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0-2013.04.21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김수영은 자신의 소시민적 나약함에 정직하게 직면했고, 그것을 숨기지 않고 노래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수영은 위대하다.

 

- 자유를 꿈꾸며 사는 사람만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담벼락과 조우할 수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갇혀 있다는 사실. 제한된 것만을 하도록 허락된 자유. 자유 정신이 어떻게 이런 허구적인 자유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 온갖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 노예의 굴종과 비겁을 감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노예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고, 지금 주인의 당당함과 자유를 쟁취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인으로 살기를 결정한 셈이다.

 

- 자신의 페르소나를 애써 벗자마자, 맨얼굴이 아니라 새로운 페르소나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의 맨얼굴은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를 벗겨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맨얼굴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 자신의 상처나 약점을 솔직하게 토로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고칠 수가 없다.

 

- 유년 시절 가난했던 탓인지 어떤 남자는 부와 명성을 쌓을 때까지 모든 열정을 자신의 업무에 쏟는다. 아이를 떠나보낸 여성이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면, 이 남자는 미래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그는 가족과 살뜰한 시간도 보내지 못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지고 않는다. 현실에서 누려야 할 행복을 무한히 연기하고만 있을 뿐이다.

 

-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래에 대한 염려는 '지금 그리고 여기' 펼쳐지는 현재의 삶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당연히 현재의 행복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내가 없다'는 주장은 부정적으로 '내가 공하다'고 표현된다. 이 주장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나는 수많은 인연들의 마주침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나에게 나의 것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모두 인연이 있어서 내게 잠시 머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도, 젊음도, 나의 아이도, 그리고 돈마저도 모두 그러하다. 그것들은 모두 인연이 되어서 나에게 왔고, 인연이 다해서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나 자신이나 내가 가진 것이 공하다는 사실을 아게 되면, 우리는 부질없는 집착으로부터 멋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기 전, 옛사람들은 '진인사대천명'이란 선비 정신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는 초월자에게 기대기보다는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비범한 인문적 정신이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대천명'이란 말 그대로 초연했다.

 

-  이제 자신이 최선을 다했을 때 할 수 있는 것과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할 수 없는 것의 경계에 도달했다. 최선을 다해도 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야만,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맹자가 말한 '하늘'이자 '하늘의 명령'이다.

 

- 인의예지의 명칭은 반드시 우리의 실천 이후에 성립한다. 어린애가 우물에 들어갸려 할 때 '측은지심'이 생겨도 가서 구해주지 않는다면, 그 마음의 근원만을 캐들어가서 '인'이라 말할 수 없다.

 

- 아렌트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당신은 근면과 성실이란 미명 아래 사유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가?" "지금 당신은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 그렇지만 이리가라이는 평등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폭력성에 주목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부정하는 논리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리가라이에 따르면 남녀평등 이념 속에서 평등이란 잣대는 여전히 남성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이 만든 상품을 활기차게 구매할 경우에만 유지되는 체제이다.

 

- 여가 시간은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이어서 자유로운 시간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중매체는 우리의 자유를 가만두지 않는다. 대중 매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노동해서 만든 상품에 대한 소비 욕망을 증폭시키고 있다.

 

- "놀이는 언제고 연기될 수도 있고 중지될 수도 있다."

 

- 명심하자. 아이 때 경험했던 놀이의 즐거움을 되찾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 그는 합의라는 적차 속에 내재하는 억압과 불평등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Posted by 릴리06

2013.01.09

고등학교 시절 유행했던 광수생각. 아직도 나오고 있는 이야기다.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생각거리를 담아서 읽기 부담스럽지 않게 그린 만화들을 모은 책이다.

올 해 나온 이 책에 sns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트위터를 가입한지는 일 년이 넘었지만 활발하게 사용한 건 지난 11-12월이었다. 물론 대선과 관련해서... 당시에 나는 민주당 쪽의 사람들만 팔로잉을 하면서 내가 보고싶은 멘션들을 모아봤다. sns가 1인 미디어로서의 굉장한 역할을 하나는 것을 그 때 깨달았고 그 당시에는 틈만 나면 트위터에 들어가서 올라온 트윗을 보는 재미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냐면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트윗 속에서 내가 보고 싶은 기사들(만) 보면서 그 사이에서 희망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트위터도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기 때문에 정보가 굉장히 편향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에 다른 미디어들을 보기도 싫었다.

