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26 제로 육아 / 김진선

릴리06 2021. 9. 29. 15:13

2021.08.

- 아이들은 20분 이상 한자리에 앉아 있기 힘든데, 음식이 나올 때까지 15분은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긴 이동시간과 감각 과잉으로 이미 지쳐있는 상태에서 말이죠. 아이들에게 "식사예절을 지켜라, 자리에 똑바로 앉아라"라고 지적하는 건 저의 이기적인 욕심일 뿐이었습니다. 피곤해하는 아이를 보며 제 기분이 다운되는 것은 덤이었고요.

- 진짜 오감을 발달시켜주고 싶다면 바람 소리, 새 소리, 벌레 소리, 풀 냄새, 비 냄새, 꽃 향기를 느끼게 해주세요. 시간 제한 없이 마음껏 흙장난을 하고, 바위를 쓰다듬게 해주세요. 움직이는 나비를 따라 원 없이 뛰어다니고 소리치게 해주세요. 동네 공원, 뒷산, 냇가를 오감 발달 놀이터로 추천합니다.

- 창의력은 그냥 길러지는 게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아는 게 많아야 창의력이 폭발해요. 지식과 지식이 연결되어서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는 거죠. 다시 건물 얘기로 돌아가면, 벽돌이 많을수록 다양한 건물을 만들 수 있잖아요. 벽돌 없이 허공에서 쌓는 방법 아무리 생각해봤자 별로 안 떠올라요. 기껏해야 벽돌 10개 가지고 뭘 상상할 수 있겠어요.

- 우선 책 읽는 시간을 시간표에 정해두지 마세요. 읽어야 할 책을 골라두시지도 말고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맘대로 읽게 내버려두시면 됩니다. 아이가 최근 부쩍 궁금해하는 주제에 관한 책을 사주시면, 읽지 말라고 해도 허겁지겁 읽어요. 그게 바로 책의 짜릿한 즐거움이죠. 두 번째, 책 읽고 나면 아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줄거리, 느낀 점, 이런 거 알려고 하지 마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게 독후감이에요. 깨달음이 백 번쯤 온 책도 "어, 이 책 좋더라. 강추."이 정도밖에 말 못하거든요. 말하면서도 스스로 똥멍청이 같아 자괴감이 들어요. 만약 누가 책 읽고 소감 말하라고 하면, 그것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책 읽기 싫어질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거 시키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중학교 가서 아이가 책 읽을 때 '책 그만 읽고 공부해라' 이러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책은 그 무렵부터 비로소 머리에, 가슴에 들어오거든요.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경험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감수성이 한참 풍부할 때잖아요. 이때 책의 즐거움에 빠진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사랑할 수 있겠지요.

-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아이는 우리가 키워서 크는 게 아닐, 스스로 자라잖아요. 나무와 마찬가지죠. 양지바른 곳에 두고 물이랑 비료 준면 우리는 부모로서 할 일 다 한 거에요. 자꾸 가지 치지 마세요. 손대지 마세요. 그럼 기껏해야 보기 좋은 정원수만 돼요. 아주 운이 좋아서 아이가 계획대로 따라준다고 해도, 기껏해야 우리 목표의 7~80퍼센트 만족하면 잘된 거에요. 목표를 100퍼센트 달성하기 어디 쉽나요. 근데 혹시 가만 놔뒀으면 120퍼센트, 150퍼센트, 200퍼센트 클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요? 크고 웅장한 나무가 되길 바란다면, 우리는 해충이나 잡아주고 기다려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을거에요. 맞아요. "아이가 오답 선택하고 있을 때, 달려나가 고쳐주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이 물음에, 저 역시 "그럼요, 견딜 수 있어요"라고 자신 있게 장담은 못 하겠어요. 하지만 참아야만 할테죠. 이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니까요.

- 우리 훈윤하다 열 내지 말아요. 화내봤자 아무 소용없잖아요. 아이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겁니다. '클 때까지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해주세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닐 테죠. 저 역시 매일같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우리가 이해하고 맞춰줘야지 어쩌겠어요. 전두엽이 덜 발달한 자들인걸요.

- 말하는 걸 들어보면 멀쩡히 다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요? 이게 참 안타까운 일인데, 저도 그것 때문에 아이들 어릴 때 화 많이 냈잖아요. 너무 똑똑해 보여서요. 아무리 봐도 다 알면서 뛰는 것 같았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여러분도 경험해 보셨을걸요. 애들한테 "횡단보도 건널 때 차 오는 거 보고 천천히 가야 돼"라고 아무리 말해봤자 초록 불만 켜지면 그냥 직진하는 거요. 그 순아 아무 생아 없는 거죠. 이들이 순간순간 까먹는 건 아직 뇌 기능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뛰지 말라고 얘기한 거 기억 못 한다고 화내봤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또 화낼 일도 아니지요. 애들이 원래 그런걸료. 앞서 인간의 뇌 발달이 20대 초반까지 진행된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애들 몇 년 살았나요? 그래요. 뇌 기능이 완성되려면 한참 멀었겠죠.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매번 처음 본 듯 알려줄 수 밖에 없어요.

- 아지 어린아이면, 말로 힘 빼지 말고 몸 움직여서 미션 완료하시면 돼요. 크면 조금만 말 툭툭 던져도 알아서 움직입니다. 그때까지 적당히 도와줘도 괜찮아요.

- 원래 사람이 잠 못 자고 피곤하면 화 참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자꾸 화내는 거라고요. 화를 참는 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명확하죠. 어떤 자극에도 여유있게 대처할 수 있도록 기운을 보충하세요. 푹 쉬고, 잘 드세요. 에너지 갉아먹는 원인을 제거하세요. 휴식은 여러분의 화를 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