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책이야기 2013. 4. 21. 12:50

2013.03.20-2013.04.21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김수영은 자신의 소시민적 나약함에 정직하게 직면했고, 그것을 숨기지 않고 노래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수영은 위대하다.

 

- 자유를 꿈꾸며 사는 사람만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담벼락과 조우할 수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갇혀 있다는 사실. 제한된 것만을 하도록 허락된 자유. 자유 정신이 어떻게 이런 허구적인 자유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 온갖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고, 지금 주인의 당당함과 자유를 쟁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인으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다.

 

- 자신의 페르소나를 애써 벗자마자, 맨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페르소나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의 맨얼굴은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를 벗겨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맨얼굴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 자신의 상처나 약점을 솔직하게 토로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고칠 수가 없다.

 

- 유년 시절 가난했던 탓인지 어떤 남자는 부와 명성을 쌓을 때까지 모든 열정을 자신의 업무에 쏟는다. 아이를 떠나보낸 여성이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면, 이 남자는 미래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그는 가족과 살뜰한 시간도 보내지 못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지고 않는다. 현실에서 누려야 할 행복을 무한히 연기하고만 있을 뿐이다.

 

-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래에 대한 염려는 '지금 그리고 여기' 펼쳐지는 현재의 삶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당연히 현재의 행복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내가 없다'는 주장은 부정적으로 '내가 공하다'고 표현된다. 이 주장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나는 수많은 인연들의 마주침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나에게 나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모두 인연이 있어서 내게 잠시 머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도, 젊음도, 나의 아이도, 그리고 돈마저도 모두 그러하다. 그것들은 모두 인연이 되어서 나에게 왔고, 인연이 다해서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나 자신이나 내가 가진 것이 공하다는 사실을 아게 되면, 우리는 부질없는 집착으로부터 멋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기 전, 옛사람들은 '진인사대천명'이란 선비 정신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는 초월자에게 기대기보다는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비범한 인문적 정신이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대천명'이란 말 그대로 초연했다.

 

-  이제 자신이 최선을 다했을 때 할 수 있는 것과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할 수 없는 것의 경계에 도달했다. 최선을 다해도 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야만,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맹자가 말한 '하늘'이자 '하늘의 명령'이다.

 

- 인의예지의 명칭은 반드시 우리의 실천 이후에 성립한다. 어린애가 우물에 들어갸려 할 때 '측은지심'이 생겨도 가서 구해주지 않는다면, 그 마음의 근원만을 캐들어가서 '인'이라 말할 수 없다.

 

- 아렌트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당신은 근면과 성실이란 미명 아래 사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가?" "지금 당신은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 그렇지만 이리가라이는 평등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폭력성에 주목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부정하는 논리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리가라이에 따르면 남녀평등 이념 속에서 평등이란 잣대는 여전히 남성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이 만든 상품을 활기차게 구매할 경우에만 유지되는 체제이다.

 

- 여가 시간은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이어서 자유로운 시간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중매체는 우리의 자유를 가만두지 않는다. 대중 매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노동해서 만든 상품에 대한 소비 욕망을 증폭시키고 있다.

 

- "놀이는 언제고 연기될 수도 있고 중지될 수도 있다."

 

- 명심하자. 아이 때 경험했던 놀이의 즐거움을 되찾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 그는 합의라는 적차 속에 내재하는 억압과 불평등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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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면장 선거 / 오쿠다 히데오

책이야기 2013. 3. 11. 21:52

2013.03.04-2013.03.11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처음 읽어봤다. 천진난만한 이라부라는 신경정신과 의사를 통해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단순하고 명쾌한 답을 준다. 오쿠다 히데오 소설에서 시리즈로 계속해서 등장하는 의사라고 하는데 매력적인 캐릭터다.

 

요즘에 많이 드는 생각은 생각이 많은 건 생각보다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신중할 필요는 있지만 많은 생각을 하는 건 걱정만 많이 만들고 그 걱정은 나로 하여금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 같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행동부터 하고 그로 인한 결과는 또 그 때 해결하면 된다. 상처를 받더라도 나쁠 건 없는 것 같다.

