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08-2012.10.11

 

 

제노사이드를 읽고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작가에게 푹 빠졌다. 그런데 그에겐 더 유명한 13계단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학교 도서실에 있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제노사이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읽기 시작했다. 제노사이드보다는 일단 분량이 적고 내용도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내용의 심오함은 절대 뒤지지 않았다.

 

이 소설은 사형제도의 모순과 이 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형제도를 찬성하고 반대하는 여러가지 입장이 있지만 사실 사형이 선고되어도 집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에게 사형제도에 대해 물어봤다면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것이 나를 비롯한 사형제도를 온전히 몸과 마음으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보통 대답이 아닐까?

 

* 사형제도에 대한 나의 단상

 

왜 그랬을까? 예전 같았으면 책을 읽으면서 그냥 이런 문제점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며 넘어갔을 것 같은데, 이 책을 보면서는 사형제도에 대해서 읽을 때마다 계속 곱씹으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대학원 소수자 인권 수업 중에 실정법과 자연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실정법은 자연법을 기준으로 삼고 만들어지는데 실정법 중에 하나인 사형제도가 자연법의 기본인 생명권을 해칠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인권 교수님이기 때문에 사형제도에 대해서 반대하시는 입장을 가지고 계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찬성하는 입장이셨다.

 

사형제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형을 시켜도 사회가 나아지지 않고 법을 통해서 계도가 되지않는데 생명권을 빼앗으면서까지 사형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냐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찬성자들은 그럼에도 약간의 개선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형수들은 정말 엄청나게 천벌받을 행동을 한 사람들이 받는 형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나 원인을 찾아보면 사회와 가정에 있다. 그 사람이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 그것이 사형제도 폐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한 소급. 어쨌든 교수님의 결론은 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 사회가 어떤 가치를 신봉하냐에 따라 사형제도를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그러고 이어지는 인권 교수님의 박정희 예찬론.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역사적인 평가로만 박정희를 알고 있지만 그 시절을 집접 겪어보신 교수님의 평가이기 때문에 그 시절이 그렇게 힘든 것만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란 참 어렵다.

 

그러면서도 학문적으로 아는 것과 내 가치관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구나 하는 걸 알았다.

 

법률의 가변성을 생각하면 함부로 생명권을 빼앗는 사형제도는 합리성과 효율성만을 근거로 내세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나도 지금 당장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해서 무어라 결론짓기 힘들고 그럴만한 깊이도 아직 없지만, 내가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연장선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고민해봤다.

 

-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자신의 본 모습이었을 것이다. 준이치는 쓰라린 굴욕감을 느꼈다. 매스컴만 아니었으면 동생 아키오는 주변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을 터였다.

 

- 이 나라에서는 흉악 범죄의 피해자가 된 순간, 사회 전체가 가해자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피해자를 괴롭힌들 사죄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요.

 

- 형법이 강제력으로 지키려는 정의는 어쩌면 불공정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지닌 참사관이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정의라는 이름하에 심판하려 할 때 그 정의에는 보편적인 기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아무리 아들을 잃었어도 남겨진 아버지에게는 지켜야 할 생활이 있는 것이다. 매일 세 차례씩 먹고, 싸고, 자는 것, 지인을 만나면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노동으로 수입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 즉 정치가를 선거에서 당선시키기 위해 범죄에 손 댄 자들이 우선적으로 용서받고 있는 것이다.

 

- 특별 배급된 단팥방에 어쩔 줄 몰라하며 맛있게 먹어 치우는 살인범들. 어째서 그들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하는가. 이래서는 희생자들이 위안을 못 받지 않는가, 하며 난고는 일종의 충격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 똑같은 처지에서 제대로 살아온 사람도 수없이 많아. 너는 그런 사람들 얼굴에 먹칠하는 놈이야.

 

- 한번 교도소에 다녀오면 손목시계를 못차요. 수갑이 떠올라서요.

오랫동안 교도관으로 있었어도 그건 몰랐어.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입니다.

 

- 법률이라는 것은 항시 권력 측이 자의적으로 이용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Posted by 릴리06

2012.10.01-2012.10.07

 

추석 때 집에 가서 읽을 책을 찾다 예전에 동생이 '한 편의 헐리웃 영화'를 보는 것같은 스릴과 즐거움이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라 읽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초반부터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는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계속 읽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 소설의 매력이다.

