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노 가즈아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12.16 #69 KN의 비극 / 다카노 가즈아키
  2. 2012.10.11 #31 13계단 / 다카노 가즈아키
  3. 2012.10.08 #30 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

 2013.11.20-2013.12.06

내가 너무 좋아하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책!

 

항상 다카노 가즈아키의 책은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한 가지씩 가진다. 제노사이드에서는 인류 대학살, 13계단에서는 사형제도, KN의 비극에서는 낙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즐거운 작가와 책이다.

 

그냥 이 작가의 책은 무조건 믿고 보기때문에 처음엔 역시나 흡입력이 장난아니군..하며 읽었으나 빙의된 주인공의 이야기로 책의 절반 이상을 끌고 나가면서 점점 공포스러워지는 스토리! 많이 읽을수록 무서운데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글의 힘. 어쨌든 이 책 때문에 꽤나 고생했는데 혼자 집에 있었을 때 그 무서움이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무서워 불도 못 끄러가고 그냥 엎어져 잤던 그 두려움이란.. 등골이 오싹오싹했다.

 

그래도 역시나 재미있게 읽은 소설. 좋다. 다카노

 

- 갑자기 이소가이의 머릿속에 연수생 시절 선배가 해 줬던 충고가 떠올랐다. 자살을 결심한 환자는 여러 가지 수단으로 의사를 속이려 든다고......

 

- 동의서를 같이 서명한 뒤 보낸 이틀간의 주말. 대부분의 시간을 품 안의 가나미를 안고 보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그것뿐이었다. 어설프게 위로하려 들었다가는 오히려  가나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위로를 한다는 것은 내 마음 속으로 그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상대에게 장벽을 하나 더 만들어주는 것밖에 안 된다. 사람들은 안다. 정말 기쁘고, 정말 슬프고, 정말 외롭고, 정말 두려울 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 한 여성을 계속 좋아한다는 건 붕 뜬 감정뿐만 아니라 때로는 의지력도 필요하더군요....이성을 향한 사랑이 정반대의 감정과 표리일체라는 사실을. 그것도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게 너무나도 쉽게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Posted by 릴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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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8-2012.10.11

 

 

제노사이드를 읽고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작가에게 푹 빠졌다. 그런데 그에겐 더 유명한 13계단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학교 도서실에 있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제노사이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읽기 시작했다. 제노사이드보다는 일단 분량이 적고 내용도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내용의 심오함은 절대 뒤지지 않았다.

 

이 소설은 사형제도의 모순과 이 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형제도를 찬성하고 반대하는 여러가지 입장이 있지만 사실 사형이 선고되어도 집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에게 사형제도에 대해 물어봤다면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것이 나를 비롯한 사형제도를 온전히 몸과 마음으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보통 대답이 아닐까?

 

* 사형제도에 대한 나의 단상

 

왜 그랬을까? 예전 같았으면 책을 읽으면서 그냥 이런 문제점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며 넘어갔을 것 같은데, 이 책을 보면서는 사형제도에 대해서 읽을 때마다 계속 곱씹으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대학원 소수자 인권 수업 중에 실정법과 자연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실정법은 자연법을 기준으로 삼고 만들어지는데 실정법 중에 하나인 사형제도가 자연법의 기본인 생명권을 해칠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인권 교수님이기 때문에 사형제도에 대해서 반대하시는 입장을 가지고 계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찬성하는 입장이셨다.

 

사형제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형을 시켜도 사회가 나아지지 않고 법을 통해서 계도가 되지않는데 생명권을 빼앗으면서까지 사형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냐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찬성자들은 그럼에도 약간의 개선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형수들은 정말 엄청나게 천벌받을 행동을 한 사람들이 받는 형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나 원인을 찾아보면 사회와 가정에 있다. 그 사람이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 그것이 사형제도 폐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한 소급. 어쨌든 교수님의 결론은 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 사회가 어떤 가치를 신봉하냐에 따라 사형제도를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그러고 이어지는 인권 교수님의 박정희 예찬론.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역사적인 평가로만 박정희를 알고 있지만 그 시절을 집접 겪어보신 교수님의 평가이기 때문에 그 시절이 그렇게 힘든 것만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란 참 어렵다.

 

그러면서도 학문적으로 아는 것과 내 가치관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구나 하는 걸 알았다.

 

법률의 가변성을 생각하면 함부로 생명권을 빼앗는 사형제도는 합리성과 효율성만을 근거로 내세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나도 지금 당장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해서 무어라 결론짓기 힘들고 그럴만한 깊이도 아직 없지만, 내가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연장선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고민해봤다.

