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8-2012.09.26

 

도서실에 갔다가 일본 소설이 읽고싶어서 집을 책이다. 그런데 초반에 조금 읽다보니 예전에 우리 나라에 이런 드라마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찾아보니, 맞다! 그 드라마의 원작.

 

원래는 일본에서 드라마 각본으로 처음 만들어진 이야기인데 드라마가 워낙 히트를 치면서 소설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드라마도 제작되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주인공을 내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그려보고 움직여볼 수 있는 상상력에 있는데, 계속 지진희와 엄정화 이미지가 떠올라서 그들이 내 머릿속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 드라마를 본 건 아니지만 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래서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성공하기 힘들다. 독자들의 상상력은 어떻게든 충족시켜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미 영상으로 접한 이야기를 (실화가 아닌 이상) 다시 책으로 보는 건 비추천!

 

결혼 못하는 남자 '구아노 신스케'는 자신의 삶을 너무 사랑하고 혼자하는 일에 익숙하고 편함을 느끼다 보니 결혼을 안하는 남자가 되었는데, 이런 생활이 오래되면 나중엔 결혼 못하는 남자가 되는걸까?

 

인생은 참 별 것 없다는 생각은 많이 든다. 그래서 즐겁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살아가냐는 문제이다. 물론 배우자도 매우 중요한 '누구'에 해당하는 사람이지만 그 외에도 나랑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사람들은 너무 많다. 그런 인연들이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만들어내는 아우라가 비슷한 인연들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이 끌어당기기 위해선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지!

 

- 신기한 우연 같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 "내겐 그 혼자라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

"달라요? 뭐가 어떻게 다른데요?"

"나느 어디까지나 잠재의식 활성화라는 자기 계발의 수단으로 탄 겁니다. 그쪽은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려고 탔잖아요."

 

- 같은 언어를 쓰는 인간끼리인데도 웬일인지 켄(애견)보다 더 소통이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 지정한 사랑이란 상대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힘이다. 평생의 반려를 정하는 조건이라면 일시적인 로맨틱한 기분이 아니라 이렇게 일치되는 가치관이 제일 중요한 거다.

Posted by 릴리06

2012.09.24

 

이외수하면 대학 시절 '장외인간'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외수라는 작가의 대단한 깊이와 통찰에 감탄했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짧막한 토막글을 모아 펴낸 이런 책은 왠지 작가 이외수의 진면목을 보기 힘든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나는 여자이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여자를 모르겠다. 사실 남자도 모른다. 나를 잘 알기도 힘든데 내가 다른 사람들을 알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래도 명확한 것은 나를 알아야 하고 내 세상의 크기와 깊이를 확장해 나가는 일이 우선되어야, 잘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보니 세상은 참 악으로 부패해 가고 인조적이고 병적인 것들이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자 목적으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랑' 생각만으로도 가슴설레는 단어이다.

 

- 어떤 일이건 사심 없이 십 년만 투자하라. 십 년 동안 사심 없이 병뚜껑만 수집해도 저절로 철학이 생기고 운명이 변하고 세상이 그대를 주목하는 성과를 얻을 것이다.

 

- 외로움을 겁내지 말라. 그대가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대의 뼈저린 외로움은 물리칠 방도가 없으리니. 외로움은 평생의 동반자, 비록 그대가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하더라도 그놈은 한편생 그대 곁을 떠나는 법이 없으리라.

 

- 자신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사실을 먼저 가르치시게

 

- 때로 사랑은 예고편도 없이 막을 올리기도 한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시간, 전혀 예기치 못했던 장소에서 사랑은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 성적지수와 행복지수는 반드시 정비례하는가. 아니다. 교수가 얼굴에 웃을 떠올리는 횟수와 바보가 얼굴에 웃음을 떠올리는 횟수만 비교해 보아도 대답은 자명해진다.

 

- 물질의 빈곤이 그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빈곤이 그대를 빈곤하게 만든다.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차 있는 가슴이라면 어떤 사랑도 들어앉을 자리가 없다. 어떤 사랑도 들어앉을 자리가 없는 가슴에는 어떤 행복도 들어앉을 자리가 없다.

 

- 사랑할 때마다 실패를 되풀이하면 먼저 자신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잘못되지 않았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상대를 감당할 만한 내적 깊이를 소유하고 있는가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만 고집하는 성격을 버리는 연습도 해야 한다.

 

- 과감하게 현실을 탈피해서 이상에 도달한 사람들은 모두가 껍질이 깨지는 아픔을 겪어본 사람들이다. 껍질이 깨지는 아픔이 두려워 현실에 안주해 있는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힘으로는 하늘을 날지 못한다.

 

- 인간의 경우 사랑의 크기는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크기와 정비례한다.

Posted by 릴리06

2012.08.23-2012.28.28

 

 

알코올중독자 쇼코와 동성애자 무츠키가 서로 계약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

 

다문화전공을 시작하고 나서 다문화 아이들과 같은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졌다. 그리고 팟캐스트 '나는 딴따라다'에 나오는 김조광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얼마나 성적 소수자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느껴졌고, 그들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 것 같다. 김조광수처럼 사회적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소수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높이는데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동성애자들은 사회적 관습을 깬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의 변화 속도보다 더 빠른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 난 오히려 그들의 용기와 틀에 박히지 않은 개방적인 사고가 부럽기도 하다. 때론 평범한 건 재미없다.

