭찬하거나 관심을 쏟지 않는 남자라도 사랑했다.

 

- 그녀의 자신감은 늘 확인을 받아야만 자라는, 불안전한 구조였다. 원하는 걸 얻거나,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바람이 빠지는 타이어 같아서 늘 다시 채워줘야 했고, 그게 불가능해지면 이전의 낙관이 오만한 허위로 보이는 상태로 급속히 빠져들었다.

 

- 내 필요를 고백할 때는 감정적으로 벌거숭이가 된다. 당신이 없으면 헤매게 될 거라고, 독립적인 사람처럼 보이려 애썼지만 꼭 그렇지도 않으며, 인생의 방향이나 의미도 모르는 형편없이 유약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

그러면 감정의 옷 입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른 속, 상징적인 생식기의 약함, '당신이 필요하다'는 엄청난 비밀을 남에게 들키지 않도록 만든 옷장 전체로 이루어진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조종할 수 없는 사람, 곧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시시덕거림으로써 우리를 미치게 하거나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 남들이 싫어할 만한 점을 어느 정도 자각하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비판함으로써 외부의 공격을 대부분 피할 줄 안다.

 

- 위대한 러시아 심리학자 파블로프는 덜 알려진 실험을 통해, 반응하도록 훈련하던 신호에 충분한 혼란을 주면 개가 몸을 떨고 대소변을 보면서 신경증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밝혔다.

...

종소리가 따로는 이것을 의미하다가 때로는 다른 것을 의미하면 개는 천천히 광견 상태에 빠져들었다.

 

- 평소에는 멀쩡한 사람도 사랑을 하면 편집증에 걸리고, 별별 최악의 생각을 다 한다. 편집증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따르는, 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상대를 높이 평가하니 내가 버려질 가능성이 점점 커질밖에. 하지만 일단 재앙의 시나리오에 끌려들면 사랑은 상처를 악화시킬 뿐이다.

 

- 자기가 사랑스럽게 타고났다고 생각하면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상대의 기둥 없이도 케이블을 수백미터 늘어뜨릴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해가 부족함을 벌충하므로 당신을 사랑해란 말이 덜 필요하다. 당신이 왜 날 사랑하지 않겠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본 태도다. 내가 나한테 느끼는 감정을 당신이라고 못 느끼겠어?

 

- 당신은 날 많이 사랑하지 않아라는 억압된 두려움과 내가 말도 안 되는 걱정으로 당신을 괴롭히면 안 되는데라고 타고난 심리적 규범이 폭발적으로 뒤섞여 상호 작용하는 것이 애인의 편집증을 낳는 마법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성을 찾고 성숙해지려 노력해도, 나는 조금씩 미쳐가......

 

- 사랑에서는 권력이 훨씬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정의에 의존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 누군가 이웃집 정원으로 들어가서 거기 있는 위험을 끌어안아야 한다. 용기를 내서 "커피 마시러 올래요?" 라거나 "혹시 그 영화 봤어요?" 라고 물어야 한다. 누군가 헛기침을 하고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게 좋아요." "우리 결혼할까요?"라고 말해야 한다. 자신의 말을 권력의 저울에 올려놓고, 두려워하면서 상대방이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기를 바라야 한다. 하지만 책임을 따지기는 어렵다.

...

그가 정중히 거절한다면 관심이 없나보다 하고 양해해야 할 뿐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 진실은 얻기 어려운 보물이며,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경박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편견이다. 진리는 올라야 할 산과 같아서, 위험하고 모호하며 품이 많이 든다. 도서관의 환한 불빛 아래에 학문의 좌우명은 이렇게 쓰여 있다. 읽기 힘든 책일수록 더 진리에 가깝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다. 마음이 열려 있고, 명쾌하고, 예측 가능하고 시간을 잘 지키는 애인보다는 힘들게 하는 애인이 더 카치가 있는 것 같다.

 

- 공항은 두 문화가 극적으로 부대끼는 곳이었다.

 

- 저자는 우리가 혼자만의 느낌이라고 기쁨에 떠는 연인들처럼, 독자는 책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서 외친다. '세상에, 나랑 똑같이 느끼는 사람이 있네! 나 혼자만......을 느끼는 줄 알았는데.'