 

-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자신의 본 모습이었을 것이다. 준이치는 쓰라린 굴욕감을 느꼈다. 매스컴만 아니었으면 동생 아키오는 주변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을 터였다.

 

- 이 나라에서는 흉악 범죄의 피해자가 된 순간, 사회 전체가 가해자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피해자를 괴롭힌들 사죄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요.

 

- 형법이 강제력으로 지키려는 정의는 어쩌면 불공정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지닌 참사관이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정의라는 이름하에 심판하려 할 때 그 정의에는 보편적인 기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아무리 아들을 잃었어도 남겨진 아버지에게는 지켜야 할 생활이 있는 것이다. 매일 세 차례씩 먹고, 싸고, 자는 것, 지인을 만나면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노동으로 수입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 즉 정치가를 선거에서 당선시키기 위해 범죄에 손 댄 자들이 우선적으로 용서받고 있는 것이다.

 

- 특별 배급된 단팥방에 어쩔 줄 몰라하며 맛있게 먹어 치우는 살인범들. 어째서 그들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하는가. 이래서는 희생자들이 위안을 못 받지 않는가, 하며 난고는 일종의 충격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 똑같은 처지에서 제대로 살아온 사람도 수없이 많아. 너는 그런 사람들 얼굴에 먹칠하는 놈이야.

 

- 한번 교도소에 다녀오면 손목시계를 못차요. 수갑이 떠올라서요.

오랫동안 교도관으로 있었어도 그건 몰랐어.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입니다.

 

- 법률이라는 것은 항시 권력 측이 자의적으로 이용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Posted by 릴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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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1-2012.10.07

 

추석 때 집에 가서 읽을 책을 찾다 예전에 동생이 '한 편의 헐리웃 영화'를 보는 것같은 스릴과 즐거움이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라 읽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초반부터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는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계속 읽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 소설의 매력이다.

 

'우와~ 정말 멋진 소설이다!'라고 끝내기엔 너무 많은 내용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음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전쟁의 잔혹성, 그리고 인간의 새로운 흉악한 모습들을 계속 느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고, 나는 이 좁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아둥바둥하고 있는 것인가, 어차피 100년 뒤엔 지금의 65억 인구는 모두 죽고 없을텐데... 라는 비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어느 정도의 픽션은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소설에 반영된 내가 모르는 세상의 현실의 문제가 나를 더욱 흥미롭게 했음에 틀림없는 오랜만에 만난 판타스틱한 책!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아는 세상은 참으로 좁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말 세상은 흥미로운 일들 투성이다.

 

- 불행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보는 타인 입장인지, 직접 격는 당사자 입장인지에 따라 완전히 견해가 달랐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선 함부로 이야기해선 안된다. 내가 모르고 내뱉었던 수많은 말들이 내가 똑같은 일을 겪었을 때 나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올 때 그 부끄러움이란 정말 말로 하기 힘든 지경이다.

 

- 불가능하다던 파란색 레이져의 발명을 둘러싸고 개발에 성공한 기술자와 그를 고용한 회사 사이에 법정 투쟁이 점점 확대되었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얻은 이익이 1200억 엔 중에 발명에 대한 대가로서 기술자에게 지불된 금액은 겨우 6억 엔이었다. 원래 200억 엔의 대가를 받아야 할 것을 빼앗긴 셈이었다.

...

"문명이 한번 멸망해 봐야 알겠지. 과학 문명을 다시 부흥시키는 건 이과밖에 없어. 문과 놈들은 아무리 지나도 전기조차 못 만들걸."

...

연구 생활이 몸에 배고 난 뒤 알게 된 것은 '이과는 살아가는 데 서툴다'는 사실뿐이었다.

...

"문과 사회에서는 거짓말이나 눈속임을 잘하는 놈이 출세하지만, 과학자는 거짓말 하나라도 하면 안 돼."

 

문과와 이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의심할 것 없이 이과적 성향(이과와 문과라는 것도 어쩌면 사람들에 의해 구분지어진 흑백논리일지도 모르지만)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면 나 스스로 그 흑백논리에 갖혀서 나는 문과적 과업들, 예를 들면 독서나 글 쓰기와 담을 쌓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최근에서야 든다. 요즘 나는 글 쓰기를 좋아한다. 내가 쓴 글을 다듬어 가고 내 생각을 정리해 나갈 때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진다.