 

- 조금은 난폭한 발언을 해도 괜찮아. 악명은 무명보다 나은 법이지. 정치가에겐 서비스 정신이 필요해

 

이런 정신을 가진 정치가는 참 많은 것 같다. 요즘에 내가 몰입해서 보는 강용석의 고소한19 프로그램! 강용석 완전 비호감이었는데 이 프로 보면 인간적인 것 같고 나름 웃긴 구석이 있어서 재밌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의 말은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아니아니 아니되오.

 

- 혼자만 이기면 놀아줄 상대가 없어진다.

 

- 인간이 룰을 지키는 것은 자기에게 해가 미치지 않을 때뿐이다.

 

나에게 해가 되는 룰이라는 걸 알면서도 실천하는 사람은 높은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난 평범한 사랆이라서 나에게 해가 되는 룰이라면 피하고 싶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갈등과 부끄러움을 느끼겠지? 이런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 정의감만으로는 외딴섬을 운영해갈 수 없어. 부정은 정당방위야.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하게 병원이나 학교가 있는 도쿄 놈들이 알 리가 없지

 

같은 것에는 같게, 다른 것에는 다르게 대하는 것이 평등이다. 원래부터 강자였던 사람은 결핍에서 오는 절박함을 모른다. 사실 나도 이런 절박함을 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모든 현상에는 그 원인이 있기 때문에 그 바탕을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법이 규칙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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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서핑에 빠지다 / 이규현

책이야기 2013. 1. 30. 11:28

2013.01.21-2013.01.25

국내에 나와있는 서핑책은 두 권밖에 없는 것 같다.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검색능력으론... 전에 읽은 책 보다는 조금 더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있고 다양한 서핑 경험들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보통 서핑에 빠진 사람들은 서핑은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니라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핑은 그 어떤 스포츠보다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운동이기 때문에 수시로 파도를 체크하고 자연을 느끼고 순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스포츠 그 이상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서핑의 그 달콤한 유혹, 언제 다시 빠져 허우적거릴 수 있을까?

한국에서의 서핑은 지리상의 조건때문에 더 큰 의지가 필요한데 나는 움직이게 될까?

나는 다시 파도를 찾아 발리로 떠나게 될까?

 

서핑을 알고 배우게 된 건 큰 행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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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생각은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한다 / 김형태

책이야기 2012. 12. 11. 11:56

2012.12.06-2012.12.11

 

- 신체기관의 진화 욕구는 동물적 본능인 데 비해 정신의 진화 욕구는 인간적 의지이기 때문에 고통을 자진하는 강한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 자연은 아름답다. 둥근 것은 아름답고 곡선은 우아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의 곡선은 불편하고 비싸다.

...

반면 직선은 쉬복 각면체는 편리하다.

...

동그라미가 포함되지 않은 사각형과 삼각현의 세계에 예측 불가능한 변화는 없다. 또 예외도 없고 빈틈도 없어서 배타적이다.

 

-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고, 그들은 재론의 여지 없이 이대로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 안정이란 다름 아닌, 보통 사람들만 가만히 참고 있으면 되는 것이고, 평화란 피지배자들이 가만히 참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 정의의 상징인 슈퍼히어로조차 악당을 쳐부술 땐 '초인적 능력'이 필요하다니, 부당함에 맞서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초월적인 능력이 필요할 정도로 어려운 일인 것일까.

 

-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베푼다는 것은 참 간단할 수는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받는 사람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게 배려해야 하고, 돕는 사람의 자기 만족보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절박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또 매일 밥 한 그릇을 주며 도와줄 것인지 아니면 돈 버는 법을 가르쳐줄 것인지, 종자돈을 빌려줘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인지 등 도움을 주는 수준과 방법도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 인생에서 행복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고, 고통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 수많은 사람들이 예술은 생활화되어야 한다고 절실하게 외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생활 속의 예술'이란 것은 경제적 여유를 기본 조건으로 한 관람, 청취, 수집 등의 '감상 문화'가 대부분이다.