 

- 독자에게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책에는 그럴듯한 편견이 따른다. 스탕달은 어떤 생각을 소설에 도입하는 것을 음악장에서 총을 쏘는 것에 비유했다.

 

- 앨리스는 생일, 축제일, 동창 모임이나 결혼식에서와 같이 당연히 행복해야 하는 때는 늘 초조했다.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 일을 즐기기가 힘들었다.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감탄을 늘어놔야 하는 경우에 그랬다. 행복해야 한다고 계속 되새기는 것보다 서글픈 일이 있을까.

 

- 흔히 아픔과 고민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지성인의 주장)...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반대 주장도 있다. 생각이 아픔이나 문제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그것들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것이다.(자연주의자의 주장)

 

- 아무리 여자를 칭찬해도, 기본적으로 에릭은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이 열등하다는 근본적인 믿음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 남자는 여성들에게 관대할 수 있었다.

 

- 앨리스로서는 이번이 처음으로 휴가 이야기를 자세히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직장에서 대강 이야기를 했지만, 수지와 대화하며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을 따져볼 참이었다.

 

- 리넨 드레서를 산 일이나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보내는 일이나, 앨리스는 고전적인 소비의 덫에 걸린 것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는 행위에 무의식적으로 깔린 목적은 단순히 그것을 가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변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스운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은 모델이 입은 옷이 아니라 모델 자체였다.

 

- 누구와 사귈 때, 사람만 달랑 올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축척된 문화가 따라오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관습이 따라온다. 특정한 지역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함께 온다. 이러한 성향은 민족성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계층과 지역과 집안의 특성이 뒤섞여 구성된다. 본인은 이 무의식적인 요소들의 집합을 정상 상태로 여린다.

 

- 약한 쪽이 자신을 드러내고, 강한 쪽은 자기를 절제하게 마련이라면, 인터뷰어는 강한 쪽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강한 쪽이라면 마키아벨리식 책략에 따라 질문을 해야겠지만, 앨리스는 단지 자신이 드러날까봐 두려워서 질문하는 쪽에 서는 것이었다.

 

-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 프로이트 식으로 이해하자면, 스스로도 모르는 자아의 영역, 해결 안 된 갈등의 영역이 광활하긴 해도, 스스로 알고 갈등의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어떤 동력이 존재한다.이러한 틀에서 꿈과 말실수는 표현법을 모색하는, 혼란스럽지만 대단히 논리적인 시도다.

 

- 친구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LED의 불빛이 밝고 희망차게 4라는 숫자를 깜빡이면, 여지없이 누구의 전화이면 좋겠다는 마음을 드러내 버렸다. 응답기 주인은 바라던 그 사람이 드디어 전화했다는 생각이 밀려드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라플랑슈 퐁탈리스가 '욕망이 성취되었다고 상상하는 심리적 각본'이라고 정의한 전형적인 소원 성취 형태였다.

 

이러한 상태는 삶의 활력도 되긴 하지만 정말 심신을 지치게 만든다.

 

- 한 사람 내부에서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믿음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 자기기만의 뚜렷한 특징이다.

 

- 책임 떠넘기기라는 고전적인 실내 놀이가 있다. 사람 두 명, 금기시되거나 위험한 일, 책임감을 느끼거나 비난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되는 놀이다. 방법은 놀이에 참가한 한 사람이, 양쪽이 원해서 일어난 일에 대해 다른 한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가도록 미묘하게 상황을 조작하는 것이다.

...

상대가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밟았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비난을 받게 될 사람)은 마지막 4단계를 취하는 사람이다.

...

"그래요, 내가 다르게 받아들여서 미안하군요. 물론 당신 잘못은 아니지요. 내 말을 잘 들어요, 앨리스. 앞으로 헷갈리고 위선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한테 보이면 고맙겠군요."

 

- 그이도 다를 바 없는 인간이구나. 조지 버나드 쇼가 말한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과장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라는 유명한 경구의 진부한 메아리였다.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까 씌워지는 그런 마음, 알고보면 그 사람도 보통의 사람인데 우린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투영시키면서 상상을 하고 만족을 느끼고자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보통의 사람이지만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 관계란 스스로 균형을 잡고자 하는 원초적이고 잔혹한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방정식으로 나타냈을 때, 두 사람이 함께 하려면 양쪽에서 40단위에 이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자. 양쪽이 20단위씩 노력을 내놓는 관계가 가장 합리적이겠지만, 원래 한쪽이 상대방보다 더 많이 노력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떻게, 또는 왜 그럴까? 덜 노력하는 편은 어떻게 정해질까? 상대가 얼마나 신경 쓰느냐를 측정하는 몹시 냉소적인 감각에 따라서 그렇게 된다.