sns만 보고 있는 건 그것 자체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참고만 하고 정보를 얻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지만 조심해야겠다.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2 나비야, 청산가자 2 / 김진명  (0) 2013.01.11
#51 나비야, 청산가자 1 / 김진명  (0) 2013.01.10
#50 광수생각 / 박광수  (0) 2013.01.09
#49 공무도하 / 김훈  (0) 2013.01.09
#48 카지노 / 김진명  (0) 2013.01.08
#47 황태자비 납치사건  (0) 2012.12.26
Posted by 릴리06

2012.10.14-2012.10.19

 

 

나는 같은 책을 두 번 읽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새로운 내용을 읽고 싶지 아는 내용을 다시 보는 것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주말, 문득 읽을 책이 다 떨어지고 책장을 둘러보다 '자기혁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1년전에 꼼꼼하게 읽는다고 읽은 책이었는데,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너무 많고 나에게 의미가 되어주는 내용도 달라졌다. 1년 전의 내가 읽은 책과 1년 후의 내가 읽는 책은 그 사이의 나의 생각의 변화에 따라서 매우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느꼈던 점은 블로그에 내용을 정리한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은 내용의 망각 속도가 매우 달랐고, 그리고 내용의 내면화의 정도도 두드러지게 차이가 났다. 이 정리 습관을 잘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나에게 가져다 줄 큰 변화에 대한 기대에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두 번째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강조하는 자기 안의 혁명,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익숙한 것을 지양하는 자세,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항상 고민이 되는 상황에서 나의 선택의 기준은 '변화 속에 답이 있다.' 이다.

 

아래의 한 문장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 같다.

 

인생은 자기 자신에 대한 도발이고 혁명이다.

 

- 낮선 것과 조우하지 않는 한 새로운 생각은 없다. 이렇게 새로운 상황에 대한 생각들이 사유되고, 그것들이 의식에 젖어들어 나의 행동이 교정되고 내면화되는 과정이 바로 긍정적 습관화, 소위 긍정적 애티튜드의 형성이다. 반면 좁은 범위에서 습관화된 행동과 생각만 반복하게 되면, 우리는 모든 낯섦을 거부한 채 누에처럼 고치를 짓고 거기에 안주하세 된다.

 

낮선것을 만나기 위한 나의 노력은 평생동안 이어져야 할 것이다. 기성세대라는 틀 안에 나를 가두지말고 조금 더 움직이고 조금 더 생각하여 그러한 것이 나중엔 귀찮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습관화가 필요하다.

 

- 스스로 자아라고 믿는 의식은 내가 가진 편집가위로 기억하고 싶은 것, 자랑스러운 것, 앞뒤를 매끄럽게 연결하기 위해 무시해도 좋을 만한 것들만 남기고 기억을 싹둑싹둑 잘라버린 결과물이다.

 

내 기억은 생각보다 내가 가진 왜곡, 절단, 접합의 가위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억이다. 나름 객관적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그럴 순 없는 것 같다.

 

- 내 삶이 '새로운 자극 - 도전 - 생각 -축적된 사유 - 태도화 - 새로운 자극'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 속에 있어야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사건,지식,정보)하지만 본질은 단순하다."라고 말했다.

...

그 일부의 지식으로 판단하려 드는 태도가 나를 오류에 빠뜨리는 원인인 셈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과감하게 현상(내가 참이라고 인식하는 것들)을 버리고 본질을 직선으로 관통하려면, 다양한 체험적 지식을 통해 얻은 새로운 생각과 기존의 것을 비교하고 개선하는 긍정적 태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많은 지식과 정보는 내가 본질을 파악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것같지만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방해가 된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많은 정보를 아는 것보다 정화하고 필요한 정보만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인터넷으로 공부하는 것과 책으로 공부하는 것의 차이점과 비슷하지 않을까?

 

- 침묵은 온갖 충동과 감정, 유혹에 흔들리는 나를 관찰하고 경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침묵의 순간, 세계에 대한 나만의 사색이 시작되는 것이다.

 

침묵이 가장 큰 외침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침묵을 하면 상대방은 나에 대한 상상을 더 많이 하게 되면서 내가 한 어떠한 말로 이야기한 것보다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말하기보다 더 어려운 침묵하기!

 

- 만약 창의성을 고민한다면, 사람을 만나되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땅을 밟되 처음 밟는 땅을 밟고, 책을 읽되 생소한 분야를 읽어야 한다. (다양한 경험과 독서, 공상)

 

- 사물은 내가 인식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인데, 나의 인식이 정교한 프레임에 걸려 오작동한다면 나에게 사물은 혹은 우주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고, '바람풍'을 '바담풍'이라고 부르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것이 어떠 현상에 직면해서도 본질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프레임의 오류, 복잡한 현상을 하나의 프레임으로만 설명하려고 하지마라.

