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9-2012.11.29

 

먹고(이탈리아) 기도하고(인도) 사랑하라(발리)

 

이 책은 영화로 먼저 접했다. 그 때는 사람들이 지루하다는 평이 많아서 영화는 보지 않았는데 이번 발리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영화도 한 번 봐야겠다. 우붓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영화 영상 속에서 만나보고 싶다.

 

이 책의 저자 리즈는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1년의 여행을 계획한다. 이탈리아, 인도, 발리에서 각각 4달씩의 여행, 생각만해도 가슴떨린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이탈리아, 인도, 발리를 모두 다녀와봐서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 이탈리아, 인도, 빌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생각해봤다.

 

이탈리아 - IMAGINE

(고대 유적이 많은 나라라서 그런지 폐허가 된 유적지나 옛 흔적이 많은 도시의 모습 곳곳에서 이탈리아의 옛모습을 상상하면서 다녔다.)

인      도 - EAT

(처음에는 위생이 안좋은 인도음식을 먹는데 거리낌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놀라웠다.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먹고 우유의 재발견을 한 나라)

발      리 - RELAX

(발리는 정말 한 없이 편안해지고 쉬고싶어지는 평화로운 매력이 있는 섬이다.)

 

그럼 나에겐 '상상하고 먹고 쉬어라' 이 정도?

 

< 이탈리아 >

 

-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그의 문제점을 토론하는 일은 적절치 못한 일이다. 또한 나로서는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시선으로 우리 이야기를 서술할 자신도 없으니 우리 결혼의 실패사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객관적인 질실이란 있을 수 있을까? 누군가에 의해 말되어지고 쓰여지는 순간 온전한 사실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내 입장에서 이야기하려는 애초의 목적이 없는 이상, 나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입을 다무는 것이다.

 

- 하지만 모든 일에 꼭 실용적 가치가 있어야 한단 말인가? 난 수년간 근면한 일개미로 살았다. 일하고 생산하고 마감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잇몸, 신용카드 기록, 투표 등등을 관리하면서. 인생에는 오로지 의무밖에 없단 말인가? 슬픔의 암흑기에 처한 내게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것만이 지금 당장 즐거움을 가져다 줄 유일한 활동이라는 이유 외에 달리 무슨 이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가치에 너무 우선 순위를 두지 말자. 우리는 때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마음이 즐거운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 대 플리니우스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누구든 욕탕, 수조, 하수구, 주택, 정원, 장원 등에 로마가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공급하는지 고려해본다면, 게다가 먼 곳에서부터 그 물을 운반하고, 아치를 세우고, 산을 뚫고, 골짜기를 돌아가는 걸 참작한다면 세상에서 이보다 더 경이로운 일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것은 서양은 자연을 개발하고 동양은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위의 글을 읽는 순간 동양이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지, 서양의 문명처럼 발달되지 못한 기술력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사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여행가는 아니다. 내가 그 사실을 아는 이유는 그 동안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정말로 여행을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여행을 열심히 다니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말씀들 하시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 부끄럽다. 나같은 사람, 나보다 더 여행을 잘 하는 사람을 여행 하면서 많이 만나봤기 때문에 나는 여행에 관해서 별 말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1321년 단테가 지옥, 연옥, 천국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신곡을 발표했을 때 그가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문학계에 큰 충격이었다. 단체는 라틴어가 타락했으며, 엘리트들만의 언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진지한 산문에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학을 창녀로 전락시키는 꼴'이라고 했다. 귀족 교육이라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만 읽을 수 있는 라틴어를 사용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할 이야기를 돈을 내고 사야 하는 무언가로 전환시켜 버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 단테는 거리로 돌아가 그의 도시에 사는 시민들이 사용하는 진정한 플로렌스어를 수집해 그 언어로 이야기를 썼다.

 

라틴어와 이탈리어와의 관계가 마치 우리나라에서 한문과 훈민정음과의 관계같이 느껴졌다. 우리 나라에도 단테와 같은 천재 작가가 있어서 이러한 현실을 꼬집어줄 수 있는 지식인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한문, 라틴어 이것은 기득권층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이탈리아어는 로마어도, 베네치아어도 아니며, 완전한 풀로렌스어라고 할 수도 없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단테어다. 유럽의 어떤 언어도 그런 예술적 혈통은 지니고 있지 않다.