 

- "언제나 당신보다는 내가 노력을 해야 했어요.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저 이렇게 된 게 불가피한 일은 아니었는데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으면 좋겠어요. 나는 당신을 이해하려고, 당신이 왜 그러는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화가 끓어오르고 울고 싶네요. 모든 게 쓸데 없는 낭비였어요."

 

내 주위의 대부분의 남녀관계의 마지막은 남자의 사랑의 변심? 혹은 무심함?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 중 자기 주변은 여자가 문제라고도 이야기를 하니 둘 다 문제는 있다.) 여자 혼자 관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20을 넘어 30, 35,36,37,38,39의 노력을 쏟아붓다보면 그럴수록 차오르지 않는 우물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지치고 먼저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헤어지자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나 정말 힘드니깐 너도 좀 노력해줄래?

2. 나 이제 힘들어서 치사해서 너랑 못해먹겠다.

어느 여자도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100% 1번 혹은 2번의 이유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1번과 2번이 어느 정도 섞여있냐의 문제이지. 관계를 적절히 유지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도 유지되는 관계는 없나?

 

 

Posted by 릴리06

2012.10.22-2012.10.23

 

'광해' 이후 볼만한 영화가 없었는데 '용의자X'가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두 천재 이과생들의 두뇌 싸움이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져들어서 본 소설이다. 영화는 평점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하던데, 소설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 펼쳐진 이미지들을 하나의 영상으로 만족시키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라서 그럴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순수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교수님들 중에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봐도 어린아이같은 구석이 있으신 분들도 많다. 복잡하고 교묘한 사회 생활에 등을 돌린 채 순수한 학문만을 파고들다보면 사람이 단순해지고 맑아지는 걸까? 

 

요즘에 책에서 이과, 문과에 대한 이야기를 유독 많이 접하는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 이과와 문과로 양분되어 있는 것인가? 어쨌든 나도 이과 성향이 강한 아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더 이과쪽의 이야기에 더욱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살아갈수록 순수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이야기 스토리를 따라 읽다보니 딱히 인상깊은 표현이나 사색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 그것은, 절대로 완벽하다고 믿고 있던 수식이 예상하지 못한 미지수 때문에 서서히 흐트러져갈 때 느끼는 감각과 비슷했다.

 

- 왜 이런 공부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학문을 하는 목적이 생겨난다. 수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로도 이어진다. 그런에 그들의 소박한 의문에 대답하지 않는 교사가 너무 많다. 아니,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가르치고 학생에게 일정한 점수를 주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모리오카가 던진 그런 질문 따위는 그냥 번잡하고 귀찮을 따름이다.

 

- 진실을 숨기는 건 괴롭다. 숨긴 채 행복을 거머쥔들 그게 진정한 행복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릴리06

2012.10.18-2012.10.22

 

 

사실 이 책이 청소년 도서인지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동 도서에서도 배울 점이 모두 있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도 지난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을 가다듬으며 읽기 시작했다.

 

보통 인생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를 많이 한다. 처음에는 작은 샘물에서 시작해서 좁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돌에 걸릴 때도 있고 순탄하게 내려갈 때도 있고 때론 빙 둘러갈 때도 있다. 하지만 강물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이 고난과 슬픔, 기쁨과 환희가 함께 섞여 있지만, 행복한 순간도 힘든 순간도 모두 강물의 큰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이제 인생을 마감하려는 할아버지와 그 할어버지가 손녀에게 해주고 싶은, 그리고 많은 청소년에게 해주고 싶은 인생의 진리를 이야기, 리버보이를 내세워서 풀어나가고 있는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판타지적 요소인 리버보이의 등장으로 생동감을 더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선 눈물 한 방울도 함께...

 

-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헐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아."