 

'우와~ 정말 멋진 소설이다!'라고 끝내기엔 너무 많은 내용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음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전쟁의 잔혹성, 그리고 인간의 새로운 흉악한 모습들을 계속 느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고, 나는 이 좁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아둥바둥하고 있는 것인가, 어차피 100년 뒤엔 지금의 65억 인구는 모두 죽고 없을텐데... 라는 비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어느 정도의 픽션은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소설에 반영된 내가 모르는 세상의 현실의 문제가 나를 더욱 흥미롭게 했음에 틀림없는 오랜만에 만난 판타스틱한 책!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아는 세상은 참으로 좁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말 세상은 흥미로운 일들 투성이다.

 

- 불행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보는 타인 입장인지, 직접 격는 당사자 입장인지에 따라 완전히 견해가 달랐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선 함부로 이야기해선 안된다. 내가 모르고 내뱉었던 수많은 말들이 내가 똑같은 일을 겪었을 때 나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올 때 그 부끄러움이란 정말 말로 하기 힘든 지경이다.

 

- 불가능하다던 파란색 레이져의 발명을 둘러싸고 개발에 성공한 기술자와 그를 고용한 회사 사이에 법정 투쟁이 점점 확대되었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얻은 이익이 1200억 엔 중에 발명에 대한 대가로서 기술자에게 지불된 금액은 겨우 6억 엔이었다. 원래 200억 엔의 대가를 받아야 할 것을 빼앗긴 셈이었다.

...

"문명이 한번 멸망해 봐야 알겠지. 과학 문명을 다시 부흥시키는 건 이과밖에 없어. 문과 놈들은 아무리 지나도 전기조차 못 만들걸."

...

연구 생활이 몸에 배고 난 뒤 알게 된 것은 '이과는 살아가는 데 서툴다'는 사실뿐이었다.

...

"문과 사회에서는 거짓말이나 눈속임을 잘하는 놈이 출세하지만, 과학자는 거짓말 하나라도 하면 안 돼."

 

문과와 이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의심할 것 없이 이과적 성향(이과와 문과라는 것도 어쩌면 사람들에 의해 구분지어진 흑백논리일지도 모르지만)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면 나 스스로 그 흑백논리에 갖혀서 나는 문과적 과업들, 예를 들면 독서나 글 쓰기와 담을 쌓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최근에서야 든다. 요즘 나는 글 쓰기를 좋아한다. 내가 쓴 글을 다듬어 가고 내 생각을 정리해 나갈 때 왠지 모를 희열이 느껴진다.

 

어쨌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챙긴다고, 현재 이과연구자들은 재주부리는 곰이 되어버린 걸까? 아무리 좋은 연구를 해도 그것을 고용한 기업 사이와의 관계에서 과학자들이 이득을 취하기란 힘든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연구밖에 모르는 과학자들, 거짓말을 털끝만큰도 하면 안되는 그런 사람들은 의외로 순수해서 거짓말이나 눈속임을 잘하는 문과인들이 보기엔 쉬운 상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우리에겐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도덕성이 필요하다.

 

확실히 문명의 발전을 몇 백년씩 당길 수 있는 방법은 이과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를 좀 더 살기 좁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문과인들과 예술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실 이런 구분은 무의미한 것 같다. 문과이냐 이과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쨌든 우리는 한 명 한 명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 이 다음 세대의 인류가 출현할 수 있는 장소는 문명국이 아니라 주변과 교통이 단절되어 있는 미개척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지역에 사는 소수 집단에서는 개체 수준의 유전자 변이가 집단 전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남미나 아프리카 부족들 사이에선 자신들의 부족의 계승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근친상간이 많이 이루어지고 자연히 유전자 변이에 따른 기형 출산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형이라는 것, 보통의 인간이랑 다르다는 것이지 꼭 열등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 보통의 인간을 뛰어넘는 생물의 탄생의 가능성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흥미 진진

 

-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 2차 세계 대전 중에서 근거리에서 적 병사와 주우한 미군 병사가 총의 방아쇠를 당긴 비율 : 20%

최전선의 병사들은 자신이 죽으리라는 공포보다 적을 죽이는 스트레스를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지. 그래서 발포율을 높일 만한 심리학 연구가 시행되었고, 베트남 전쟁의 발포율은 95%까지 급상승했어. 사격 훈련 때 표적을 원형 표적에서 인간형 표적으로 바꾸고 진짜 인간인 것처럼 자동적으로 튀어나오게 했어. 거기다 사격 성적에 따라 가벼운 징계를 내리거나 보수를 주었지.