 

- 하지만 어스름이 내리는 우아한 이탈리아 정원에서 그들을(우울과 외로움) 만나게 된 건 정말 뜻밖이었음을 인정한다. 여긴 그들이 올 곳이 아니었다.

 

정말 여행중에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글쓴이처럼 너무 당황스럽다. 나는 여기서 행복하려고 왔는데 지금 이 당황스러운 감정들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점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여행을 한다고 해서 매 순간 즐거울 수는 없다. 때로는 짜증하고 힘든 경험도 있지만 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여행의 길은 항상 즐겁다.

 

- 이 영원한 도시 로마에서 침묵의 아우구스테움은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끊임없는 격동과 변화의 물결에 준비해야만 한다고.

 

-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끼리 만나는 법이니까

 

- 우리(이혼남녀)를 말라죽게 하는 건 감정적 위축, 전통적인 삶의 방식의 궤도에서 벗어났다는 충격, 그리고 많은 보통 사람들을 영원히 궤도에 붙잡아두는 그 모든 감정적 위안을 잃어버린 데서 오는 허탈감이다.

 

- 고대 인도의 요가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에는 불완전하더라도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 완벽한 다른 누군가의 삶을 흉내내며 사는 것보다 더 낫다는 말이 있다.

 

< 인 도 >

 

- 일상의 평범한 노동은 내 자아 순화 및 기타 등등을 위한 정신 수련의 일종으로 행해져야 한다.

 

머리로 하는 노동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하는 일상의 평범한 노동이 정신 수련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에 든다. 몸을 움직일 때는 망상에 빠지거나 탁한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는 느낌이 든다.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일상 수련이다.

 

- 넌 그저 데이비드의 마지막 조각을 놓아버리는 게 두려운 거야. 그렇게 되면 넌 진짜로 혼자가 될 거고, 리즈 길버트는 정말 혼자가 됐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서워 죽을 지경이거든. 하지만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어, 먹보야. 지금 이 순간, 네 마음속에서 이 남자에 대한 집착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깨끗이 비워버리면 거기에 빈 공간이 생기겠지? 그게 바로 출입구가 될 거야. 그럼 우주가 그 출입구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봐. 우주가, 신이 그곳으로 밀려들어 오고, 넌 생각지도 못했던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될 거야. 그러니까 데이비드를 이용해 그 출구를 막는 짓은 그만둬. 그냥 놓아버려.

 

- 사람은 다 똑같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우리가 갖는 집단적인 감정적 지형이다. 거의 백 살쯤 된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역사상 인간이 싸움을 벌이는 문제는 단 두 가지뿐이요. 날 얼마나 사랑해? 그리고 누가 대장이야?" 

 

< 발 리 >

 

- 자네의 양심을 길잡이로 삼게나.

 

- 발리에서 복합 가족은 너무도 중요해 이를 하나의 살아 있는 개인으로 취급할 정도이다. 따라서 그 울타리를 떠나면 안 된다. 제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이 시스템은 세상에서 가장 온전하고, 보호받으며, 차분하고, 행복하고, 균형 잡힌 인간을 길러낼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을 땐? 내 친구 와얀과 같은 경우에는? 추방자는 공기가 없는 궤도 속에 버려지게 된다.

 

- 그간 우붓의 해외인 거주자들을 관찰해온 결과, 이 마을 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똑같은 유형이다. 고국에서 푸대접받고 삶에 지쳐, 안간힘을 쓰던 모든 노력을 내려놓고 발리에서 무한정 임시 거주하기로 결심한다. 이곳에서는 한 달에 200달러면 멋진 집에서 살 수 있고, 젊은 발리 남자나 여자를 애인으로 둘 수도 있다. 정오가 되기 전에 술을 마셔도 누가 뭐라는 사람 없고, 약간의 가구를 수출하는 것으로 푼돈을 벌 수 있다.

...

이들은 무척 수준 높은 사람들로 다국적이며, 재능도 있고, 영리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한 가지가 빠져버린 사람들 같다. 그들이 철저히, 영원히 포기해버린 그것을 바로 야망이다. 

 

- 성 안토니는 사막으로 침묵 수행을 떠나 온갖 종류의 환영들에게 공격을 받은 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 천사와 악마를 어떻게 구분하냐는 질문을 받자, 성자는 오로지 그 대상이 떠나고 났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에 따라서만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 들면, 방금 만난 건 악마다. 마음이 가벼워지면, 그건 천사다. 

 

Posted by 릴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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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3-2012.10.31

 

언젠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 번 읽다가 말았던 책!