 

- 지금 중국에서는 한 해에 1,000만 명의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중 40퍼센트가 실업자다.

...

기업들이 자신의 이익만 증가하면 그만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주의를 견제하지 못하면 우리 청년들의 미래는 앞으로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전문분야, 첨단분야의 일자리마저 중국이 흡수해버릴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 이 '폐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의 시대'에는 상대적 욕망을 자극해서 가진 것을 버리게 하는 데 주력했는데, 이때 욕망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동원된 것이 테크놀로지, 브랜드, 스토리, 컬처 등이다.

 

- 즉 행복과 불행의 가늠자는 지루함인 것이다. 내가 행복하려면 그것을 손에 넣어도 지루하지 않은, 그것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그 빛이 사라지지 않는 대상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추구해야할 가치는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많다.

 

- 새뮤얼슨은 '행복'을 '가진 것/욕망'으로 규정했다. 가진 것을 늘리거나 욕망을 줄이는 것이 행복의 척도라는 의미다.

...

18세기 초입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었고, 자연이 생산성의 절대적 요인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것을 늘림으로써 행복해지려는 시도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상과 철학은 욕망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18세기 전후 상황이 역전되었다. 행복의 추구는 '욕망 통제'에서 '가진 것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일찍이 이 분제를 간파한 케인스는 "가진 것을 늘리려면 가지려는 욕망이 그보다 더 크게 자라야 한다."고 답했다.

...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개인의 경제적 성취와 소수집단의 부만을 대상으로 남을 때 욕망은 날카롭고 사악하며 통제 불가능해지지만, 그 대상이 사회 전체로 넓어지면 욕망은 부드럽고 선량해진다.

 

- 우리는 대개 성과의 차이가 능력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태도의 차이, 즉 집중력의 차이 때문이다.

 

- 애티튜드 혹은 태도는 전생애에 걸쳐 나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 지금까지 문명과 문화의 발달은 0.1퍼센트의 창의적 인간이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꿈꾸지 않는 것을 꿈꾸며, 모두가 보지 못하는 어두운 곳에 깃발을 꽂고 이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땅이라고 외치면, 0.9퍼센트의 안목있는 인간만이 그것을 알아보고 그들과 협력하고 후원하며 새로운 문명을 건설한 결과다. (제러미 리프킨)

 

- 수학적 지식이 바탕이 된 학문들은 탐을 쌓아올리는 특징이 있다. 반면 철학이 바탕이 되는 학문의 특징은 수평적이고 산발적이다.

...

과학기술 시대에 '높이 더 높이'를 외치며 첨답만 쌓아올리고 인문학이라는 땅을 다지지 않는다면 정작 그 탑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끝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즉, 과학기술이 하드디스크라면 인문학은 운영체제에 해당하는 셈이다.

...

물리학을 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필요하듯 인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철학을 접해야 한다.

 

제노사이드를 읽으며 고민한 이과와 문과의 역할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다. 문과(철학)없는 이과(과학기술)은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 하지만 사람은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서 머리가 가슴과 충돌하면 혼란에 빠지고 고통이 뒤따른다.

 

머리와 가슴이 부딪히고 충돌하면 정말 괴롭다. 실천하면 일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실천할 용기가 없을 때 우리는 가슴을 외면해버리고 만다. 적당한 자기 합리화와 함께~ 머리로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내 가슴도 함께 따라오고, 따라서 내 몸도 함께 움직여야 진정한 지성인이고 인격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유를 통한 실천! 나의 숙제다.

 

- '사회'라고 불리는 성인의 세계에 진입하면 '자율'이라는 이름의 더 무거운 금기가 주어진다.

 

- 어릴 때부터 참고 통제하는 습관을 익히는 것이고, 그렇게 예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공부가 가능하다고 공자는 생각했다. 즉 예는 좋든 싫든 해야만 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내키지 않지만 할 일은 하는 태도와 인내심이 길러지며, 이런 인내의 바탕 위에서 비로소 자신을 견제하고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의 사생활(도덕성편)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다. 스스로의 욕망을 참을 수 있는 아이, 결과에 이르는 길까지를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아이가 결국 성취도 좋다는 나에겐 정말 인상깊은 다큐멘터리였다. 사실은 공자도 옛날부터 그 본질을 통찰하고 있었던 진리였나보다.

 

- 새로운 환경은 이질적인 환경에서 나온다.

 

- '운명적'이라는 말은 너무 유연해서 욕망을 추구하는 나와, 좌절과 권태를 거듭하는 나 모두를 위한 변명으로 사용할 수 있다. 때문에 어떤 것이든 선택의 결과를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탁월한 말은 없다.