...

죽일 상대의 거리를 멀리 두는 것이 중요해. 두 가지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어. 심리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 예를 들어 적이 인종적으로 다르며, 언어도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다르게 되면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며 그만큼 죽이기 쉬워진다. 평소에도 다른 민족과 심리적인 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즉 스스로가 소속된 민족 집단의 우위성을 믿으며 다른 민족을 열등하다고 느끼는 인간이 전쟁에서 손쉽게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싸우는 상대가 윤리적으로도 열등한, 짐승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라고 철저하게 가르쳐 두면 정의를 위한 살육이 시작된다. 이러한 세뇌 교육이 모든 전쟁에서, 혹은 평소에도 전통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적국 사람들에게 '잽'이라거나 '딩크' 따위로 멸시하는 별칭을 붙이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

전쟁 당사자 중에서 가장 잔인한 의사를 가진 인간, 즉 전쟁 개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만큼 적으로부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없다. 살인에 뒤따르는 정신적 부담을 거의 받지 않는 환경에 있기에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잔학성을 더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

'사람은 어째서 전쟁을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명령하는 인간의 정신 병리를 먼저 해명해야 한다.

 

아프리카 소년병을 키우는 과정에서의 그 인간성의 잔혹함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추악했다. 어머니를 강간하고 칼로 찔러 죽이고, 옆에 동료를 물고 뜯고 싸우고 옆에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 전쟁의 광기. 지금 아프리카에선 많은 부족들 사이의 전쟁이 빈번하고 세계대국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진행형이다.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계속 있는한 전쟁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진정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사람들의 상처입고 황폐해진 마음, 그 마음이 계속 남아 이어지는 아주 무서운 행위라는 것을 아주 마음 아프게 느꼈다.

 

- 평소 정훈에게 감도는 부드러운 분위기는 '정'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겐토는 생각했다.

 

이 소설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이정훈이라는 한국 유학생. 일본인 작가가 정훈이라는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정보를 수집했으며 제대로 이해하고 썼음이 느껴지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 돈의 주변에는 얕은 인간만 모이네.

 

- 20만년에 달하는 인류 역사 중 의학이 발달되지 않은 약 100년 전까지 현생인류와 현저하게 용모가 다른 신생아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살해되었으리라. 인위적인 도태. 그중에서는 진화한 개체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를 없애려는 인간의 습성이 진화의 싹을 솎아내고 있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기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란 말일세.

...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Posted by 릴리06

2012.09.26-2012.09.28

 

 

책을 고를 때 내 마음의 상태가 반영되는 것 같다. 다시 뜨거워지고 싶었을까? 손미나를 작가로서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남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기로 해본다.

 

초반엔 그냥 아르헨티나에 대한 이미지를 머리에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탱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2부부터는 내용에 푹 빠져 읽어내려간 것 같다. 탱고에 담겨있는 사랑에 대한 철학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순간 매료되었던 것 같다. 탱고를 사랑에 비유한 노라의 이야기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탱고, 몸치인 내가 탱고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온전히 파트너와 교감하며 탱고를 추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올 겨울에 남미를 가볼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물리적인 거리만큼 심리적인 거리도 먼 곳이긴 한 것 같다. 예전 여행 준비와는 다르게 뭔가 맑은 날 햇빛처럼 '쨍'한 느낌이 아직 오지않아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남미에 대한 의지가 조금 더 생겼다고... 하자.

 

요즘엔 어떤 책이든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을 하나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 실제로 많은 수의 아르헨티나인들은 자신이 과연 누구인가를 고민하면서 평생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영원하 이방인처럼 살아간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사람은 스페인어로 말하면서 프랑스인처럼 생각하고, 유대인처럼 일을 하며 스스로를 독일인이나 영국인이라고 착각하는 이탈리아인이다'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기 직업 외에 예술적인 일을 하나씩 더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직업이 두개인 셈이지. 나도 마찬가지고......"

 

- 카를로스 가르델. 무엇보다 그는 아름다운 탱고 선율 속에 담긴 노랫말들로 아르헨티나인들의 아픈 상처와 한을 달래준 사람이었고, 그래서 가르델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나이팅게일'이라고도 불린다면서......

