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5-2012.09.18

 

요즘 매일 가벼운 책들만 읽어서 왠지 무거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졸업하고 선생님을 하고 있는 선배가 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졸업하면 당장 30명의 아이들과 부모 60명까지 100명의 가까운 사람들이 너가 어떻게 교육을 하는지 관심있게 지켜본다. 교직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대학생 시절에 교육철학을 잘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철학? 철학? 그 단어에서 오는 무게만으로도 선배의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가 되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선배의 말이 왜 이리 시시콜콜 다 맞게만 느껴지는지...

 

나도 나름의 교육철학은 있다. 근데 절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 쌓인 경험과 나의 생각을 통해서 현재도 진행형인,만들어져가는 철학이다. 그런 철학이 내가 학교에서 일을 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어 준다. 물론 내가 절대적이라 믿는 많은 것들도 변해가리라는 것을 알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어쨌든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을 현재 삶에 어떻게 적용시키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초반에는 열심히 감탄하며 읽었지만 뒤로 갈수록 모르는 철학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내용도 어려워져서 멘붕이 살짝 오려고 했으나... 어쨌든 다 읽음.

 

- 아등바등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우주라는 '큰 그림'에서 바라보라. 우주는 그대가 뭘 하건 개의치 않는다. 그저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오래 남지도 않을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없는 돈을 들여 산다." 경제학자 팀 잭슨의 말이다. 좋은 집, 멋진 옷, 비싼 자동차가 왜 필요할까? 허세를 버려라! 행복해지는 데는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 인간은 현상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불안해진다.

 

- 우리 모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어떤 힘이 있는지 잊어버렸다. 그래서 바깥에서 그 힘을 구걸한다.

 

- 사람들이 때때로 소외감을 느끼죠. 어떤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는지 우리를 판단하려 드는 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 말이에요.

 

-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당장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절망하지 않음으로써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우리의 믿음.. 이게 거의 전부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어 보이는가. 하지만 이 작은 창이 인간의 자유.자율성.자주권의 기초다.

 

- 회복탄력성과 정신건강은 특정 상황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 때문에 흥분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다.

 

- 미국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뚱뚱하고 가장 버릇없어요. 가난이 주는 '이점'을 거의 누려보지 못한 아이들이죠. 예를 들어 우리 아버지는 대공황 시절에 자라셨어요. 그래서인지 회복탄성력이 무척 강하셨죠. 오늘날 삶은 무척 풍요롭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평하고 있다는 건 눈여겨볼 일이에요.

 

- 아도는 철학이란 원래 반복적으로 실천되어야 하는 정신적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세상이 자신에게 빚진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예민하고,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서는 눈이 먼 사람이다.

 

- 스토아 철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욕을 해도 잘 참아낸다. 분노와 같이 스스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자신의 영혼에 해를 입힐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스토아 철학자'의 현대적 의미가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실 스토아 철학자들은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 그가 보기에 그런 것들은 머나먼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지금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음모였다. 호지킨슨은 "미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래의 어느 때인가는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다. 하지만 은퇴 뒤에 올 영광스런 날들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즐거움을 누려라." 우리는 되도록 일을 적게 하고, 할 수만 있다면 국가나 계급의 틀에서 빠져나가고, 인생의 술잔에서 가능한 많은 것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즐거움도 중독이 되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 더 큰 그림을 한번 보고 나면 더는 그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다.

 

- 그림으로 보면 자신의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우주적 관점에 놓게 되고, 불안한 자아는 경외감과 경탄 속에 잠잠해진다.

 

- 나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의식을 우주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사고와 의미에 대해 언어로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 정의대로라면, 의식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그것은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이용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 우리는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여길지 지나치게 걱정하고, 남들이 인정하지 않을까봐 너무 두려워한다. 그 결과 불안해지고 불행해지며 진짜가 아닌 삶 속에 갇힌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행동을 숨기지 말고 남들이 비웃거나 조롱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도록 단련함으로써 독립적인 개체로 서야 한다.

 

- 플라톤은 2 더하기 2는 항상 4가 되는 수학적 진실의 순수한 영역이 존재하듯, 변증법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진실.미.정의 같은 도덕적 가치들의 순수한 영역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 플라톤의 표현에 따르면, 인격은 내전 중인 사회, 또는 선장은 없고 모든 선원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자고 외는 배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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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2012.09.13

 

 

때론 누군가 나에게 해주는 충고가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나 그 충고가 속물적이거나 편협한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느껴질 때는 더욱 그렇다. 나나는 딸 마리암에게 소설 초반에 이런 말을 한다.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라.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그걸 명심해라, 마리암."

