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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01 #63 책은 도끼다 / 박웅현
  2. 2013.04.21 #61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2013.08.21-2013.08.31

 

나에겐 사연이 있는 책!

그래서 더 읽기가 주저되면서도 기대되었던 책!

드디어 마주했다.

 

책은 도끼라는 아주 강렬하면서도 파격적인 제목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는데 그 의미 역시 도끼같은 표현이다.

 

나도 책을 읽을 땐 나의 마음을 울리는 문구에 줄을 치면서 읽는 버릇이 언젠가부터 생겼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내가 밑줄친 부분만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며 책의 내용을 되새김질하고 여기에 이렇게 정리를 한다.

 

한 때는 이 블로그에 서평 올리는 것이 재밌어서 일주일에도 3-4권씩 읽곤 했는데 박웅현씨의 충고대로 다독에 대한 욕심과 압박을 없애고 정독하고 많이 생각해보는 독서를 해보자.

 

몇 년 전 우연히 학교 도서실 수업 중에 심심해서 펴들었던 나보다 10살이나 어린(그 당시..) 19살 소녀가 쓴 책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 신기했었다. 그래서 빌려서 끝까지 다 봤던 책이 있었다. 바로 '인문학으로 콩갈다'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작가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키운 그 가족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그 아버지가 바로 박웅현이었다니... 정말 신기하다.

 

-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도끼같은 문장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과 떨림은 정말 표현하기 힘들다.

 

-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시간'이라는 시련을 견뎌낸 고전들의 훌륭함에 대해 이야기할 겁니다.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시간'이라는 표현, 정말 공감한다. 시간이 들어가지 않은 모든 것들은 허구다. 다만 그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독서라고 한다.

 

- 피카소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건 힘들지 않았지만,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데 사십 년이 걸렸다고요. 우리는 0세에서 100세를 놓고 봤을 때, 아이들은 모르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가면서 지식이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식을 얻는 대신 가능성을 내주는 것이죠. 지식을 쌓으면서 놓치고 있는 많은 부분들을 우리는 그 누구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시 어려지고 싶다기보다는 그 어린 풋풋한 감성을 일깨우고 싶다.

 

-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합니다. 감동을 잘 받는다는 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 책을 많이 읽고 인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들은 촉수가 민감해지죠.

 

- 무욕(無慾)만 한 탐욕(貪慾) 없습니다.

 

- 감미로운 기쁨이 있는 것처럼 뜻 모를 슬픔이 문득 찾아오는 것, 이렇게 삶이라는 건 열린 창문 사이로 밀려드는 햇살처럼 순간의 기쁜, 그리고 그 나머지의 슬픔으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유한한 생명이 부여된 인간의 숙명일 수도 있겠네요.

 

- 개선문의 주인공  라비크가 추구하던 삶의 형태, 즉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좋지만, 내가 기분 좋으면 팁 줄 정도의 경제력을 갖고, 큰 욕심 없이 작은 정의를 놓치지 않는 삶을 좇아가고 있는 것이죠.

 

정말 내가 가진 인생관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문장이 아닌가싶다. 돈을 만이 벌지는 않아도 안정적인 수입이 있고, 내가 소비하고 싶은 곳에는 기쁘게 돈을 쓸 수 있으며 인생에 큰 욕심은 없지만 소소한 도덕적, 인격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

 

-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건가요? (...)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닙니까?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요. (그리스인 조르바)

 

이 문장은 예전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내가 밑줄쳤던 그 문장인데 여기서 다시 만난다.

 

- 내가 사는 이 삶을 잘 살면 답이 나온다는 걸 이제 알아요. 다른 어떤 생에 대한 동경도 없어요. 큰 부자, 사회적 명예와 성공보다 집 앞 공원을 지나면서 풀을 보고 초록을 느끼는 내 삶, 내 인생이 좋아요. 레빈이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그곳의 모든 것이 훨씬 더 간단하고 뛰어나다고 느낀 것처럼 저도 이제야 실존적 자각을 하게 된 거죠.

 

- 모든 삶이 그 사람한테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지만 멀리서 보면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까 모든 근경은전쟁이고, 모든 원경은 풍경 같습니다.

 

- 깨달음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낡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에서 깨달음이란 무엇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숨겨져 있던 어떤 것을 '발견'하는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Posted by 릴리06

2013.03.20-2013.04.21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김수영은 자신의 소시민적 나약함에 정직하게 직면했고, 그것을 숨기지 않고 노래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수영은 위대하다.

 

- 자유를 꿈꾸며 사는 사람만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담벼락과 조우할 수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갇혀 있다는 사실. 제한된 것만을 하도록 허락된 자유. 자유 정신이 어떻게 이런 허구적인 자유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 온갖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고, 지금 주인의 당당함과 자유를 쟁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인으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다.

 

- 자신의 페르소나를 애써 벗자마자, 맨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페르소나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의 맨얼굴은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를 벗겨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맨얼굴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 자신의 상처나 약점을 솔직하게 토로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고칠 수가 없다.

 

- 유년 시절 가난했던 탓인지 어떤 남자는 부와 명성을 쌓을 때까지 모든 열정을 자신의 업무에 쏟는다. 아이를 떠나보낸 여성이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면, 이 남자는 미래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그는 가족과 살뜰한 시간도 보내지 못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지고 않는다. 현실에서 누려야 할 행복을 무한히 연기하고만 있을 뿐이다.

 

-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래에 대한 염려는 '지금 그리고 여기' 펼쳐지는 현재의 삶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당연히 현재의 행복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내가 없다'는 주장은 부정적으로 '내가 공하다'고 표현된다. 이 주장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나는 수많은 인연들의 마주침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나에게 나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모두 인연이 있어서 내게 잠시 머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도, 젊음도, 나의 아이도, 그리고 돈마저도 모두 그러하다. 그것들은 모두 인연이 되어서 나에게 왔고, 인연이 다해서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나 자신이나 내가 가진 것이 공하다는 사실을 아게 되면, 우리는 부질없는 집착으로부터 멋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기 전, 옛사람들은 '진인사대천명'이란 선비 정신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는 초월자에게 기대기보다는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비범한 인문적 정신이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대천명'이란 말 그대로 초연했다.

 

-  이제 자신이 최선을 다했을 때 할 수 있는 것과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할 수 없는 것의 경계에 도달했다. 최선을 다해도 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야만,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맹자가 말한 '하늘'이자 '하늘의 명령'이다.

 

- 인의예지의 명칭은 반드시 우리의 실천 이후에 성립한다. 어린애가 우물에 들어갸려 할 때 '측은지심'이 생겨도 가서 구해주지 않는다면, 그 마음의 근원만을 캐들어가서 '인'이라 말할 수 없다.

 

- 아렌트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당신은 근면과 성실이란 미명 아래 사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가?" "지금 당신은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 그렇지만 이리가라이는 평등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폭력성에 주목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부정하는 논리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리가라이에 따르면 남녀평등 이념 속에서 평등이란 잣대는 여전히 남성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이 만든 상품을 활기차게 구매할 경우에만 유지되는 체제이다.

 

- 여가 시간은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이어서 자유로운 시간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중매체는 우리의 자유를 가만두지 않는다. 대중 매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노동해서 만든 상품에 대한 소비 욕망을 증폭시키고 있다.

 

- "놀이는 언제고 연기될 수도 있고 중지될 수도 있다."

 

- 명심하자. 아이 때 경험했던 놀이의 즐거움을 되찾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 그는 합의라는 적차 속에 내재하는 억압과 불평등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Posted by 릴리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