 

- 그의 말대로 인생이란 결국 혼자 걷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친 영혼과 가슴을 받아줄 누군가를 끝없이 찾는 것 또한 인간의 타고난 숙명 아닐까. 때로는 그 대상이 인연이 아닌 친구일 수도 있고, 삶의 여정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간 낯선 이일 수도, 또 한 편의 시나 노래일 수도 있겠지만,

 

- "탱고를 출 때 여자에게는 다리가 하나뿐인 거나 마찬가지야. 다른 하나는 남자의 것이라고 흔히 말하지. 꼿꼿하게 서야 하지만 그에게 다리 하나를 완전히 맡겨야 해. 사랑할 때도 그렇잖아? 정말로 상대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는 완전한 사랑이란 불가능하지. 그리고 절대 발이 땅에서 떨어져서는 안 돼. 항상 한 발을 바닥에 붙인 채로 사랑하는 사람을 쓰다듬듯이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움직여야 해. 탱고는 춤이 아니야. 탱고는 그저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거지. 사실 그게 다야. 그래서 기본이 더욱 중요해. 누군가와 함께 걷기 위해선 우선 혼자 잘 걸을 수 있어야 하지. 마치 인생이 그런 것처럼."

 

- 가까운 사이일수록 각자의 시간과 공간, 또 자유를 허용해야 그 관계가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말이지. 서두르고 재촉해서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란다.

 

- 그녀의 말대로 인간이기에, 누군가엑 의지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외로운 영혼, 그것을 받아주는 상대와 음악에 맞춰 자유오 행복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시간이 탱고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탱고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 저는 탱고의 모든 것을 알고 느끼고 싶습니다. 실은 가끔 게이 바를 찾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이미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탱고는 다른 춤과 달리 남자라도 여성의 스텝을, 그리고 여성도 남성의 스텝을 배우기 위해 역할을 바꾸어 춤을 연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탱고는 상대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 잠은 잘 때건 깨어 있을 때건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는 거지. 심장이 뛰고 있어도 꿈이 없다면 그것이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 인생이란, 그녀(수영)의 말처럼 참으로 신기한 일들로 가득한 듯하다. 그래서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세상을  품는 일은 분명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고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을 얻게 해주는 값진 일이라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해 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참으로 멋진 경험이라는 것 말이죠.

Posted by 릴리06

2012.09.18-2012.09.26

 

도서실에 갔다가 일본 소설이 읽고싶어서 집을 책이다. 그런데 초반에 조금 읽다보니 예전에 우리 나라에 이런 드라마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찾아보니, 맞다! 그 드라마의 원작.

 

원래는 일본에서 드라마 각본으로 처음 만들어진 이야기인데 드라마가 워낙 히트를 치면서 소설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드라마도 제작되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주인공을 내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그려보고 움직여볼 수 있는 상상력에 있는데, 계속 지진희와 엄정화 이미지가 떠올라서 그들이 내 머릿속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 드라마를 본 건 아니지만 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래서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성공하기 힘들다. 독자들의 상상력은 어떻게든 충족시켜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미 영상으로 접한 이야기를 (실화가 아닌 이상) 다시 책으로 보는 건 비추천!

 

결혼 못하는 남자 '구아노 신스케'는 자신의 삶을 너무 사랑하고 혼자하는 일에 익숙하고 편함을 느끼다 보니 결혼을 안하는 남자가 되었는데, 이런 생활이 오래되면 나중엔 결혼 못하는 남자가 되는걸까?

 

인생은 참 별 것 없다는 생각은 많이 든다. 그래서 즐겁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살아가냐는 문제이다. 물론 배우자도 매우 중요한 '누구'에 해당하는 사람이지만 그 외에도 나랑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사람들은 너무 많다. 그런 인연들이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만들어내는 아우라가 비슷한 인연들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이 끌어당기기 위해선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지!

 

- 신기한 우연 같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 "내겐 그 혼자라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

"달라요? 뭐가 어떻게 다른데요?"

"나느 어디까지나 잠재의식 활성화라는 자기 계발의 수단으로 탄 겁니다. 그쪽은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려고 탔잖아요."

 

- 같은 언어를 쓰는 인간끼리인데도 웬일인지 켄(애견)보다 더 소통이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 지정한 사랑이란 상대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힘이다. 평생의 반려를 정하는 조건이라면 일시적인 로맨틱한 기분이 아니라 이렇게 일치되는 가치관이 제일 중요한 거다.

