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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2012.09.13

 

 

때론 누군가 나에게 해주는 충고가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나 그 충고가 속물적이거나 편협한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느껴질 때는 더욱 그렇다. 나나는 딸 마리암에게 소설 초반에 이런 말을 한다.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라.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그걸 명심해라, 마리암."

 

이 충고 역시 마음에 와닿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곱씹게 되었다. 소설 마지막에 마리암의 회상 장면에서 이 충고는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이 소설을 쭉 다 읽고 나니 그 마음이 이제는 이해가 되고 정말 그렇게 살아온 그들이었구나 하는 안스러움마저 들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자신이 사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 그 비참함과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있는 소설이었다. 한편으론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길 참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내가 착하다는 생각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참, 세상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나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을 볼 때가 아니라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볼 때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는 조금 기특하기도 하고 이런 내 마음이 조금 고맙기도 하다.

 

 

할레드 호세이니 소설 '연을 쫓는 아이'를 예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1900원 행사할 때 샀었다. 소설에 대한 정보도 하나도 없었는데 왠지 끌려서 싼 맛에 주문했는데 역시 싼맛에 읽지 않고 있다가 시간 있을 때 읽어보았다. 그런데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희열과 충격은 정말 오래 남았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는 이민자들의 아픔,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종류의 감정들을 많이 느꼈다.

 

이 소설 속에도 마리암과 라일라, 이 두 여자를 통해서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의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예전에 중동에 가려고 아랍어도 배우고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공부하면서 봤던 내용 중에 이슬람에서 일부다처제를 하는 이유는 전쟁에 나간 남자들을 대신해서 남겨진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그 역사적인 배경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 땐 '우리가 알고 있는 부정적인 이슬람의 풍습이 사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들이구나.'하는 충격을 받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냥 정말 나쁜 남자들의 변명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부르카를 착용하는 것에 대해서 유럽에서 금지하는 법안이 생겼다는 것을 들었을 때, 종교적인 문화인데 왜 저런 것도 금지할까 문화 국수주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이슬람교 여자들이 부르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가니스탄!

 

그냥 전쟁중인 위험한 나라인 줄만 알았는데, 그 곳에는 고향을 떠나 떠도는 난민들과 인권조차 위협받는 많은 여자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죽어가는 내 가족들도 있는 우리와 비슷한 그런 곳이었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다네.

Posted by 릴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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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0-2012.08.26

 

 

내가 유년기를 보낸 80년대 20대를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신경숙의 가장 유명한 소설 엄마를 부탁해도 아직 못 읽어봤는데 그녀의 다른 소설을 읽어본다.

사실 도서관에서 몇번을 빌렸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봐서 너덜너덜 더러워진 책을 읽기가 싫어서 다시 반납한 적이 있다.

 

그녀의 필체는 나를 마치 80년대 정윤의 삶으로 이끌어가는 것만 같아서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느껴지고 자기 꿈과 열정을 펼쳐야할 20대를 민주화 운동에 쏟으며 시련을 겪었던 사람들. 우리는 그들이 이뤄놓은 성과 위에서 우리의 꿈을 펼치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정치가 정말 민주화 되었는가?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예전처럼 대통령 마음대로 헌법을 고치고 군대를 동원해서 밀어부치는 일은 당연히 없지만 그 대신 더욱 교묘해지고 비밀스러워지진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었다. 살기좋아졌다고 안도하며 즐거워하는 우리의 모습 뒤편에 그들이 웃음짓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뼛속까지 뿌리깊은 정치에 대한 불신)

 

어쨌든 80년대를 치열한 20대로 살아본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책!

 

 

- 내.가.알.아.서.할.게

내가 그에게 내뱉은 말은 결국 나를 고독하게 했다.

 

- 누군가 약속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말이야. 믿을 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 손을 잡으면 놓을 때를 잘 알아야 한다. 무심코 잡은 손을 놓는 순간을 놓치면 곧 서먹해지고 어색해진다.

 

-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 폭력적으로 된다.

 

-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Posted by 릴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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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2012.07.27

 

 

히노데 소학교에 다닐 때도 입었고 일본에 와서도 입었던 옷이다. 하지만 지금은 입을 수 없다. 일본 백작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입을 수 없다. 만약 그 옷을 입는다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학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추운 겨울 여학생들이 저고리를 입는 것에 대해서 춥지만 일본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선 저고리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우리이게 만들어주는 여러가지 형식적인 것들이 지금 우리에겐 거추장스럽고 따분한 것들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있기에 우리는 우리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될 것 같다.

 

덕혜옹주의 상황은 많은 면에서 영화'우리 학교'를 떠올리게 했다.

 

60-70년 전의 덕혜옹주의 일본에서의 정체성 혼란을 지금 재일동포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 상처와 아픔이 꽤 오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으리라는 짐작도 가능했다.

 

 

덕혜옹주는 해방후 1962년에 조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지만 일본에서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이혼을 당하고 딸이 죽는 등 이미 많은 시련을 겪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후였다. 그래도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 옆에서 잠들 수 있음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적, 조국, 고향

 

생각보다 강한 정체성의 울타리인 것 같다.

Posted by 릴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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