 

도서관에서 문득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빌렸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많은 호평을 받지만 나에게는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보다 덮어버린 책이 대다수였다. 이건 왜 이리 어려워~ 이러면서...

 

이번엔 차근차근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익숙한 표시가 보인다. 이 표시는 내가 책을 읽을 때 인상깊은 부분을 체크해두는, 맞다. 바로 내가 해 놓은 표시였다. 이 책을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적이 있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여기 이 익숙한 표시가 내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순간 아~~ 내가 이런 것도 안지우고 반납했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하고 음~~ 몇 년 전과 비교해서 내 생각의 변화가 보이겠군... 생각하니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래서 자기 책을 가지고 읽는 것이 더 좋은가 싶기도 하다. 하나의 책에 계속해서 변화하는 내 생각을 덧칠해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첫 번째 읽을 때는 참 무슨 사랑을 이렇게 어렵게 설명해놨냐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 읽을 때는 상황마다 딱딱 어울리는 그의 탁월한 비유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 책을 읽었던 사이의 시간만큼 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이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이 주목한 것은 인간의 양면성이 아닌가 싶다. 어떤 현실을 합리화 시키며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이성과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괴로워하는 감정, 이 어쩔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의 인산 심리를 잘 포착하고 묘사하고 있다.

 

+ 내용 정리 후

 

내가 표시해놓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깜짝 깜짝 놀라며 다 정리했다. 보통의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이런 모습인 것 같다. 만나고 결혼을 해도 관계 속에서 계속 사람은 외롭다고 한다. 혼자여서 외로운 것보다 관계 속에서 외로운 것은 더욱 답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 "이 안쪽이 피곤해.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겉보기에는 흥미로운 일들을 하는데도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아."

 

- 그 과정에 중요성이나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람도 없이.

 

- 평범한 물건을 액자에 넣으니 그 형태와 색, 울림을 관성적으로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액자는 이런 의미였다.

 

예전에 사진동아리를 할 때를 생각해보면 어떤 사진이든 크게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두면 다 그럴듯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래서 뭐든 크게 뽑는게 좋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속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과 계기가 필요하다.

 

- 솔직함(무례와는 습자지 한 장 차이)이라는 것의 장점이 뭐냐 하는 이야기는 관두고, 어쨌든 조애나는 정곡을 찔렀다. 앨리스는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렸다.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예전에는 혼자인 것이 농담과 가벼운 장난의 대상이었지만, 점점 말 못 할 무게감이 더해졌다.

 

- 앨리스가 지금 에릭을 사랑하는 것일 리가 없다면,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이 동어 반복적인 묘한 감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거울에 비친 사랑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애정의 대상보다는 감정적인 영정에서 더 많은 쾌감을 도출하는 것을 뜻한다.

 

- 고정된 상(像)과 현실적 제약의 독재에서 벗어나, 독자의 상상에 맡길 수 있다는 것이 책의 특권이다. 안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톨스토이가 정확히 밝힐 필요 있었을까?

 

- 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덕에, 호텔과 매혹적인 연인은 풍부한 상상력의 방아쇠 구실을 할 수 있었다.

 

- 그렇지만 우리가 그녀를 가여워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에릭에게 끌린 데에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들이 보기에도 매력적이라는 점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 타인의 도움 없이도 좋고 싫은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수지에게는 부러움을 살 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음식 비평가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은 폴란드 식당을 런던 최고로 꼽았고, 세상이 칭찬하거나 관심을 쏟지 않는 남자라도 사랑했다.

 

- 그녀의 자신감은 늘 확인을 받아야만 자라는, 불안전한 구조였다. 원하는 걸 얻거나, 누군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바람이 빠지는 타이어 같아서 늘 다시 채워줘야 했고, 그게 불가능해지면 이전의 낙관이 오만한 허위로 보이는 상태로 급속히 빠져들었다.

 

- 내 필요를 고백할 때는 감정적으로 벌거숭이가 된다. 당신이 없으면 헤매게 될 거라고, 독립적인 사람처럼 보이려 애썼지만 꼭 그렇지도 않으며, 인생의 방향이나 의미도 모르는 형편없이 유약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

그러면 감정의 옷 입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른 속, 상징적인 생식기의 약함, '당신이 필요하다'는 엄청난 비밀을 남에게 들키지 않도록 만든 옷장 전체로 이루어진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조종할 수 없는 사람, 곧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시시덕거림으로써 우리를 미치게 하거나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 남들이 싫어할 만한 점을 어느 정도 자각하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비판함으로써 외부의 공격을 대부분 피할 줄 안다.