Posted by 릴리06

2012.09.24

 

이외수하면 대학 시절 '장외인간'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외수라는 작가의 대단한 깊이와 통찰에 감탄했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짧막한 토막글을 모아 펴낸 이런 책은 왠지 작가 이외수의 진면목을 보기 힘든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나는 여자이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여자를 모르겠다. 사실 남자도 모른다. 나를 잘 알기도 힘든데 내가 다른 사람들을 알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래도 명확한 것은 나를 알아야 하고 내 세상의 크기와 깊이를 확장해 나가는 일이 우선되어야, 잘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다보니 세상은 참 악으로 부패해 가고 인조적이고 병적인 것들이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자 목적으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랑' 생각만으로도 가슴설레는 단어이다.

 

- 어떤 일이건 사심 없이 십 년만 투자하라. 십 년 동안 사심 없이 병뚜껑만 수집해도 저절로 철학이 생기고 운명이 변하고 세상이 그대를 주목하는 성과를 얻을 것이다.

 

- 외로움을 겁내지 말라. 그대가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대의 뼈저린 외로움은 물리칠 방도가 없으리니. 외로움은 평생의 동반자, 비록 그대가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하더라도 그놈은 한편생 그대 곁을 떠나는 법이 없으리라.

 

- 자신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사실을 먼저 가르치시게

 

- 때로 사랑은 예고편도 없이 막을 올리기도 한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시간, 전혀 예기치 못했던 장소에서 사랑은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 성적지수와 행복지수는 반드시 정비례하는가. 아니다. 교수가 얼굴에 웃을 떠올리는 횟수와 바보가 얼굴에 웃음을 떠올리는 횟수만 비교해 보아도 대답은 자명해진다.

 

- 물질의 빈곤이 그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빈곤이 그대를 빈곤하게 만든다.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차 있는 가슴이라면 어떤 사랑도 들어앉을 자리가 없다. 어떤 사랑도 들어앉을 자리가 없는 가슴에는 어떤 행복도 들어앉을 자리가 없다.

 

- 사랑할 때마다 실패를 되풀이하면 먼저 자신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잘못되지 않았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상대를 감당할 만한 내적 깊이를 소유하고 있는가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만 고집하는 성격을 버리는 연습도 해야 한다.

 

- 과감하게 현실을 탈피해서 이상에 도달한 사람들은 모두가 껍질이 깨지는 아픔을 겪어본 사람들이다. 껍질이 깨지는 아픔이 두려워 현실에 안주해 있는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힘으로는 하늘을 날지 못한다.

 

- 인간의 경우 사랑의 크기는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크기와 정비례한다.

Posted by 릴리06

2012.09.05-2012.09.18

 

요즘 매일 가벼운 책들만 읽어서 왠지 무거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졸업하고 선생님을 하고 있는 선배가 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졸업하면 당장 30명의 아이들과 부모 60명까지 100명의 가까운 사람들이 너가 어떻게 교육을 하는지 관심있게 지켜본다. 교직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대학생 시절에 교육철학을 잘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철학? 철학? 그 단어에서 오는 무게만으로도 선배의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가 되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선배의 말이 왜 이리 시시콜콜 다 맞게만 느껴지는지...

 

나도 나름의 교육철학은 있다. 근데 절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 쌓인 경험과 나의 생각을 통해서 현재도 진행형인,만들어져가는 철학이다. 그런 철학이 내가 학교에서 일을 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어 준다. 물론 내가 절대적이라 믿는 많은 것들도 변해가리라는 것을 알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어쨌든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을 현재 삶에 어떻게 적용시키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초반에는 열심히 감탄하며 읽었지만 뒤로 갈수록 모르는 철학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내용도 어려워져서 멘붕이 살짝 오려고 했으나... 어쨌든 다 읽음.

 

- 아등바등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우주라는 '큰 그림'에서 바라보라. 우주는 그대가 뭘 하건 개의치 않는다. 그저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오래 남지도 않을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없는 돈을 들여 산다." 경제학자 팀 잭슨의 말이다. 좋은 집, 멋진 옷, 비싼 자동차가 왜 필요할까? 허세를 버려라! 행복해지는 데는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 인간은 현상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불안해진다.

