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43 의자놀이 / 공지영

릴리06 2012. 12. 4. 15:58

2012.12.03-2012.12.04

 

요즘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지만 이 책은 수익금 전액이 기부되는 착한 도서이기 때문에 구입을 했다.

 

왜 제목이 의자놀이일까 궁금했는데 의자를 사람 수보다 적게 놓고 서로 경쟁하도록 만들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서 서로 경쟁을 하고 긴장하게 된다. 이러한 비도덕적인 신자유주의 경제 구조를 빗대어 표현한 제목이다.

 

공지영 작가가 어려운 노동법 이야기도 나오지만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써줘서 술술 잘 읽었다.

 

-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독하다가 너무 많은 한자와 너무 많은 전문 용어에 부딧히게 되자 일기에 쓴 "이럴 때 내가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구절 하나 때문에 당대의 수많은 대학생이 가슴을 치며 어린 전태일들을 구하기 위해 노동자가 되어 떠났다.

 

많은 한자와 전문 용어는 그들이 자신들의 벽을 쌓고 일반은은 못들어오게 만드는 구실이 된다. 전태일 일기의 한 구절 때문에 노동자가 되어 떠나는 사람들, 참 낭만적이고 멋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런 낭만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 그래서 병소를 째고 끝까지 들어가는 겁니다. 본인이 당황스러울 만큼 집요하게 밀고 들어가지만, 그러고 나면 편안해지거든요....병든 부위가 근원적으로 정확하게 밝혀지는 경험들을 하게 되고,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숨기고 감출수록 더욱 나는 부자연스러워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고통받는 경우는 자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국가가,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해요. 왜냐하면 가해를 한 주체이기도 하니까 책임이 있다고 보는 거지요. ... 아무리 건강했던 사람들도 병들어요.

 

- 우리는 대체 왜 죽음에 이토록 무감각해진 것일까?

 

-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고 난 후 더는 내 삶이 내가 원래 알던 삶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달라질 것임을 예감했다.

 

-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살아야 한다.

 

정규직을 가진 사람들은 비정규직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장 받는 것에 대해서 매우 보수적이다. 몇 달전 조리사 사건도 그렇고, 영전강 관련 일을 통해서도 많이 느꼈다. 이것은 아마도 정규직을 갖기 위해서 사람들이 무던히도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만큼 노력하지 않은 것 같은 사람이 탄탄하고 걱정없는 직업을 갖는 것이 배가 아프게 느껴지겠지... 이런 현상의 근본적인 문제는 누구나 인간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직장에서의 안전보장망을 모두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결국엔 우리 국가 우리 사회가 우리에게 해주지 못한 부분인데 우리는 정말 의자 놀이를 하듯이 저들은 몇 개 되지도 않는 의자에 앉을 자격이 없다고 서로를 비난한다. 비정규직도 정규직도 함께 살아야 한다.

 

- 퇴직 이후 그들의 삶을 지켜줄 유일한 방패를 전부 내놓고라도 회사를 지키고 싶다는 것이다.

 

- 가정이 무너지면 가끔 직장생활도 무너지지만, 일터가 무너지면 가정은 거의 대부분 무너진다. 아무런 사회안전망, 즉 재취업과 실업보험, 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 등에 대한 약속 없는 정리해고는 삶에서 해고된다는 말과 같다.

 

- "물의라도 빚지 않으면 누가 우리의 말을 들어줍니까?"

 

- 자신들이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은 부당한 대우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으며, 평택 공장 바로 옆 이젠텍의 파업도 모른 척했던 것을 반성했다.

 

- 민주노총은 "제네바조약은 적군과 점령지 주민에게도 음식과 의약품은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라고 항의하며 "제발 물만이라도 들여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사측은 이렇게 대답했다. "물 먹고 싶으면 나와서 먹어라."

 

- 조합원들은 일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지 파괴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파업 중에 단전을 시켰음에도 조합원들은 비상 발전을 해서 도료가 굳지 않도록 전기를 돌리고 계속 관리를 했다고 한다. 사측보다 회사를 더 아끼는 쪽은 조합원 쪽이다.

 

- 약자의 생존이 위협받는 행위가 있을 때 이를 제지하지 않는 경찰과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 권력인가. 보호는커녕 기득권을 위해 또 무력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사회가 불공평한데 중립을 지키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 <PD수첩>에 출연했던 한 노동자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사회가 우리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이 사회에서 나가달라고."

 

-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 구조적 폭력은 국제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무관심과 순응의 자세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당연히 이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구조적 타살이며 사회적 타살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람 수보다 하나 모자라게 의자를 가져다놓으면 사람들은 알아서 서로 경쟁하고 긴장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편으로는 조합원들의 삶이 안타깝고 가슴아프기도 했지만 이러한 내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이 노동조합에서의 문제점은 없는 것인가, 정의로운 구조인가, 그림자는 어떤 부분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 조차도 하지 않으며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동조하면서 읽기에는 아빠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쓰러지기 전까지 아빠는 노동조합과의 갈등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으셨다. (물론 당시에 나는 이런 현실을 전혀 몰랐던 참 무심하다고 표현하기에도 나쁜 딸이었다.) 아빠가 쓰러진 후에 상무님이 병원에 오셔서 조합장과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어가는지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을 옆에서 들어면서 처음으로 알았다. 복수노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회사 사정이랑 여러가지가 맞물리면서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속사정을 자세하게 알고 싶지 않았다. 그 때는 내가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생각과 그냥 아빠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다 그만두고 건강에만 신경쓰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회피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달이 조금 더 지나 우리 아빠를 보내게 되었고 장례식장에 찾아온 그 노동자들을 중립의 마음 조차 가지고 바라보기도 힘들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잘 못하고 마음이 착한 우리 아빠였는데 그들이 빼앗아 간 것만 같은 마음.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약자, 노동자들의 아픔만 눈이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순수하게만은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마음도 복잡하고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