 

-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는 그 즐거운 놀이 문화들, 예술에 대한 동경들, 순수한 꿈이 소박하게 이루어지는 나만의 시간들. 나를 표현하고 나를 찾고 나에게서 행복을 찾는, 꿈을 즐기는 시간들.

 여러분은 그 모든 꿈들을 언제, 왜 그만두셨는지 기억하시나요?

 

- 진정한 삶이란 '시간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물질적 소비가 주는 '소유의 기쁨'만 있는 삶은 시간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불해야 하는 쫓기는 삶에 불과한 것이다.

 

- 생각해 보니 좋은 시절이란 흘러간 것이 아니고 우리가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일 뿐이다.

 

- '예술'이란 이름의 높은 성은 이미 수많은 전위적 예술가들에 의해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숭고한 성벽을 갖추었다. 어려운 상징과 난해한 기법을 동반한 개념과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예술 작품을 느긋하게 감상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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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막다른 골목의 추억 / 요시모토 바나나

책이야기 2012. 12. 2. 23:19

2012.12.02

잔잔한 특유의 감성을 잘 보여주는 일본 소설이다. 처음엔 옴니버스 구성인지 모르고 읽다가 당황했다.

 

누구나 막다른 골목에 있는 것만 같은 인생의 어려운 시절이 있다. 큰 그림, 큰 흐름에서 보면 나중엔 너무나 사소한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힘든 고통을 겪어내야 한다. 이런 시련들이 내 인생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리라는 믿음은 변함없지만,그 때마다 하나씩 생기는 내 마음의 장벽들이 순간 순간 보일 때마다 씁쓸함을 느낀다.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을 때는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그 시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다가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힘을 내서 일어서면 된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주는 어마어마한 힘이 꼭 필요하다. 내가 잘 못하는 기다리는 시간들.

 

- 무슨 일에든 지나치게 성실한 성격인 나는 모든 것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그것은 몸에 밴 버릇이랄까 타고난 성품이라서 바꿀 수 없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상담을 받을 걸 그랬나 봐. 하고 나는 마음속 깊이 수치스러워하면서 생각했다.

 

- 사람들의 일방적인 평가였지만, 지금의 사사모토 씨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보다 큰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작은 일에 마음 조리며 살고 싶지 않다. 최근의 몇몇 일들을 겪으면서 더 그런 생각이 많아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내 일은 그렇게 생각하기엔 너무 꼼꼼하고 자잘한 것도 잘 챙기는 그런 성격을 필요로 한다. 싫다. 큰 흐름, 큰 그림을 보자.

 

-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강의 흐름을 보는 것과 똑같다는 것도 알았다.

 

-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면 '다카나시는 오늘 뭘 할까.'하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평생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힘든 일을 겪을 때 저녁이 되면 힘들 것 같은데 생각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불쾌한 감정이라는 것은 말도 몸서리치게 싫다. 조금 신기한 것 같다.

 

- 니시야마만큼 솔직해지기는 아마 어렵겠지만, 그의 인생처럼 있는 그대로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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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책이야기 2012. 11. 12. 01:00

2012.11.11

한 달 전쯤인가 어린 왕자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은 되는데 도서관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못 읽고 있다가 ipad 교보 전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간단하게 책을 빌리고 반납할 수 있어서 참 편리하고 여행 가서도 책을 가지고 가지 않아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잘 익혀두었다가 발리가서 요긴하게 써야지.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마음이 맑아지고 머리가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지금 아이들 눈에 일일이 설명해 줘야 아는 '어른'의 모습으로 보일까?

 

20대가 되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한 해 한 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이 부담은 신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의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뭐든 하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 하고 싶어지지 않을 것만 같아서... 내 마음이 늙어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내가 길들이고 길들여진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

그만큼 책임감도 많아진다는 것,

 

쉬운 책같지만 정말 어려운 책이다.

 

- 어른들은 혼자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 주어야 하니 어린 나에게는 여간 벅찬 일이 아니다.

 

'어른'인 선생님의 눈으로 평가받는 아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하긴, 아이들의 설명을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클 때가 많다.