 

- "삶이 항상 아름다운 건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 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채이고 강한 햇살을 만나 도중에 잠깐 마르기도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은 없어. 어쨌든 계속 흘러가는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난 그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 울어야 할 순간에 울음을 참으면 병이 난다. 그 시간을 충분히 누린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소설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할아버지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아빠를 떠나보내야 했던 불과 몇 개월 전의 일들이 계속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성인인 나에게 어쩌면 가벼울 수 있는 소설이었지만 절대 가볍게 읽히지 않았다. 나는 아직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할만한 준비가 안 된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일이 너무나 일찍 나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나를 그리고 우리 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별의 인사를 나누며 인생을 정리하는 과정, 이 과정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우리 아빠를 떠나보내면서 더욱 힘들었던 점은 너무나도 참기도 힘든 극도의 슬픔 속에서 남은 사람들을 누군가를 먼저 떠나 보내기 위해서 용기를 내야한다는 점이었다. 그 용기는 나 스스로 어쩌면 타인에 의해서도 반드시 내야만 하는 용기이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지친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만 생각하면 목부터 메여오고 눈물이 줄줄 흐른다.

 

병원에 있는 한달 반동안 그렇게 집에 가고 싶어했는데, 곧 퇴원한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 영정사진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의 마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슬프고 힘든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나니 이젠 내 삶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몇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그 전에 아빠가 지갑에 친구들 사진만 있고 자기 사진이 없다며 서운해 했던 것이 생각나 다이어리에 아빠 사진을 넣어뒀고,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쓰라고 주시려고 했던 돈도 내 지갑 깊숙히 자리해 있다. 그리고 평소 연락도 자주 안한다며 많이 서운해 하셨는데, 왜 이리 서운해 했던 것만 생각이 나는지 후회만 많다.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면 데리러 와주고 서울에서 내려갈 때도 집앞에서 마치 기다리는게 아니었던 척 기다리고 계셨는데 그 아빠의 마음을 몰라줬던 내가 무뚝뚝한 성격이어서라고 변명하기도 미안한 이 마음을 어떻게 갚아나가야할지 모르겠다.

 

아빠,

 

그렇게 집에 가고 싶어했을 때 한번 갔었더라면.

내가 다정하게 다시 아빠한테 안부전화 할 수 있다면,

아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랑스러운 딸이었다면,

아빠가 그렇게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자는 아빠를 깨우기 싫어서 서울로 돌아오던 날, 깨워서 인사라도 했었다면,

 

무엇보다

우리에게도 안녕이라는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내가 미안해.

 

Posted by 릴리06

2012.10.12-2012.10.13

 

- 나는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장난감도 자연 속에서 재료를 구해서 직접 만들어야 했고 간식도 자연 속에서 채취해서 자급자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시의 아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무조건 돈으로 해결한다. 창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부모를 도의 공급처로만 인식하게 된다.

 

- 꽃병을 없애주세요. 애완용 강아지나 고양이가 예쁘다고 머리르 절단해서 실내를 장식하지는 않잖아요.

 

어디선가 식물도 동물과 똑같이 감정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꽃을 꺾었을 때 하얀 진물같은 것이 식물의 피라고... 음악을 들려주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은 식물이 더 잘 자란다는 연구 결과는 매우 많이 있다. 생물에는 식물과 동물이 있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치지만 어쩌면 현실 속의 우릴의 인식은 식물을 생물로 여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 가슴이 메마르면 눈물도 메마른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타인의 아픔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가슴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참 눈물이 많은데 가슴이 메마르지 않았다는 증거인가? 어쨌든 나의 너무 많은 눈물은 때론 나를 난처하게 하기도 한다.

 

- 변명을 많이 할수록 발전은 느려지고 반성을 많이 할수록 발전은 빨라진다.

 

- 꽃이 피었을 대는 꽃을 질길 줄 알고 열매가 열렸을 때는 열매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시기에 맞는 생각 과업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시기를 잘 이겨내면 다음 시기를 마치 선물처럼 받는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고는 다음 시기에 가서는 또 그 다음 시기를...... 다 필요없고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

- 과학자들의 이론에 의하면 어떤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알기 이전의 상태로 복원할 수 없다. 그 이론을 사람과의 만남에 적용시키면 어떤 사람을 알고 난 다음에는 알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결론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따위로는 완전무결하게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연은 소중하다.