 

어쨌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챙긴다고, 현재 이과연구자들은 재주부리는 곰이 되어버린 걸까? 아무리 좋은 연구를 해도 그것을 고용한 기업 사이와의 관계에서 과학자들이 이득을 취하기란 힘든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연구밖에 모르는 과학자들, 거짓말을 털끝만큰도 하면 안되는 그런 사람들은 의외로 순수해서 거짓말이나 눈속임을 잘하는 문과인들이 보기엔 쉬운 상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우리에겐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도덕성이 필요하다.

 

확실히 문명의 발전을 몇 백년씩 당길 수 있는 방법은 이과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를 좀 더 살기 좁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문과인들과 예술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실 이런 구분은 무의미한 것 같다. 문과이냐 이과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쨌든 우리는 한 명 한 명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 이 다음 세대의 인류가 출현할 수 있는 장소는 문명국이 아니라 주변과 교통이 단절되어 있는 미개척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지역에 사는 소수 집단에서는 개체 수준의 유전자 변이가 집단 전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남미나 아프리카 부족들 사이에선 자신들의 부족의 계승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근친상간이 많이 이루어지고 자연히 유전자 변이에 따른 기형 출산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형이라는 것, 보통의 인간이랑 다르다는 것이지 꼭 열등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 보통의 인간을 뛰어넘는 생물의 탄생의 가능성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흥미 진진

 

-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 2차 세계 대전 중에서 근거리에서 적 병사와 주우한 미군 병사가 총의 방아쇠를 당긴 비율 : 20%

최전선의 병사들은 자신이 죽으리라는 공포보다 적을 죽이는 스트레스를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지. 그래서 발포율을 높일 만한 심리학 연구가 시행되었고, 베트남 전쟁의 발포율은 95%까지 급상승했어. 사격 훈련 때 표적을 원형 표적에서 인간형 표적으로 바꾸고 진짜 인간인 것처럼 자동적으로 튀어나오게 했어. 거기다 사격 성적에 따라 가벼운 징계를 내리거나 보수를 주었지.

...

죽일 상대의 거리를 멀리 두는 것이 중요해. 두 가지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어.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 예를 들어 적이 인종적으로 다르며, 언어도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다르게 되면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며 그만큼 죽이기 쉬워진다. 평소에도 다른 민족과 심리적인 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즉 스스로가 소속된 민족 집단의 우위성을 믿으며 다른 민족을 열등하다고 느끼는 인간이 전쟁에서 손쉽게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싸우는 상대가 윤리적으로도 열등한, 짐승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라고 철저하게 가르쳐 두면 정의를 위한 살육이 시작된다. 이러한 세뇌 교육이 모든 전쟁에서, 혹은 평소에도 전통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적국 사람들에게 '잽'이라거나 '딩크' 따위로 멸시하는 별칭을 붙이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

전쟁 당사자 중에서 가장 잔인한 의사를 가진 인간, 즉 전쟁 개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만큼 적으로부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없다. 살인에 뒤따르는 정신적 부담을 거의 받지 않는 환경에 있기에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잔학성을 더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

'사람은 어째서 전쟁을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명령하는 인간의 정신 병리를 먼저 해명해야 한다.

 

아프리카 소년병을 키우는 과정에서의 그 인간성의 잔혹함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추악했다. 어머니를 강간하고 칼로 찔러 죽이고, 옆에 동료를 물고 뜯고 싸우고 옆에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 전쟁의 광기. 지금 아프리카에선 많은 부족들 사이의 전쟁이 빈번하고 세계대국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진행형이다.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계속 있는한 전쟁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진정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사람들의 상처입고 황폐해진 마음, 그 마음이 계속 남아 이어지는 아주 무서운 행위라는 것을 아주 마음 아프게 느꼈다.

 

- 평소 정훈에게 감도는 부드러운 분위기는 '정'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겐토는 생각했다.

 

이 소설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이정훈이라는 한국 유학생. 일본인 작가가 정훈이라는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정보를 수집했으며 제대로 이해하고 썼음이 느껴지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 돈의 주변에는 얕은 인간만 모이네.

 

- 20만년에 달하는 인류 역사 중 의학이 발달되지 않은 약 100년 전까지 현생인류와 현저하게 용모가 다른 신생아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살해되었으리라. 인위적인 도태. 그중에서는 진화한 개체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를 없애려는 인간의 습성이 진화의 싹을 솎아내고 있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기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란 말일세.

...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Posted by 릴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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