 

-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뱀)

 

-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한테 너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니까."(여우)

 

- "매일 같은 시각에 오는 게 좋을 거야.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여우)

 

- "너희는 나의 꽃과 하나도 닮지 않았어. 너희는 아무 의미가 없어. 누구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도 길들지 않았으니까. 너희는 길들여지기 전의 여우와 같아. 길들여지기 전의 여우도 수많은 여우와 같았어. 하지만 이제 나의 친구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우가 되었지."

 

- "비밀 하나를 알려 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안녕, 잘 가." (여우)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정말 중요한 것을 볼 수 있을까? 본질을 흐리는 현상에 속으면 안된다.

 

- "네 장미가 너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은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어서는 안돼.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으니까. 너는 네 장미를 책임져야 해."(여우)

 

여우의 말 중에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다.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나에게 길들여지고 내가 길들여졌으면 나에겐 특별한 물건이 되는 것처럼, 어쩌면 인생은 나를 세상에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이야기가 아닐까?

 

- "사람들은 서둘러 급행열차에 오르지만 정작 자신들이 무엇을 찾는지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늘 분주하게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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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 드 보통

책이야기 2012. 11. 1. 16:35

2012.10.23-2012.10.31

 

언젠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 번 읽다가 말았던 책!

 

도서관에서 문득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빌렸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많은 호평을 받지만 나에게는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보다 덮어버린 책이 대다수였다. 이건 왜 이리 어려워~ 이러면서...

 

이번엔 차근차근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익숙한 표시가 보인다. 이 표시는 내가 책을 읽을 때 인상깊은 부분을 체크해두는, 맞다. 바로 내가 해 놓은 표시였다. 이 책을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적이 있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여기 이 익숙한 표시가 내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순간 아~~ 내가 이런 것도 안지우고 반납했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하고 음~~ 몇 년 전과 비교해서 내 생각의 변화가 보이겠군... 생각하니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래서 자기 책을 가지고 읽는 것이 더 좋은가 싶기도 하다. 하나의 책에 계속해서 변화하는 내 생각을 덧칠해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첫 번째 읽을 때는 참 무슨 사랑을 이렇게 어렵게 설명해놨냐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 읽을 때는 상황마다 딱딱 어울리는 그의 탁월한 비유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 책을 읽었던 사이의 시간만큼 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이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이 주목한 것은 인간의 양면성이 아닌가 싶다. 어떤 현실을 합리화 시키며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이성과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괴로워하는 감정, 이 어쩔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의 인산 심리를 잘 포착하고 묘사하고 있다.

 

+ 내용 정리 후

 

내가 표시해놓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깜짝 깜짝 놀라며 다 정리했다. 보통의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이런 모습인 것 같다. 만나고 결혼을 해도 관계 속에서 계속 사람은 외롭다고 한다. 혼자여서 외로운 것보다 관계 속에서 외로운 것은 더욱 답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 "이 안쪽이 피곤해.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겉보기에는 흥미로운 일들을 하는데도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아."

 

- 그 과정에 중요성이나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람도 없이.

 

- 평범한 물건을 액자에 넣으니 그 형태와 색, 울림을 관성적으로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액자는 이런 의미였다.

 

예전에 사진동아리를 할 때를 생각해보면 어떤 사진이든 크게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두면 다 그럴듯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래서 뭐든 크게 뽑는게 좋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속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과 계기가 필요하다.

 

- 솔직함(무례와는 습자지 한 장 차이)이라는 것의 장점이 뭐냐 하는 이야기는 관두고, 어쨌든 조애나는 정곡을 찔렀다. 앨리스는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렸다.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예전에는 혼자인 것이 농담과 가벼운 장난의 대상이었지만, 점점 말 못 할 무게감이 더해졌다.

 

- 앨리스가 지금 에릭을 사랑하는 것일 리가 없다면,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이 동어 반복적인 묘한 감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거울에 비친 사랑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애정의 대상보다는 감정적인 영정에서 더 많은 쾌감을 도출하는 것을 뜻한다.

 

- 고정된 상(像)과 현실적 제약의 독재에서 벗어나, 독자의 상상에 맡길 수 있다는 것이 책의 특권이다. 안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톨스토이가 정확히 밝힐 필요 있었을까?