 

빅픽쳐

 

- 자기보다 더 아픈 자의 고통을 헤아려본 적이 없는 자의 하소연은 대부분 엄살이거나 허영일 가능성이 높다.

 

- 내조를 잘 하는 아내는 우렁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평생을 다 바쳐 만들어가는 것이다.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편도 동화책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겠지? 아내가 평생을 다 바쳐 만들어가는 것!

 

- 많이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많이 깨닫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 세상이 그대를 과소평가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라. 그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우주 유일의 존재다.

 

나는 세상의 평가, 사람들의 평가에 많이 연연해 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 때는 내가 내 생각과 철학에 따라서 올바른 가치판단을 한 후의 행동이라는 가정이 필요하다. 가끔 드는 생각은 지금은 이런 내 사고방식이 좋지만 이러다 점점 남의 의견에도 귀를 닫게 될까봐 염려가 되기도 한다.

 

- 운이 꼬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초래한다. 하지만 헤어나는 방법이 있다. 일부러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무조건 베풀어라. 그러면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된다.

 

이 똑같은 말을 다른 책에서도 본 적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을 도우라는 말, 속는 셈치고 실천해 보아도 좋을 것 같은 이야기다.

 

- 인간은 '알았다'에서 어리석어지고 '느꼈다'에 의해서 성숙해지며 '깨우쳤다'에 의해서 자비로워진다.

 

 

Posted by 릴리06

2012.10.01-2012.10.07

 

추석 때 집에 가서 읽을 책을 찾다 예전에 동생이 '한 편의 헐리웃 영화'를 보는 것같은 스릴과 즐거움이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라 읽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초반부터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는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계속 읽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 소설의 매력이다.

 

'우와~ 정말 멋진 소설이다!'라고 끝내기엔 너무 많은 내용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음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전쟁의 잔혹성, 그리고 인간의 새로운 흉악한 모습들을 계속 느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고, 나는 이 좁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아둥바둥하고 있는 것인가, 어차피 100년 뒤엔 지금의 65억 인구는 모두 죽고 없을텐데... 라는 비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어느 정도의 픽션은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소설에 반영된 내가 모르는 세상의 현실의 문제가 나를 더욱 흥미롭게 했음에 틀림없는 오랜만에 만난 판타스틱한 책!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아는 세상은 참으로 좁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말 세상은 흥미로운 일들 투성이다.

 

- 불행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보는 타인 입장인지, 직접 격는 당사자 입장인지에 따라 완전히 견해가 달랐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선 함부로 이야기해선 안된다. 내가 모르고 내뱉었던 수많은 말들이 내가 똑같은 일을 겪었을 때 나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올 때 그 부끄러움이란 정말 말로 하기 힘든 지경이다.

 

- 불가능하다던 파란색 레이져의 발명을 둘러싸고 개발에 성공한 기술자와 그를 고용한 회사 사이에 법정 투쟁이 점점 확대되었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얻은 이익이 1200억 엔 중에 발명에 대한 대가로서 기술자에게 지불된 금액은 겨우 6억 엔이었다. 원래 200억 엔의 대가를 받아야 할 것을 빼앗긴 셈이었다.

...

"문명이 한번 멸망해 봐야 알겠지. 과학 문명을 다시 부흥시키는 건 이과밖에 없어. 문과 놈들은 아무리 지나도 전기조차 못 만들걸."

...

연구 생활이 몸에 배고 난 뒤 알게 된 것은 '이과는 살아가는 데 서툴다'는 사실뿐이었다.

...

"문과 사회에서는 거짓말이나 눈속임을 잘하는 놈이 출세하지만, 과학자는 거짓말 하나라도 하면 안 돼."

 

문과와 이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의심할 것 없이 이과적 성향(이과와 문과라는 것도 어쩌면 사람들에 의해 구분지어진 흑백논리일지도 모르지만)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면 나 스스로 그 흑백논리에 갖혀서 나는 문과적 과업들, 예를 들면 독서나 글 쓰기와 담을 쌓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최근에서야 든다. 요즘 나는 글 쓰기를 좋아한다. 내가 쓴 글을 다듬어 가고 내 생각을 정리해 나갈 때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진다.