 

- 우리 모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어떤 힘이 있는지 잊어버렸다. 그래서 바깥에서 그 힘을 구걸한다.

 

- 사람들이 때때로 소외감을 느끼죠. 어떤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는지 우리를 판단하려 드는 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 말이에요.

 

-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당장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절망하지 않음으로써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우리의 믿음.. 이게 거의 전부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어 보이는가. 하지만 이 작은 창이 인간의 자유.자율성.자주권의 기초다.

 

- 회복탄력성과 정신건강은 특정 상황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 때문에 흥분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다.

 

- 미국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뚱뚱하고 가장 버릇없어요. 가난이 주는 '이점'을 거의 누려보지 못한 아이들이죠. 예를 들어 우리 아버지는 대공황 시절에 자라셨어요. 그래서인지 회복탄성력이 무척 강하셨죠. 오늘날 삶은 무척 풍요롭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평하고 있다는 건 눈여겨볼 일이에요.

 

- 아도는 철학이란 원래 반복적으로 실천되어야 하는 정신적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세상이 자신에게 빚진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예민하고,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서는 눈이 먼 사람이다.

 

- 스토아 철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욕을 해도 잘 참아낸다. 분노와 같이 스스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자신의 영혼에 해를 입힐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스토아 철학자'의 현대적 의미가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실 스토아 철학자들은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 그가 보기에 그런 것들은 머나먼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지금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음모였다. 호지킨슨은 "미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래의 어느 때인가는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다. 하지만 은퇴 뒤에 올 영광스런 날들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즐거움을 누려라." 우리는 되도록 일을 적게 하고, 할 수만 있다면 국가나 계급의 틀에서 빠져나가고, 인생의 술잔에서 가능한 많은 것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즐거움도 중독이 되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 더 큰 그림을 한번 보고 나면 더는 그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다.

 

- 그림으로 보면 자신의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우주적 관점에 놓게 되고, 불안한 자아는 경외감과 경탄 속에 잠잠해진다.

 

- 나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의식을 우주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사고와 의미에 대해 언어로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 정의대로라면, 의식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그것은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이용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 우리는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여길지 지나치게 걱정하고, 남들이 인정하지 않을까봐 너무 두려워한다. 그 결과 불안해지고 불행해지며 진짜가 아닌 삶 속에 갇힌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행동을 숨기지 말고 남들이 비웃거나 조롱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도록 단련함으로써 독립적인 개체로 서야 한다.

 

- 플라톤은 2 더하기 2는 항상 4가 되는 수학적 진실의 순수한 영역이 존재하듯, 변증법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진실.미.정의 같은 도덕적 가치들의 순수한 영역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 플라톤의 표현에 따르면, 인격은 내전 중인 사회, 또는 선장은 없고 모든 선원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자고 외는 배와도 같다.

 

 

Posted by 릴리06

2012.09.06-2012.09.13

 

 

때론 누군가 나에게 해주는 충고가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나 그 충고가 속물적이거나 편협한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느껴질 때는 더욱 그렇다. 나나는 딸 마리암에게 소설 초반에 이런 말을 한다.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라.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그걸 명심해라, 마리암."

 

이 충고 역시 마음에 와닿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곱씹게 되었다. 소설 마지막에 마리암의 회상 장면에서 이 충고는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이 소설을 쭉 다 읽고 나니 그 마음이 이제는 이해가 되고 정말 그렇게 살아온 그들이었구나 하는 안스러움마저 들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자신이 사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 그 비참함과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있는 소설이었다. 한편으론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길 참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내가 착하다는 생각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참, 세상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나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을 볼 때가 아니라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볼 때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는 조금 기특하기도 하고 이런 내 마음이 조금 고맙기도 하다.

 

 

할레드 호세이니 소설 '연을 쫓는 아이'를 예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1900원 행사할 때 샀었다. 소설에 대한 정보도 하나도 없었는데 왠지 끌려서 싼 맛에 주문했는데 역시 싼맛에 읽지 않고 있다가 시간 있을 때 읽어보았다. 그런데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희열과 충격은 정말 오래 남았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는 이민자들의 아픔,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종류의 감정들을 많이 느꼈다.