 

- 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덕에, 호텔과 매혹적인 연인은 풍부한 상상력의 방아쇠 구실을 할 수 있었다.

 

- 그렇지만 우리가 그녀를 가여워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에릭에게 끌린 데에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들이 보기에도 매력적이라는 점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 타인의 도움 없이도 좋고 싫은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수지에게는 부러움을 살 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음식 비평가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은 폴란드 식당을 런던 최고로 꼽았고, 세상이 칭찬하거나 관심을 쏟지 않는 남자라도 사랑했다.

 

- 그녀의 자신감은 늘 확인을 받아야만 자라는, 불안전한 구조였다. 원하는 걸 얻거나,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바람이 빠지는 타이어 같아서 늘 다시 채워줘야 했고, 그게 불가능해지면 이전의 낙관이 오만한 허위로 보이는 상태로 급속히 빠져들었다.

 

- 내 필요를 고백할 때는 감정적으로 벌거숭이가 된다. 당신이 없으면 헤매게 될 거라고, 독립적인 사람처럼 보이려 애썼지만 꼭 그렇지도 않으며, 인생의 방향이나 의미도 모르는 형편없이 유약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

그러면 감정의 옷 입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른 속, 상징적인 생식기의 약함, '당신이 필요하다'는 엄청난 비밀을 남에게 들키지 않도록 만든 옷장 전체로 이루어진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조종할 수 없는 사람, 곧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시시덕거림으로써 우리를 미치게 하거나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 남들이 싫어할 만한 점을 어느 정도 자각하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비판함으로써 외부의 공격을 대부분 피할 줄 안다.

 

- 위대한 러시아 심리학자 파블로프는 덜 알려진 실험을 통해, 반응하도록 훈련하던 신호에 충분한 혼란을 주면 개가 몸을 떨고 대소변을 보면서 신경증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밝혔다.

...

종소리가 따로는 이것을 의미하다가 때로는 다른 것을 의미하면 개는 천천히 광견 상태에 빠져들었다.

 

- 평소에는 멀쩡한 사람도 사랑을 하면 편집증에 걸리고, 별별 최악의 생각을 다 한다. 편집증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따르는, 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상대를 높이 평가하니 내가 버려질 가능성이 점점 커질밖에. 하지만 일단 재앙의 시나리오에 끌려들면 사랑은 상처를 악화시킬 뿐이다.

 

- 자기가 사랑스럽게 타고났다고 생각하면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상대의 기둥 없이도 케이블을 수백미터 늘어뜨릴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해가 부족함을 벌충하므로 당신을 사랑해란 말이 덜 필요하다. 당신이 왜 날 사랑하지 않겠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본 태도다. 내가 나한테 느끼는 감정을 당신이라고 못 느끼겠어?

 

- 당신은 날 많이 사랑하지 않아라는 억압된 두려움과 내가 말도 안 되는 걱정으로 당신을 괴롭히면 안 되는데라고 타고난 심리적 규범이 폭발적으로 뒤섞여 상호 작용하는 것이 애인의 편집증을 낳는 마법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성을 찾고 성숙해지려 노력해도, 나는 조금씩 미쳐가......

 

- 사랑에서는 권력이 훨씬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정의에 의존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 누군가 이웃집 정원으로 들어가서 거기 있는 위험을 끌어안아야 한다. 용기를 내서 "커피 마시러 올래요?" 라거나 "혹시 그 영화 봤어요?" 라고 물어야 한다. 누군가 헛기침을 하고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게 좋아요." "우리 결혼할까요?"라고 말해야 한다. 자신의 말을 권력의 저울에 올려놓고, 두려워하면서 상대방이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기를 바라야 한다. 하지만 책임을 따지기는 어렵다.

...