 

이 충고 역시 마음에 와닿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곱씹게 되었다. 소설 마지막에 마리암의 회상 장면에서 이 충고는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이 소설을 쭉 다 읽고 나니 그 마음이 이제는 이해가 되고 정말 그렇게 살아온 그들이었구나 하는 안스러움마저 들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자신이 사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 그 비참함과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있는 소설이었다. 한편으론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길 참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내가 착하다는 생각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참, 세상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나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을 볼 때가 아니라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볼 때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는 조금 기특하기도 하고 이런 내 마음이 조금 고맙기도 하다.

 

 

할레드 호세이니 소설 '연을 쫓는 아이'를 예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1900원 행사할 때 샀었다. 소설에 대한 정보도 하나도 없었는데 왠지 끌려서 싼 맛에 주문했는데 역시 싼맛에 읽지 않고 있다가 시간 있을 때 읽어보았다. 그런데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희열과 충격은 정말 오래 남았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는 이민자들의 아픔,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종류의 감정들을 많이 느꼈다.

 

이 소설 속에도 마리암과 라일라, 이 두 여자를 통해서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의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예전에 중동에 가려고 아랍어도 배우고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공부하면서 봤던 내용 중에 이슬람에서 일부다처제를 하는 이유는 전쟁에 나간 남자들을 대신해서 남겨진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그 역사적인 배경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 땐 '우리가 알고 있는 부정적인 이슬람의 풍습이 사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들이구나.'하는 충격을 받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냥 정말 나쁜 남자들의 변명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부르카를 착용하는 것에 대해서 유럽에서 금지하는 법안이 생겼다는 것을 들었을 때, 종교적인 문화인데 왜 저런 것도 금지할까 문화 국수주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이슬람교 여자들이 부르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가니스탄!

 

그냥 전쟁중인 위험한 나라인 줄만 알았는데, 그 곳에는 고향을 떠나 떠도는 난민들과 인권조차 위협받는 많은 여자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죽어가는 내 가족들도 있는 우리와 비슷한 그런 곳이었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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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2012.09.05

주인공 레베카는 신용카드 고지서를 펼쳐보기 전에 얼마쯤 썼나 마음 속으로 예상해본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고지서를 펼쳐보면 항상 그 금액은 예상액의 2배 가량. 믿을 수 없는 마음에 혹시 내가 쓰지 않은 항목은 없는지 살펴보기 시작하고 모르는 항목이 나오면 사기가 있었다며 흥분한다.

정말 나도 여러번 느끼고 경험했던 감정이다. 하지만 레베카보다는 내가 조금 더 소비하기 전에 이성적인듯...

객관적으로 읽다보면 한심한 일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이 공감할만한 심리들이다. 읽을수록 저렇게 생활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신용카드에서 체크카드로 옮겼는데 경제 안전성이 많이 나아진 듯 하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경제 생활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현명한 소비를 하자는 흔해빠진 교훈이지만 실천이 필요한 때!

- 생각만 고쳐먹으면 어디서든 돈을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바턴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돈을 쓰느라 너무나 바빠서 잊고 살았을 뿐이지 공짜로 즐거움을 누릴 길도 많다. 공원, 박물관, 그리고 시골길을 거니는 소박한 기쁨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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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3-2012.28.28

 

 

알코올중독자 쇼코와 동성애자 무츠키가 서로 계약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

 

다문화전공을 시작하고 나서 다문화 아이들과 같은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졌다. 그리고 팟캐스트 '나는 딴따라다'에 나오는 김조광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얼마나 성적 소수자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느껴졌고, 그들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 것 같다. 김조광수처럼 사회적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소수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높이는데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동성애자들은 사회적 관습을 깬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의 변화 속도보다 더 빠른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 난 오히려 그들의 용기와 틀에 박히지 않은 개방적인 사고가 부럽기도 하다. 때론 평범한 건 재미없다.