 

어쨌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챙긴다고, 현재 이과연구자들은 재주부리는 곰이 되어버린 걸까? 아무리 좋은 연구를 해도 그것을 고용한 기업 사이와의 관계에서 과학자들이 이득을 취하기란 힘든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연구밖에 모르는 과학자들, 거짓말을 털끝만큰도 하면 안되는 그런 사람들은 의외로 순수해서 거짓말이나 눈속임을 잘하는 문과인들이 보기엔 쉬운 상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우리에겐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도덕성이 필요하다.

 

확실히 문명의 발전을 몇 백년씩 당길 수 있는 방법은 이과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를 좀 더 살기 좁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문과인들과 예술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실 이런 구분은 무의미한 것 같다. 문과이냐 이과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쨌든 우리는 한 명 한 명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 이 다음 세대의 인류가 출현할 수 있는 장소는 문명국이 아니라 주변과 교통이 단절되어 있는 미개척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지역에 사는 소수 집단에서는 개체 수준의 유전자 변이가 집단 전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남미나 아프리카 부족들 사이에선 자신들의 부족의 계승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근친상간이 많이 이루어지고 자연히 유전자 변이에 따른 기형 출산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형이라는 것, 보통의 인간이랑 다르다는 것이지 꼭 열등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 보통의 인간을 뛰어넘는 생물의 탄생의 가능성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흥미 진진

 

-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 2차 세계 대전 중에서 근거리에서 적 병사와 주우한 미군 병사가 총의 방아쇠를 당긴 비율 : 20%

최전선의 병사들은 자신이 죽으리라는 공포보다 적을 죽이는 스트레스를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지. 그래서 발포율을 높일 만한 심리학 연구가 시행되었고, 베트남 전쟁의 발포율은 95%까지 급상승했어. 사격 훈련 때 표적을 원형 표적에서 인간형 표적으로 바꾸고 진짜 인간인 것처럼 자동적으로 튀어나오게 했어. 거기다 사격 성적에 따라 가벼운 징계를 내리거나 보수를 주었지.

...

죽일 상대의 거리를 멀리 두는 것이 중요해. 두 가지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어.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 예를 들어 적이 인종적으로 다르며, 언어도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다르게 되면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며 그만큼 죽이기 쉬워진다. 평소에도 다른 민족과 심리적인 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즉 스스로가 소속된 민족 집단의 우위성을 믿으며 다른 민족을 열등하다고 느끼는 인간이 전쟁에서 손쉽게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싸우는 상대가 윤리적으로도 열등한, 짐승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라고 철저하게 가르쳐 두면 정의를 위한 살육이 시작된다. 이러한 세뇌 교육이 모든 전쟁에서, 혹은 평소에도 전통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적국 사람들에게 '잽'이라거나 '딩크' 따위로 멸시하는 별칭을 붙이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

전쟁 당사자 중에서 가장 잔인한 의사를 가진 인간, 즉 전쟁 개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만큼 적으로부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없다. 살인에 뒤따르는 정신적 부담을 거의 받지 않는 환경에 있기에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잔학성을 더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

'사람은 어째서 전쟁을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명령하는 인간의 정신 병리를 먼저 해명해야 한다.

 

아프리카 소년병을 키우는 과정에서의 그 인간성의 잔혹함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추악했다. 어머니를 강간하고 칼로 찔러 죽이고, 옆에 동료를 물고 뜯고 싸우고 옆에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 전쟁의 광기. 지금 아프리카에선 많은 부족들 사이의 전쟁이 빈번하고 세계대국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진행형이다.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계속 있는한 전쟁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진정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사람들의 상처입고 황폐해진 마음, 그 마음이 계속 남아 이어지는 아주 무서운 행위라는 것을 아주 마음 아프게 느꼈다.

 

- 평소 정훈에게 감도는 부드러운 분위기는 '정'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겐토는 생각했다.

 

이 소설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이정훈이라는 한국 유학생. 일본인 작가가 정훈이라는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정보를 수집했으며 제대로 이해하고 썼음이 느껴지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 돈의 주변에는 얕은 인간만 모이네.

 

- 20만년에 달하는 인류 역사 중 의학이 발달되지 않은 약 100년 전까지 현생인류와 현저하게 용모가 다른 신생아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살해되었으리라. 인위적인 도태. 그중에서는 진화한 개체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를 없애려는 인간의 습성이 진화의 싹을 솎아내고 있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기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란 말일세.