 

- 세상의 모든 슬로건은 콤플렉스의 반영이다. 어떤 이가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외친다면 그의 최대 약점이 바로 그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 변화는 스스로 변화하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와 같다. 매일 스스로 변화해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아침과 다른 저녁을 맞는 사람에게 변화하는 패러다임 혹인 세상은, 속속들이 들여다보이는 느린 장면이 된다.

 

-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취해야 할 <주역>의 기본원리는 계사전의 '궁즉변,변즉통,통즉구'라는 구절에 모두 녹아 있다. 이 아홉 글자의 뜻을 우리말로 풀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영원하다'는 뜻으로, 이 말은 사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선언이기도 하다.

 

온전히 자기가 경험한 만큼이 자신의 세계다.

 

Posted by 릴리06

2012.09.05-2012.09.18

 

요즘 매일 가벼운 책들만 읽어서 왠지 무거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졸업하고 선생님을 하고 있는 선배가 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졸업하면 당장 30명의 아이들과 부모 60명까지 100명의 가까운 사람들이 너가 어떻게 교육을 하는지 관심있게 지켜본다. 교직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대학생 시절에 교육철학을 잘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철학? 철학? 그 단어에서 오는 무게만으로도 선배의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가 되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선배의 말이 왜 이리 시시콜콜 다 맞게만 느껴지는지...

 

나도 나름의 교육철학은 있다. 근데 절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 쌓인 경험과 나의 생각을 통해서 현재도 진행형인,만들어져가는 철학이다. 그런 철학이 내가 학교에서 일을 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어 준다. 물론 내가 절대적이라 믿는 많은 것들도 변해가리라는 것을 알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어쨌든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을 현재 삶에 어떻게 적용시키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초반에는 열심히 감탄하며 읽었지만 뒤로 갈수록 모르는 철학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내용도 어려워져서 멘붕이 살짝 오려고 했으나... 어쨌든 다 읽음.

 

- 아등바등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우주라는 '큰 그림'에서 바라보라. 우주는 그대가 뭘 하건 개의치 않는다. 그저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오래 남지도 않을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없는 돈을 들여 산다." 경제학자 팀 잭슨의 말이다. 좋은 집, 멋진 옷, 비싼 자동차가 왜 필요할까? 허세를 버려라! 행복해지는 데는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 인간은 현상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불안해진다.

 

- 우리 모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어떤 힘이 있는지 잊어버렸다. 그래서 바깥에서 그 힘을 구걸한다.

 

- 사람들이 때때로 소외감을 느끼죠. 어떤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는지 우리를 판단하려 드는 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 말이에요.

 

-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당장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절망하지 않음으로써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우리의 믿음.. 이게 거의 전부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어 보이는가. 하지만 이 작은 창이 인간의 자유.자율성.자주권의 기초다.

 

- 회복탄력성과 정신건강은 특정 상황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 때문에 흥분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다.

 

- 미국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뚱뚱하고 가장 버릇없어요. 가난이 주는 '이점'을 거의 누려보지 못한 아이들이죠. 예를 들어 우리 아버지는 대공황 시절에 자라셨어요. 그래서인지 회복탄성력이 무척 강하셨죠. 오늘날 삶은 무척 풍요롭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평하고 있다는 건 눈여겨볼 일이에요.

 

- 아도는 철학이란 원래 반복적으로 실천되어야 하는 정신적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세상이 자신에게 빚진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예민하고,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서는 눈이 먼 사람이다.

 

- 스토아 철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욕을 해도 잘 참아낸다. 분노와 같이 스스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자신의 영혼에 해를 입힐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스토아 철학자'의 현대적 의미가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실 스토아 철학자들은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 그가 보기에 그런 것들은 머나먼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지금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음모였다. 호지킨슨은 "미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래의 어느 때인가는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다. 하지만 은퇴 뒤에 올 영광스런 날들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즐거움을 누려라." 우리는 되도록 일을 적게 하고, 할 수만 있다면 국가나 계급의 틀에서 빠져나가고, 인생의 술잔에서 가능한 많은 것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즐거움도 중독이 되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 더 큰 그림을 한번 보고 나면 더는 그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다.

 

- 그림으로 보면 자신의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우주적 관점에 놓게 되고, 불안한 자아는 경외감과 경탄 속에 잠잠해진다.

 

- 나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의식을 우주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사고와 의미에 대해 언어로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 정의대로라면, 의식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그것은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이용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 우리는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여길지 지나치게 걱정하고, 남들이 인정하지 않을까봐 너무 두려워한다. 그 결과 불안해지고 불행해지며 진짜가 아닌 삶 속에 갇힌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행동을 숨기지 말고 남들이 비웃거나 조롱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도록 단련함으로써 독립적인 개체로 서야 한다.