 

많은 소수자들이 더 당당하게 발 내딛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얼마 전에 본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김조광수의 영화랑 비슷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소설이 현실을 많이 반영한다고 봤을 때 생각보다 이런 일이 흔한 일일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기형적인 가족을 만들게 되는 피해자이다.

 

다양한 분야의 소수자들의 인권이 향상되고 특수성을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숙제가 한국 사회에는 왜 이리 먼 일처럼 느껴지는지...

 

예전부터 느끼고 생각한 일이지만 내가 만약 소수자였다면 (어쩌면 나도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지도..) 우리 나라에서 살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일반일들도 틀에 죄어 살고 있는데 그들을 받아일일 사회적 여유와 공간이 부족하다.

 

-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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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0-2012.08.26

 

 

내가 유년기를 보낸 80년대 20대를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신경숙의 가장 유명한 소설 엄마를 부탁해도 아직 못 읽어봤는데 그녀의 다른 소설을 읽어본다.

사실 도서관에서 몇번을 빌렸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봐서 너덜너덜 더러워진 책을 읽기가 싫어서 다시 반납한 적이 있다.

 

그녀의 필체는 나를 마치 80년대 정윤의 삶으로 이끌어가는 것만 같아서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느껴지고 자기 꿈과 열정을 펼쳐야할 20대를 민주화 운동에 쏟으며 시련을 겪었던 사람들. 우리는 그들이 이뤄놓은 성과 위에서 우리의 꿈을 펼치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정치가 정말 민주화 되었는가?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예전처럼 대통령 마음대로 헌법을 고치고 군대를 동원해서 밀어부치는 일은 당연히 없지만 그 대신 더욱 교묘해지고 비밀스러워지진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었다. 살기좋아졌다고 안도하며 즐거워하는 우리의 모습 뒤편에 그들이 웃음짓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뼛속까지 뿌리깊은 정치에 대한 불신)

 

어쨌든 80년대를 치열한 20대로 살아본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책!

 

 

- 내.가.알.아.서.할.게

내가 그에게 내뱉은 말은 결국 나를 고독하게 했다.

 

- 누군가 약속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말이야. 믿을 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 손을 잡으면 놓을 때를 잘 알아야 한다. 무심코 잡은 손을 놓는 순간을 놓치면 곧 서먹해지고 어색해진다.

 

-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 폭력적으로 된다.

 

-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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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2-2012.08.23

 

조만간 뉴욕에 가고 싶어서 이 책을 일어보았다.

이 책을 읽어보니 뉴욕이 꿈의 도시만은 아닌 것 같지만 뉴욕의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는만큼 보이고 경험한만큼 느낄 수 있는 것은 확실한데, 지금 나는 너무 알려고만 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위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에는 열두 달이 아니라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는 사람들은 세기말 같은 우울한 혼란을 경험한다. 무언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기대와 그 기대에 대한 부담감.

 

정말 지금의 나는 세기말을 겪고 있다. 30이라는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해질까?

 

- '즐거운 여행'의 판타지는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설렘이나 무사히 귀가해 그 여행의 전리품들을 즐길 때 완성된다. 멋진 경치를 보는 순간순간이나 기거이 보겠다 별렀던 곳에 섰을 때의 뿌듯함, 이국적인 야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느끼는 여유로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초특가 물건을 덥석 집어들 때 등의 상황을 제외하면, 여행은 낯선 곳에서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고행이다. 허나 우리의 기억은 그 순간순간을 달콤하게 미화해버린다.

 

- 혹자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아슬아슬하게 추함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극과 극은 연결되어 있다. 패셔니스타와 촌스러움은 한 끗 차이다.

 

- "너의 부모님이 혹은 할머니가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에 (백인 아이들은) "엄마는 교사이며 할머니는 가정주부예요'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우리 할머니와 엄마는 노예였어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살았어." 수업 시간에 들은 흑인 교수의 고백에 마음이 짠했다.

 

- 헤게모니 문제다. 두 언어 사이에는 언제나 힘이 작용한다. 대부분 이민 1세들은 영어보다는 모국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2세의 경우 대개 가정에서 부모가 쓰는 언어보다는 영어를 더 유창하게 한다.

 

- 사람들은 흔히 "사랑의 끝은 죽을 만큼 아프다"고 말한다. 그 집착의 대상이 사랑이라는 붕 뜬 감정인지, 혹은 그 사람인지, 아니면 그러한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이라는 낭만적이고 무시무시한 결과로 사랑이 끝났을 대 그 드라마틱한 최후는 인격 수양에 따라 추이가 달라진다.