 

많은 소수자들이 더 당당하게 발 내딛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얼마 전에 본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김조광수의 영화랑 비슷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소설이 현실을 많이 반영한다고 봤을 때 생각보다 이런 일이 흔한 일일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기형적인 가족을 만들게 되는 피해자이다.

 

다양한 분야의 소수자들의 인권이 향상되고 특수성을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숙제가 한국 사회에는 왜 이리 먼 일처럼 느껴지는지...

 

예전부터 느끼고 생각한 일이지만 내가 만약 소수자였다면 (어쩌면 나도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지도..) 우리 나라에서 살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일반일들도 틀에 죄어 살고 있는데 그들을 받아일일 사회적 여유와 공간이 부족하다.

 

-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Posted by 릴리06

2012.08.22-2012.08.23

 

조만간 뉴욕에 가고 싶어서 이 책을 일어보았다.

이 책을 읽어보니 뉴욕이 꿈의 도시만은 아닌 것 같지만 뉴욕의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는만큼 보이고 경험한만큼 느낄 수 있는 것은 확실한데, 지금 나는 너무 알려고만 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위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에는 열두 달이 아니라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는 사람들은 세기말 같은 우울한 혼란을 경험한다. 무언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기대와 그 기대에 대한 부담감.

 

정말 지금의 나는 세기말을 겪고 있다. 30이라는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해질까?

 

- '즐거운 여행'의 판타지는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설렘이나 무사히 귀가해 그 여행의 전리품들을 즐길 때 완성된다. 멋진 경치를 보는 순간순간이나 기거이 보겠다 별렀던 곳에 섰을 때의 뿌듯함, 이국적인 야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느끼는 여유로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초특가 물건을 덥석 집어들 때 등의 상황을 제외하면, 여행은 낯선 곳에서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고행이다. 허나 우리의 기억은 그 순간순간을 달콤하게 미화해버린다.

 

- 혹자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아슬아슬하게 추함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극과 극은 연결되어 있다. 패셔니스타와 촌스러움은 한 끗 차이다.

 

- "너의 부모님이 혹은 할머니가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에 (백인 아이들은) "엄마는 교사이며 할머니는 가정주부예요'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우리 할머니와 엄마는 노예였어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살았어." 수업 시간에 들은 흑인 교수의 고백에 마음이 짠했다.

 

- 헤게모니 문제다. 두 언어 사이에는 언제나 힘이 작용한다. 대부분 이민 1세들은 영어보다는 모국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2세의 경우 대개 가정에서 부모가 쓰는 언어보다는 영어를 더 유창하게 한다.

 

- 사람들은 흔히 "사랑의 끝은 죽을 만큼 아프다"고 말한다. 그 집착의 대상이 사랑이라는 붕 뜬 감정인지, 혹은 그 사람인지, 아니면 그러한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이라는 낭만적이고 무시무시한 결과로 사랑이 끝났을 대 그 드라마틱한 최후는 인격 수양에 따라 추이가 달라진다.

 

나는 보통 그러한 관계에 집착을 하는 것 같다.

 

- 당신이 관광객처럼 보인다면 주인이 50센트쯤 되는 돈을 더 챙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가. 그는 아이 넷을 둔 가장일 가능성이 높고, 당신은 뉴욕을 즐기는 행복한 사람인데. 관광객다운 인심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은가.

 

-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보니 행복한 사람들이 편견이나 선입관을 더 많이 가질 수도 있단다. 행복한 사람들, 즉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모든 게 다 괜찮아'라는 낙천적인 사고를 갖는데, 문제는 이런 사고 방식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막는다는 데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사고도 불행한 사람들의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다. 어쨌든 심플하게 살던, 복잡하게 살던 그건 선택의 자유가 있으니깐.

 

- 낯익은 작품을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들어도, 선뜻 카메라를 들이대게 되지 않는다. 어쩐지 순간의 느낌이나 기억을 강제로 박제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거니와 지나는 사람들을 벽으로 막는 것 같아 미안함이 앞선다.

 

내가 5주동안 터키와 그리스를 돌아다닐 때 가장 아름다웠던 석양 풍경을 꼽자면 딱 2번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때 나는 필름이 없었다.(그 때만 해도 몇 십통의 필름을 들고 다니며 열정적으로 수동카메라를 찍으며 여행하던 시절이니...) 그 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사진을 못 찍은 아쉬움이 그 풍경과 더해져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닐지.

 

- 평생을 벌어봤자 한 점도 사지 못할 쟁쟁한 그림들과 하루를 같이 보내는 저 경비 아저씨에게 예술은 무엇일까.

 

- 춤은 시작하는 순간에 완성되고 완성되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그 찰나의 황활함과 의미들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얼마나 명쾌할까. 하지만 이런 소멸의 가능성, 예정된 죽음이 춤을 더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예술로 만든다.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나같은 인간은 미술이나 음악이나 무용이나 다같은 예술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정확히 서로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었다.

 

- 사람들은 대부분 이 '죽어버릴 것 같은 첫사랑의 열병;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그 생존의 증거로서 사랑에 대한 냉소를 백신처럼 갖고 산다.

 

사랑에 대한 냉소를 백신처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만큼 사랑을 하는데 상처를 받지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그 냉소가 애잔함과 그리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 예술가라는 직업은 얼핏 화려해 보이지만, 안정된 직업 없이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면서 고단한 노력만 기울이다 끝나는 것이 대부분.

 

 

Posted by 릴리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