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2013.지구반대편남미

[D+26] 여행의 끝, 남미

릴리06 2014. 1. 23. 20:53

비행기를 타고 리마에서 달라스까지 7시간을 날라왔다. 우리에게 환승 시간은 1시간2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미그레이션도 통과하고 짐검사도 다시 다 받아야한다. express티켓을 들고 다녔음에도 출발 게이트에 찾아갔을 때 파이널콜을 외치고 있었다.

이제 달라스에서 한국까지 또 쉴틈없이 14:50분을 날라가야 한다.

이제야 더 느낀다.
내가 얼마나 멀리 날아왔었는지를...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창을 올려보니 밑으로 설산이 보인다. 여기는 로키산맥이겠지?

벌써 10시간째 날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5시간 가까이를 더 가야 드디어 춥고 추운 한국에 도착한다. 비행기가 15시간 가까이 날려면 얼마나 큰 연료탱크를 가지고 있어야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출발하기 전부터 다른 여행보다 걱정도 많았고 기대도 컸던 남미여행이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살아서 돌아오라고 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조심하라는 인사를 했다. 다른 여행에서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건강 조심하는 인사, 뭔가 다르게 들렸던 것은 남미라는 곳에 대한 나와 우리의 부정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험하고 치안이 좋지 않고 돈을 달라고 하면 그냥 줘야하는 그런 곳! 그래서 항상 몸 건강히 별 탈 없는 여행을 했던 나에게 이번에도 그런 행운이 올까 하는 걱정이 컸지만 다행이도 이번에도 역시 무사히 긴 여행을 마치고 나의 자리로 돌아간다. 매번 여행의 끝에는 몸 건강해 잘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기쁜데, 이번에는 특히 더 감사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이제 20대 때의 배낭여행과 달랐다. 마음 자세가 중요하지 배낭을 맸는지 캐리어를 끄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에게 배낭을 맨다는 것에는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까지 감수하는 여행을 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으로 배낭을 메고 떠났지만

조금 힘들면 택시를 탔고
맛있으면 음식도 마음껏 먹었고
길이 험하고 멀면 비행기를 탔고
화장실이 딸린 깨끗한 숙소에서만 잤다.

하지만 이 모든 여행의 순간 순간에 나는 최선을 다해서 내 의지로 내가 선택을 했고 힘들고 고생스러움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최소한 돈을 아끼려고 함으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이나 고생스러움은 피하면서 여행하고 싶어졌다. 이제는 예전처럼 돈을 아끼며 여행하긴 힘들 것 같지만 여행을 더 편하고 즐겁고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여행하는 나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 재밌고 신기하다.

보통 남미를 여행의 끝! 이라고 한다. 여행 초반에는 왜 이곳이 여행의 끝이라고 하는지 공감이 많이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미가 왜 여행의 끝인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줬던 남미 여행은 계속되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다른 어떤 여행지보다 직접 만났을 때의 충격이나 감동이 커서 뭐든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내가 직접 경험 해야한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행의 끝, 남미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최소 2-3개월은 기본인 장기여행, 세계일주 여행자들이거나 남미에서 공부하거나 살고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보다 일정이 짧은 여행자는 못본 것 같다. 다들 우리에게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동안 이 멀리까지 조금이라도 보러 왔다는 것에 대해서 놀랄 뿐. 남미와 한국의 물리적인 거리감만큼 문화적, 심리적인 거리감도 확실히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 남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대륙 남미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세상은 조금 더 넓어지고 그리고 세상이 조금 더 가까이 나에게 왔음이 느껴진다.

남미에 내가 가보지 못한 더 많은 놀라움의 장소들을 보석을 숨겨두는 마음으로 남미 여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