그가 정중히 거절한다면 관심이 없나보다 하고 양해해야 할 뿐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 진실은 얻기 어려운 보물이며,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경박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편견이다. 진리는 올라야 할 산과 같아서, 위험하고 모호하며 품이 많이 든다. 도서관의 환한 불빛 아래에 학문의 좌우명은 이렇게 쓰여 있다. 읽기 힘든 책일수록 더 진리에 가깝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다. 마음이 열려 있고, 명쾌하고, 예측 가능하고 시간을 잘 지키는 애인보다는 힘들게 하는 애인이 더 카치가 있는 것 같다.

 

- 공항은 두 문화가 극적으로 부대끼는 곳이었다.

 

- 저자는 우리가 혼자만의 느낌이라고 기쁨에 떠는 연인들처럼, 독자는 책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서 외친다. '세상에, 나랑 똑같이 느끼는 사람이 있네! 나 혼자만......을 느끼는 줄 알았는데.'

 

- 독자에게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책에는 그럴듯한 편견이 따른다. 스탕달은 어떤 생각을 소설에 도입하는 것을 음악장에서 총을 쏘는 것에 비유했다.

 

- 앨리스는 생일, 축제일, 동창 모임이나 결혼식에서와 같이 당연히 행복해야 하는 때는 늘 초조했다.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 일을 즐기기가 힘들었다.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감탄을 늘어놔야 하는 경우에 그랬다. 행복해야 한다고 계속 되새기는 것보다 서글픈 일이 있을까.

 

- 흔히 아픔과 고민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지성인의 주장)...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반대 주장도 있다. 생각이 아픔이나 문제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그것들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것이다.(자연주의자의 주장)

 

- 아무리 여자를 칭찬해도, 기본적으로 에릭은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이 열등하다는 근본적인 믿음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 남자는 여성들에게 관대할 수 있었다.

 

- 앨리스로서는 이번이 처음으로 휴가 이야기를 자세히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직장에서 대강 이야기를 했지만, 수지와 대화하며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을 따져볼 참이었다.

 

- 리넨 드레서를 산 일이나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보내는 일이나, 앨리스는 고전적인 소비의 덫에 걸린 것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는 행위에 무의식적으로 깔린 목적은 단순히 그것을 가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변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스운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은 모델이 입은 옷이 아니라 모델 자체였다.

 

- 누구와 사귈 때, 사람만 달랑 올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축척된 문화가 따라오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관습이 따라온다. 특정한 지역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함께 온다. 이러한 성향은 민족성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계층과 지역과 집안의 특성이 뒤섞여 구성된다. 본인은 이 무의식적인 요소들의 집합을 정상 상태로 여린다.

 

- 약한 쪽이 자신을 드러내고, 강한 쪽은 자기를 절제하게 마련이라면, 인터뷰어는 강한 쪽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강한 쪽이라면 마키아벨리식 책략에 따라 질문을 해야겠지만, 앨리스는 단지 자신이 드러날까봐 두려워서 질문하는 쪽에 서는 것이었다.

 

-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 프로이트 식으로 이해하자면, 스스로도 모르는 자아의 영역, 해결 안 된 갈등의 영역이 광활하긴 해도, 스스로 알고 갈등의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어떤 동력이 존재한다.이러한 틀에서 꿈과 말실수는 표현법을 모색하는, 혼란스럽지만 대단히 논리적인 시도다.

 

- 친구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LED의 불빛이 밝고 희망차게 4라는 숫자를 깜빡이면, 여지없이 누구의 전화이면 좋겠다는 마음을 드러내 버렸다. 응답기 주인은 바라던 그 사람이 드디어 전화했다는 생각이 밀려드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라플랑슈 퐁탈리스가 '욕망이 성취되었다고 상상하는 심리적 각본'이라고 정의한 전형적인 소원 성취 형태였다.

 

이러한 상태는 삶의 활력도 되긴 하지만 정말 심신을 지치게 만든다.

 

- 한 사람 내부에서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믿음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 자기기만의 뚜렷한 특징이다.

 

- 책임 떠넘기기라는 고전적인 실내 놀이가 있다. 사람 두 명, 금기시되거나 위험한 일, 책임감을 느끼거나 비난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되는 놀이다. 방법은 놀이에 참가한 한 사람이, 양쪽이 원해서 일어난 일에 대해 다른 한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가도록 미묘하게 상황을 조작하는 것이다.