 

나는 보통 그러한 관계에 집착을 하는 것 같다.

 

- 당신이 관광객처럼 보인다면 주인이 50센트쯤 되는 돈을 더 챙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가. 그는 아이 넷을 둔 가장일 가능성이 높고, 당신은 뉴욕을 즐기는 행복한 사람인데. 관광객다운 인심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은가.

 

-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보니 행복한 사람들이 편견이나 선입관을 더 많이 가질 수도 있단다. 행복한 사람들, 즉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모든 게 다 괜찮아'라는 낙천적인 사고를 갖는데, 문제는 이런 사고 방식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막는다는 데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사고도 불행한 사람들의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다. 어쨌든 심플하게 살던, 복잡하게 살던 그건 선택의 자유가 있으니깐.

 

- 낯익은 작품을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들어도, 선뜻 카메라를 들이대게 되지 않는다. 어쩐지 순간의 느낌이나 기억을 강제로 박제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거니와 지나는 사람들을 벽으로 막는 것 같아 미안함이 앞선다.

 

내가 5주동안 터키와 그리스를 돌아다닐 때 가장 아름다웠던 석양 풍경을 꼽자면 딱 2번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때 나는 필름이 없었다.(그 때만 해도 몇 십통의 필름을 들고 다니며 열정적으로 수동카메라를 찍으며 여행하던 시절이니...) 그 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사진을 못 찍은 아쉬움이 그 풍경과 더해져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닐지.

 

- 평생을 벌어봤자 한 점도 사지 못할 쟁쟁한 그림들과 하루를 같이 보내는 저 경비 아저씨에게 예술은 무엇일까.

 

- 춤은 시작하는 순간에 완성되고 완성되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그 찰나의 황활함과 의미들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얼마나 명쾌할까. 하지만 이런 소멸의 가능성, 예정된 죽음이 춤을 더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예술로 만든다.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나같은 인간은 미술이나 음악이나 무용이나 다같은 예술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정확히 서로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었다.

 

- 사람들은 대부분 이 '죽어버릴 것 같은 첫사랑의 열병;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그 생존의 증거로서 사랑에 대한 냉소를 백신처럼 갖고 산다.

 

사랑에 대한 냉소를 백신처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만큼 사랑을 하는데 상처를 받지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그 냉소가 애잔함과 그리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 예술가라는 직업은 얼핏 화려해 보이지만, 안정된 직업 없이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면서 고단한 노력만 기울이다 끝나는 것이 대부분.

 

 

Posted by 릴리06

2012.08.21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서 무섭게 빠져들어 읽은 책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노희경 작가 원작 소설인데,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세상 보통의 어머니, 아버지, 자식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어찌 씁쓸하다. 이렇게 아둥바둥 사는 것이 가정이긴 하나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서로간의 위로와 사랑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반성과 다짐을 해본다.

 

 

- 아니 어쩌면, 엄마가 못 챙긴 것은 친구의 몸이 아니라, 병이 두려워 자궁까지 들어낸 친구의 약해진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랑은 책임이야. 적어도 책임지려고 하는 노력이야. 그게 사랑인 거야.

 

- 이런 순간에 가장 절실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영석뿐이라니!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연수는 오늘따라 그것이 당혹스럽고 씁쓸하다.

 

-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작 수술을 이틀 앞두고서야 얘기를 해주다니! 그런 상황도 모르고 자기 일에만 빠져 허우적거렸던 자신은 뭐란 말인가.

 

- 천성이 이타적인 엄마가 곁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기적이 되어버린 가족들.

 

-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모르면 배워야 하는 것을 그것이 나려니, 그게 내 사랑법이려니 하고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자식들과의 거리는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 헌데, 엄마의 방에서 느닷없이, 며칠 전 영석의 집 안방에서 보았던 사진 속 그의 아내가 떠올랐다. 남자와 여자, 아니 아내와 남편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아내의 손길이 하나 하나 모이고 모여 완성되는 게 남자, 남편이었구나.