 

- 위대한 러시아 심리학자 파블로프는 덜 알려진 실험을 통해, 반응하도록 훈련하던 신호에 충분한 혼란을 주면 개가 몸을 떨고 대소변을 보면서 신경증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밝혔다.

...

종소리가 따로는 이것을 의미하다가 때로는 다른 것을 의미하면 개는 천천히 광견 상태에 빠져들었다.

 

- 평소에는 멀쩡한 사람도 사랑을 하면 편집증에 걸리고, 별별 최악의 생각을 다 한다. 편집증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따르는, 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상대를 높이 평가하니 내가 버려질 가능성이 점점 커질밖에. 하지만 일단 재앙의 시나리오에 끌려들면 사랑은 상처를 악화시킬 뿐이다.

 

- 자기가 사랑스럽게 타고났다고 생각하면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상대의 기둥 없이도 케이블을 수백미터 늘어뜨릴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해가 부족함을 벌충하므로 당신을 사랑해란 말이 덜 필요하다. 당신이 왜 날 사랑하지 않겠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본 태도다. 내가 나한테 느끼는 감정을 당신이라고 못 느끼겠어?

 

- 당신은 날 많이 사랑하지 않아라는 억압된 두려움과 내가 말도 안 되는 걱정으로 당신을 괴롭히면 안 되는데라고 타고난 심리적 규범이 폭발적으로 뒤섞여 상호 작용하는 것이 애인의 편집증을 낳는 마법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성을 찾고 성숙해지려 노력해도, 나는 조금씩 미쳐가......

 

- 사랑에서는 권력이 훨씬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정의에 의존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 누군가 이웃집 정원으로 들어가서 거기 있는 위험을 끌어안아야 한다. 용기를 내서 "커피 마시러 올래요?" 라거나 "혹시 그 영화 봤어요?" 라고 물어야 한다. 누군가 헛기침을 하고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게 좋아요." "우리 결혼할까요?"라고 말해야 한다. 자신의 말을 권력의 저울에 올려놓고, 두려워하면서 상대방이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기를 바라야 한다. 하지만 책임을 따지기는 어렵다.

...

그가 정중히 거절한다면 관심이 없나보다 하고 양해해야 할 뿐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 진실은 얻기 어려운 보물이며, 쉽게 읽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경박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편견이다. 진리는 올라야 할 산과 같아서, 위험하고 모호하며 품이 많이 든다. 도서관의 환한 불빛 아래에 학문의 좌우명은 이렇게 쓰여 있다. 읽기 힘든 책일수록 더 진리에 가깝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다. 마음이 열려 있고, 명쾌하고, 예측 가능하고 시간을 잘 지키는 애인보다는 힘들게 하는 애인이 더 카치가 있는 것 같다.

 

- 공항은 두 문화가 극적으로 부대끼는 곳이었다.

 

- 저자는 우리가 혼자만의 느낌이라고 기쁨에 떠는 연인들처럼, 독자는 책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서 외친다. '세상에, 나랑 똑같이 느끼는 사람이 있네! 나 혼자만......을 느끼는 줄 알았는데.'

 

- 독자에게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책에는 그럴듯한 편견이 따른다. 스탕달은 어떤 생각을 소설에 도입하는 것을 음악장에서 총을 쏘는 것에 비유했다.

 

- 앨리스는 생일, 축제일, 동창 모임이나 결혼식에서와 같이 당연히 행복해야 하는 때는 늘 초조했다.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 일을 즐기기가 힘들었다.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감탄을 늘어놔야 하는 경우에 그랬다. 행복해야 한다고 계속 되새기는 것보다 서글픈 일이 있을까.

 

- 흔히 아픔과 고민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한다. (지성인의 주장)...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반대 주장도 있다. 생각이 아픔이나 문제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그것들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것이다.(자연주의자의 주장)

 

- 아무리 여자를 칭찬해도, 기본적으로 에릭은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이 열등하다는 근본적인 믿음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 남자는 여성들에게 관대할 수 있었다.

 

- 앨리스로서는 이번이 처음으로 휴가 이야기를 자세히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직장에서 대강 이야기를 했지만, 수지와 대화하며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을 따져볼 참이었다.