 

- 플라톤은 2 더하기 2는 항상 4가 되는 수학적 진실의 순수한 영역이 존재하듯, 변증법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진실.미.정의 같은 도덕적 가치들의 순수한 영역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 플라톤의 표현에 따르면, 인격은 내전 중인 사회, 또는 선장은 없고 모든 선원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자고 외는 배와도 같다.

 

 

Posted by 릴리06

2012.07.28-2012.07.29

 

이 책에는 자신의 원칙과 철학을 고수하면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소도시 구석구석까지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들어서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 주인장의 손길이 곳곳에 뭍어있는 가게를 만나는 일은 어쩌면 모험이다. '그냥 아는 곳 가서 먹자.' 가끔씩 윤리적 소비를 해보겠다고 찾아가는 동네 가게에는 실망감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게가 작은 가게이고 이태원, 홍대, 종로 쪽에 분포해있는 가게들이다.

 

반갑게도 내가 가봤던 '제너럴 닥터'도 책에 실려있었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그곳이 병원인지 꿈에도 몰랐고 주인장의 경영 철학을 눈치채지 못했다.

 

요즘 대부분의 가게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조리장을 직접 만나기란 쉽지않다. 대부분 손님과의 소통보다는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 손님을 만나는 일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주인장들은 손님들과 자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소신 있게 자기가 원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주인장들을 보니 나는 어떤 미래의 그림을 그려야 할까 하는 숙제가 생기는 것 같다. 참, 버킷 리스트를 아직 못 만들었네... 방학이 끝나기 전에 꼭!!

 

2학기 때는 여기 나온 식당들을 한 번 시간내서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음식을 먹다보면 어떤 공통적인 감정이 떠오르지 않을까?

 

 

- 구구절절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들만의 진심.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뻔하지마 사랑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 그런 마음이 시간이 지나도록 변치 않고 차곡차곡 쌓일 때만 사람을 움직입니다.

 

- 한 번 불타는 열정은 별로 무섭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랜 열정은 무섭습니다. 그건 무엇이든 잘 이겨내니까요.

 

- 그 성장의 하나는 제너럴 닥터가 생활협동조합 형태의 진료 기관이 되는 것이다.

 

- 고양이를 키우는 카페 병원이라...... 어떻게 보면 막장이죠.

 

- 모든 중독성을 가진 것들은 처음에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 저는 새로운 것보다 사람이 남긴 흔적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형태요.

 

- 그는 요점을 알기 어려워지는 게 별로 즐겁지 않다. 본질적인 것보다 본질적이지 않은 게 너무 많아지는 세상이 별로 달갑지 않다.

 

- 정직하고 순수한 노동이 주는 즐거움이 저에게 잘 맞아요.

 

- '어느 날'이 중요하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우연한 어느 날이 있는데 그 어느 날이 인생의 기가 막힌 타이밍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생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을 때는 미술관에 가고, 만만치 않은 현실을 견뎌내고 싶을 때는 홍차를 마신다.

 

-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침묵이 말을 더 울림 있고 풍요롭게 해 주듯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다른 시간의 거름이 돼 준다는 것을 나는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 익숙한 것이어서 그렇다. 밥처럼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이어서, 파스타는 2만원 내고도먹지만 2만 원짜리 김치찌개나 비빔밥에는 분개하는 것과 같다.

 

- 그녀는 무슨 일에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다.

 

- "20여 년을 성실하게 약사로 살았으니까 잊 또 다른 인생을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앞으로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나 마음속에 불같은 열정을 품고 사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이루지 못한 꿈을 애석해하며 쓰다듬고 사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인생의 분명한 목표와 꿈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 얼마나 오래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 어떤 시간도 지금의 제게 의미 없는 시간이 없어요.

 

- Joie de vivre(주아 드 비브르). 그것은 한가로우면서 에너지 넘치는 삶의 즐거움을 의미한다.

 

- 지나가는 시간에 삶을 조금이라도 더 구겨 넣으려고 아옹다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아끼고 아낀 시간의 뭉치들을 언젠가 한 올 한 올 풀어 가며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것일까?

 

- 크고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좋아하는 시간을 살면서 작은 것을 고수하는 일에는 자기 원칙과 철학이 필요하다.

 

- 저는 순간순간 선택을 해 왔고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시간은 없어요. 열심히 살았으니까 지금 만족합니다.

 

 

Posted by 릴리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