...

상대가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밟았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비난을 받게 될 사람)은 마지막 4단계를 취하는 사람이다.

...

"그래요, 내가 다르게 받아들여서 미안하군요. 물론 당신 잘못은 아니지요. 내 말을 잘 들어요, 앨리스. 앞으로 헷갈리고 위선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한테 보이면 고맙겠군요."

 

- 그이도 다를 바 없는 인간이구나. 조지 버나드 쇼가 말한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과장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라는 유명한 경구의 진부한 메아리였다.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까 씌워지는 그런 마음, 알고보면 그 사람도 보통의 사람인데 우린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투영시키면서 상상을 하고 만족을 느끼고자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보통의 사람이지만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 관계란 스스로 균형을 잡고자 하는 원초적이고 잔혹한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방정식으로 나타냈을 때, 두 사람이 함께 하려면 양쪽에서 40단위에 이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자. 양쪽이 20단위씩 노력을 내놓는 관계가 가장 합리적이겠지만, 원래 한쪽이 상대방보다 더 많이 노력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떻게, 또는 왜 그럴까? 덜 노력하는 편은 어떻게 정해질까? 상대가 얼마나 신경 쓰느냐를 측정하는 몹시 냉소적인 감각에 따라서 그렇게 된다.

 

- "언제나 당신보다는 내가 노력을 해야 했어요.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저 이렇게 된 게 불가피한 일은 아니었는데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으면 좋겠어요. 나는 당신을 이해하려고, 당신이 왜 그러는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화가 끓어오르고 울고 싶네요. 모든 게 쓸데 없는 낭비였어요."

 

내 주위의 대부분의 남녀관계의 마지막은 남자의 사랑의 변심? 혹은 무심함?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 중 자기 주변은 여자가 문제라고도 이야기를 하니 둘 다 문제는 있다.) 여자 혼자 관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20을 넘어 30, 35,36,37,38,39의 노력을 쏟아붓다보면 그럴수록 차오르지 않는 우물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지치고 먼저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헤어지자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나 정말 힘드니깐 너도 좀 노력해줄래?

2. 나 이제 힘들어서 치사해서 너랑 못해먹겠다.

어느 여자도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100% 1번 혹은 2번의 이유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1번과 2번이 어느 정도 섞여있냐의 문제이지. 관계를 적절히 유지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도 유지되는 관계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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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용의자 X의 헌신 /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야기 2012. 10. 23. 23:56

2012.10.22-2012.10.23

 

'광해' 이후 볼만한 영화가 없었는데 '용의자X'가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두 천재 이과생들의 두뇌 싸움이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져들어서 본 소설이다. 영화는 평점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하던데, 소설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 펼쳐진 이미지들을 하나의 영상으로 만족시키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라서 그럴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순수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교수님들 중에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봐도 어린아이같은 구석이 있으신 분들도 많다. 복잡하고 교묘한 사회 생활에 등을 돌린 채 순수한 학문만을 파고들다보면 사람이 단순해지고 맑아지는 걸까? 

 

요즘에 책에서 이과, 문과에 대한 이야기를 유독 많이 접하는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 이과와 문과로 양분되어 있는 것인가? 어쨌든 나도 이과 성향이 강한 아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더 이과쪽의 이야기에 더욱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살아갈수록 순수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이야기 스토리를 따라 읽다보니 딱히 인상깊은 표현이나 사색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 그것은, 절대로 완벽하다고 믿고 있던 수식이 예상하지 못한 미지수 때문에 서서히 흐트러져갈 때 느끼는 감각과 비슷했다.

 

- 왜 이런 공부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학문을 하는 목적이 생겨난다. 수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로도 이어진다. 그런에 그들의 소박한 의문에 대답하지 않는 교사가 너무 많다. 아니,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가르치고 학생에게 일정한 점수를 주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모리오카가 던진 그런 질문 따위는 그냥 번잡하고 귀찮을 따름이다.

 

- 진실을 숨기는 건 괴롭다. 숨긴 채 행복을 거머쥔들 그게 진정한 행복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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