 

- 리넨 드레서를 산 일이나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보내는 일이나, 앨리스는 고전적인 소비의 덫에 걸린 것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는 행위에 무의식적으로 깔린 목적은 단순히 그것을 가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변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스운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은 모델이 입은 옷이 아니라 모델 자체였다.

 

- 누구와 사귈 때, 사람만 달랑 올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축척된 문화가 따라오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관습이 따라온다. 특정한 지역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함께 온다. 이러한 성향은 민족성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계층과 지역과 집안의 특성이 뒤섞여 구성된다. 본인은 이 무의식적인 요소들의 집합을 정상 상태로 여린다.

 

- 약한 쪽이 자신을 드러내고, 강한 쪽은 자기를 절제하게 마련이라면, 인터뷰어는 강한 쪽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강한 쪽이라면 마키아벨리식 책략에 따라 질문을 해야겠지만, 앨리스는 단지 자신이 드러날까봐 두려워서 질문하는 쪽에 서는 것이었다.

 

-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 프로이트 식으로 이해하자면, 스스로도 모르는 자아의 영역, 해결 안 된 갈등의 영역이 광활하긴 해도, 스스로 알고 갈등의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어떤 동력이 존재한다.이러한 틀에서 꿈과 말실수는 표현법을 모색하는, 혼란스럽지만 대단히 논리적인 시도다.

 

- 친구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LED의 불빛이 밝고 희망차게 4라는 숫자를 깜빡이면, 여지없이 누구의 전화이면 좋겠다는 마음을 드러내 버렸다. 응답기 주인은 바라던 그 사람이 드디어 전화했다는 생각이 밀려드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라플랑슈 퐁탈리스가 '욕망이 성취되었다고 상상하는 심리적 각본'이라고 정의한 전형적인 소원 성취 형태였다.

 

이러한 상태는 삶의 활력도 되긴 하지만 정말 심신을 지치게 만든다.

 

- 한 사람 내부에서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믿음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 자기기만의 뚜렷한 특징이다.

 

- 책임 떠넘기기라는 고전적인 실내 놀이가 있다. 사람 두 명, 금기시되거나 위험한 일, 책임감을 느끼거나 비난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되는 놀이다. 방법은 놀이에 참가한 한 사람이, 양쪽이 원해서 일어난 일에 대해 다른 한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가도록 미묘하게 상황을 조작하는 것이다.

...

상대가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밟았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비난을 받게 될 사람)은 마지막 4단계를 취하는 사람이다.

...

"그래요, 내가 다르게 받아들여서 미안하군요. 물론 당신 잘못은 아니지요. 내 말을 잘 들어요, 앨리스. 앞으로 헷갈리고 위선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한테 보이면 고맙겠군요."

 

- 그이도 다를 바 없는 인간이구나. 조지 버나드 쇼가 말한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과장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라는 유명한 경구의 진부한 메아리였다.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까 씌워지는 그런 마음, 알고보면 그 사람도 보통의 사람인데 우린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투영시키면서 상상을 하고 만족을 느끼고자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보통의 사람이지만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 관계란 스스로 균형을 잡고자 하는 원초적이고 잔혹한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방정식으로 나타냈을 때, 두 사람이 함께 하려면 양쪽에서 40단위에 이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자. 양쪽이 20단위씩 노력을 내놓는 관계가 가장 합리적이겠지만, 원래 한쪽이 상대방보다 더 많이 노력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떻게, 또는 왜 그럴까? 덜 노력하는 편은 어떻게 정해질까? 상대가 얼마나 신경 쓰느냐를 측정하는 몹시 냉소적인 감각에 따라서 그렇게 된다.

 

- "언제나 당신보다는 내가 노력을 해야 했어요.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저 이렇게 된 게 불가피한 일은 아니었는데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으면 좋겠어요. 나는 당신을 이해하려고, 당신이 왜 그러는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화가 끓어오르고 울고 싶네요. 모든 게 쓸데 없는 낭비였어요."

 

내 주위의 대부분의 남녀관계의 마지막은 남자의 사랑의 변심? 혹은 무심함?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 중 자기 주변은 여자가 문제라고도 이야기를 하니 둘 다 문제는 있다.) 여자 혼자 관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20을 넘어 30, 35,36,37,38,39의 노력을 쏟아붓다보면 그럴수록 차오르지 않는 우물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지치고 먼저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헤어지자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 나 정말 힘드니깐 너도 좀 노력해줄래?