 

 

Posted by 릴리06

2012.08.14-2012.08.21

 

 

앞에 몇 장을 넘기며 '역시, 박완서는 나랑 잘 안맞어.'라고 지난 기억을 상기시켰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따라갈 수 없는 삶과 생각의 깊이와 솔직한 필체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한국 전쟁 중 박수근 화백과 같이 미군에서 일을 한 부분이 인상깊었다. 정말 역사의 산 증인과 같은 분이셨구나...

 

이 책의 제목을 보니 이 시가 떠오른다.

 

가지 않은  

 

노란 숲 속에 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을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을 택했습니다

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이지요

을 걸으므로 그 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날을 위하여 한 을 남겨 두었습니다

에 연하여 끝없음으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하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

 

 

-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

 

- 내가 잃은 기둥에 비해 그 아이는 겨우 콩꼬투리만 하였으나 생명의 무게에 있어서는 동등하다.

 

-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우리를 덜 절망스럽게 하고 희망과 꿈을 갖게 하는 거야말로 바로 문화의 힘일 터이다.

 

- 내가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쳤던 것은 방화범 개인의 뻔뻔함이 아니라 아무리 저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받들어온 경제제일주의가 길들인 너와 나의 얼굴, 그 황폐한 인간성에 대해서였을 것이다.

 

- 그게 끝이라니, 카타르시스가 안 된다는 게 그렇게 찜찜한 것인 줄은 몰랐다.

 

- 독자가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은 그게 명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읽을 당시의 마음상태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Posted by 릴리06

2012.08.02-2012.08.09 

 

정말 너무 읽고 싶어서 샀는데 힐링캠프 안철수 편에서 봤던 내용, 그리고 그동안 안철수에 대해 보고 듣고 읽은 내용이 복합적으로 많이 나와있었다. 같은 사람의 이야기니 중복될 수 있는 건 당연하지만 조금 긴장해서 읽기가 힘들었다고 할까나..

 

그리고 분야별 정책을 이야기 하는 부분은 내가 관심 없는 분야여서 그런지 재미가 없었지만 대통령이 되려면 참 많은 부분에 박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여러가지 분야에 항상 깨어있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 직무유기인 것 같다.

 

안철수가 대통령 선거에 나온다면 나는 안철수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첫째,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기존 정치에 질려버렸다.

둘째, 현 정부에 대한 심판을 위해선 정권교체는 무조건 해내야 한다.

셋째, 안철수라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떤 다른 세상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 사람들은 인상이 부드럽거나 선해 보이면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선한 것은 약한 것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것의 반대는 악한 것이며, 악한 것의 반대는 강한 것이지요. 따라서 선하면서 강할 수 있고, 반대로 악하면서 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저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의미 있고, 열정을 지속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가의 세 가지만 생각했고 성공 가능성은 고려사항이 아니었습니다.

 

- 우리는 선진국들보다 훨씬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뤘지만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진심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믿고 따라옵니다.

 

- 개인들이 각자 불안하다 보니 자기만 생각하는, 그리고 자기가 속한 집단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 자살률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수치라고 생각하는데요, 불행히도 우리나라가 OECD국가 전체 중 1위입니다.

 

- 잡스는 "열심히 살다 보면 옛날에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경험들이 모두 연결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그게 영어 표현으로 'connected dot'이라는 것이죠.

 

-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Posted by 릴리06

2012.07.26-2012.07.27

 

 

히노데 소학교에 다닐 때도 입었고 일본에 와서도 입었던 옷이다. 하지만 지금은 입을 수 없다. 일본 백작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입을 수 없다. 만약 그 옷을 입는다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학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추운 겨울 여학생들이 저고리를 입는 것에 대해서 춥지만 일본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선 저고리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우리이게 만들어주는 여러가지 형식적인 것들이 지금 우리에겐 거추장스럽고 따분한 것들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있기에 우리는 우리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될 것 같다.

 

덕혜옹주의 상황은 많은 면에서 영화'우리 학교'를 떠올리게 했다.

 

60-70년 전의 덕혜옹주의 일본에서의 정체성 혼란을 지금 재일동포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 상처와 아픔이 꽤 오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으리라는 짐작도 가능했다.

 

 

덕혜옹주는 해방후 1962년에 조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지만 일본에서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이혼을 당하고 딸이 죽는 등 이미 많은 시련을 겪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후였다. 그래도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 옆에서 잠들 수 있음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적, 조국, 고향

 

생각보다 강한 정체성의 울타리인 것 같다.

Posted by 릴리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