...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Posted by 릴리06

2012.09.26-2012.09.28

 

 

책을 고를 때 내 마음의 상태가 반영되는 것 같다. 다시 뜨거워지고 싶었을까? 손미나를 작가로서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남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기로 해본다.

 

초반엔 그냥 아르헨티나에 대한 이미지를 머리에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탱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2부부터는 내용에 푹 빠져 읽어내려간 것 같다. 탱고에 담겨있는 사랑에 대한 철학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순간 매료되었던 것 같다. 탱고를 사랑에 비유한 노라의 이야기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탱고, 몸치인 내가 탱고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온전히 파트너와 교감하며 탱고를 추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올 겨울에 남미를 가볼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물리적인 거리만큼 심리적인 거리도 먼 곳이긴 한 것 같다. 예전 여행 준비와는 다르게 뭔가 맑은 날 햇빛처럼 '쨍'한 느낌이 아직 오지않아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남미에 대한 의지가 조금 더 생겼다고... 하자.

 

요즘엔 어떤 책이든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을 하나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 실제로 많은 수의 아르헨티나인들은 자신이 과연 누구인가를 고민하면서 평생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영원하 이방인처럼 살아간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사람은 스페인어로 말하면서 프랑스인처럼 생각하고, 유대인처럼 일을 하며 스스로를 독일인이나 영국인이라고 착각하는 이탈리아인이다'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기 직업 외에 예술적인 일을 하나씩 더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직업이 두개인 셈이지. 나도 마찬가지고......"

 

- 카를로스 가르델. 무엇보다 그는 아름다운 탱고 선율 속에 담긴 노랫말들로 아르헨티나인들의 아픈 상처와 한을 달래준 사람이었고, 그래서 가르델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나이팅게일'이라고도 불린다면서......

 

- 그의 말대로 인생이란 결국 혼자 걷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친 영혼과 가슴을 받아줄 누군가를 끝없이 찾는 것 또한 인간의 타고난 숙명 아닐까. 때로는 그 대상이 인연이 아닌 친구일 수도 있고, 삶의 여정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간 낯선 이일 수도, 또 한 편의 시나 노래일 수도 있겠지만,

 

- "탱고를 출 때 여자에게는 다리가 하나뿐인 거나 마찬가지야. 다른 하나는 남자의 것이라고 흔히 말하지. 꼿꼿하게 서야 하지만 그에게 다리 하나를 완전히 맡겨야 해. 사랑할 때도 그렇잖아? 정말로 상대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는 완전한 사랑이란 불가능하지. 그리고 절대 발이 땅에서 떨어져서는 안 돼. 항상 한 발을 바닥에 붙인 채로 사랑하는 사람을 쓰다듬듯이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움직여야 해. 탱고는 춤이 아니야. 탱고는 그저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거지. 사실 그게 다야. 그래서 기본이 더욱 중요해. 누군가와 함께 걷기 위해선 우선 혼자 잘 걸을 수 있어야 하지. 마치 인생이 그런 것처럼."

 

- 가까운 사이일수록 각자의 시간과 공간, 또 자유를 허용해야 그 관계가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말이지. 서두르고 재촉해서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란다.

 

- 그녀의 말대로 인간이기에, 누군가엑 의지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외로운 영혼, 그것을 받아주는 상대와 음악에 맞춰 자유오 행복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시간이 탱고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탱고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 저는 탱고의 모든 것을 알고 느끼고 싶습니다. 실은 가끔 게이 바를 찾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이미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탱고는 다른 춤과 달리 남자라도 여성의 스텝을, 그리고 여성도 남성의 스텝을 배우기 위해 역할을 바꾸어 춤을 연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탱고는 상대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 잠은 잘 때건 깨어 있을 때건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는 거지. 심장이 뛰고 있어도 꿈이 없다면 그것이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 인생이란, 그녀(수영)의 말처럼 참으로 신기한 일들로 가득한 듯하다. 그래서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세상을  품는 일은 분명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고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을 얻게 해주는 값진 일이라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해 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참으로 멋진 경험이라는 것 말이죠.

Posted by 릴리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