2. 나 이제 힘들어서 치사해서 너랑 못해먹겠다.

어느 여자도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100% 1번 혹은 2번의 이유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1번과 2번이 어느 정도 섞여있냐의 문제이지. 관계를 적절히 유지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도 유지되는 관계는 없나?

 

 

Posted by 릴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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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4

 

이외수하면 대학 시절 '장외인간'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외수라는 작가의 대단한 깊이와 통찰에 감탄했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짧막한 토막글을 모아 펴낸 이런 책은 왠지 작가 이외수의 진면목을 보기 힘든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나는 여자이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여자를 모르겠다. 사실 남자도 모른다. 나를 잘 알기도 힘든데 내가 다른 사람들을 알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래도 명확한 것은 나를 알아야 하고 내 세상의 크기와 깊이를 확장해 나가는 일이 우선되어야, 잘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보니 세상은 참 악으로 부패해 가고 인조적이고 병적인 것들이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자 목적으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랑' 생각만으로도 가슴설레는 단어이다.

 

- 어떤 일이건 사심 없이 십 년만 투자하라. 십 년 동안 사심 없이 병뚜껑만 수집해도 저절로 철학이 생기고 운명이 변하고 세상이 그대를 주목하는 성과를 얻을 것이다.

 

- 외로움을 겁내지 말라. 그대가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대의 뼈저린 외로움은 물리칠 방도가 없으리니. 외로움은 평생의 동반자, 비록 그대가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하더라도 그놈은 한편생 그대 곁을 떠나는 법이 없으리라.

 

- 자신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사실을 먼저 가르치시게

 

- 때로 사랑은 예고편도 없이 막을 올리기도 한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시간, 전혀 예기치 못했던 장소에서 사랑은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 성적지수와 행복지수는 반드시 정비례하는가. 아니다. 교수가 얼굴에 웃을 떠올리는 횟수와 바보가 얼굴에 웃음을 떠올리는 횟수만 비교해 보아도 대답은 자명해진다.

 

- 물질의 빈곤이 그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빈곤이 그대를 빈곤하게 만든다.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차 있는 가슴이라면 어떤 사랑도 들어앉을 자리가 없다. 어떤 사랑도 들어앉을 자리가 없는 가슴에는 어떤 행복도 들어앉을 자리가 없다.

 

- 사랑할 때마다 실패를 되풀이하면 먼저 자신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잘못되지 않았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상대를 감당할 만한 내적 깊이를 소유하고 있는가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만 고집하는 성격을 버리는 연습도 해야 한다.

 

- 과감하게 현실을 탈피해서 이상에 도달한 사람들은 모두가 껍질이 깨지는 아픔을 겪어본 사람들이다. 껍질이 깨지는 아픔이 두려워 현실에 안주해 있는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힘으로는 하늘을 날지 못한다.

 

- 인간의 경우 사랑의 크기는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크기와 정비례한다.

Posted by 릴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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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1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서 무섭게 빠져들어 읽은 책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노희경 작가 원작 소설인데,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세상 보통의 어머니, 아버지, 자식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어찌 씁쓸하다. 이렇게 아둥바둥 사는 것이 가정이긴 하나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서로간의 위로와 사랑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반성과 다짐을 해본다.

 

 

- 아니 어쩌면, 엄마가 못 챙긴 것은 친구의 몸이 아니라, 병이 두려워 자궁까지 들어낸 친구의 약해진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랑은 책임이야. 적어도 책임지려고 하는 노력이야. 그게 사랑인 거야.

 

- 이런 순간에 가장 절실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영석뿐이라니!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연수는 오늘따라 그것이 당혹스럽고 씁쓸하다.

 

-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작 수술을 이틀 앞두고서야 얘기를 해주다니! 그런 상황도 모르고 자기 일에만 빠져 허우적거렸던 자신은 뭐란 말인가.

 

- 천성이 이타적인 엄마가 곁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기적이 되어버린 가족들.

 

-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모르면 배워야 하는 것을 그것이 나려니, 그게 내 사랑법이려니 하고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자식들과의 거리는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 헌데, 엄마의 방에서 느닷없이, 며칠 전 영석의 집 안방에서 보았던 사진 속 그의 아내가 떠올랐다. 남자와 여자, 아니 아내와 남편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아내의 손길이 하나 하나 모이고 모여 완성되는 게 남자, 남편이었구나.

 

 

Posted by 릴리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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