 

이 소설 속에도 마리암과 라일라, 이 두 여자를 통해서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의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예전에 중동에 가려고 아랍어도 배우고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공부하면서 봤던 내용 중에 이슬람에서 일부다처제를 하는 이유는 전쟁에 나간 남자들을 대신해서 남겨진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그 역사적인 배경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 땐 '우리가 알고 있는 부정적인 이슬람의 풍습이 사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들이구나.'하는 충격을 받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냥 정말 나쁜 남자들의 변명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부르카를 착용하는 것에 대해서 유럽에서 금지하는 법안이 생겼다는 것을 들었을 때, 종교적인 문화인데 왜 저런 것도 금지할까 문화 국수주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이슬람교 여자들이 부르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가니스탄!

 

그냥 전쟁중인 위험한 나라인 줄만 알았는데, 그 곳에는 고향을 떠나 떠도는 난민들과 인권조차 위협받는 많은 여자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죽어가는 내 가족들도 있는 우리와 비슷한 그런 곳이었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다네.

Posted by 릴리06

2012.09.04-2012.09.05

주인공 레베카는 신용카드 고지서를 펼쳐보기 전에 얼마쯤 썼나 마음 속으로 예상해본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고지서를 펼쳐보면 항상 그 금액은 예상액의 2배 가량. 믿을 수 없는 마음에 혹시 내가 쓰지 않은 항목은 없는지 살펴보기 시작하고 모르는 항목이 나오면 사기가 있었다며 흥분한다.

정말 나도 여러번 느끼고 경험했던 감정이다. 하지만 레베카보다는 내가 조금 더 소비하기 전에 이성적인듯...

객관적으로 읽다보면 한심한 일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이 공감할만한 심리들이다. 읽을수록 저렇게 생활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신용카드에서 체크카드로 옮겼는데 경제 안전성이 많이 나아진 듯 하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경제 생활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현명한 소비를 하자는 흔해빠진 교훈이지만 실천이 필요한 때!

- 생각만 고쳐먹으면 어디서든 돈을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바턴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돈을 쓰느라 너무나 바빠서 잊고 살았을 뿐이지 공짜로 즐거움을 누릴 길도 많다. 공원, 박물관, 그리고 시골길을 거니는 소박한 기쁨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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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릴리06

2012.08.23-2012.28.28

 

 

알코올중독자 쇼코와 동성애자 무츠키가 서로 계약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

 

다문화전공을 시작하고 나서 다문화 아이들과 같은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졌다. 그리고 팟캐스트 '나는 딴따라다'에 나오는 김조광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얼마나 성적 소수자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느껴졌고, 그들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 것 같다. 김조광수처럼 사회적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소수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높이는데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동성애자들은 사회적 관습을 깬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의 변화 속도보다 더 빠른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 난 오히려 그들의 용기와 틀에 박히지 않은 개방적인 사고가 부럽기도 하다. 때론 평범한 건 재미없다.

 

많은 소수자들이 더 당당하게 발 내딛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얼마 전에 본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김조광수의 영화랑 비슷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소설이 현실을 많이 반영한다고 봤을 때 생각보다 이런 일이 흔한 일일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기형적인 가족을 만들게 되는 피해자이다.

 

다양한 분야의 소수자들의 인권이 향상되고 특수성을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숙제가 한국 사회에는 왜 이리 먼 일처럼 느껴지는지...

 

예전부터 느끼고 생각한 일이지만 내가 만약 소수자였다면 (어쩌면 나도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지도..) 우리 나라에서 살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일반일들도 틀에 죄어 살고 있는데 그들을 받아일일 사회적 여유와 공간이 부족하다.

 

-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Posted by 릴리06

2012.08.10-2012.08.26

 

 

내가 유년기를 보낸 80년대 20대를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신경숙의 가장 유명한 소설 엄마를 부탁해도 아직 못 읽어봤는데 그녀의 다른 소설을 읽어본다.

사실 도서관에서 몇번을 빌렸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봐서 너덜너덜 더러워진 책을 읽기가 싫어서 다시 반납한 적이 있다.

 

그녀의 필체는 나를 마치 80년대 정윤의 삶으로 이끌어가는 것만 같아서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느껴지고 자기 꿈과 열정을 펼쳐야할 20대를 민주화 운동에 쏟으며 시련을 겪었던 사람들. 우리는 그들이 이뤄놓은 성과 위에서 우리의 꿈을 펼치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정치가 정말 민주화 되었는가?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예전처럼 대통령 마음대로 헌법을 고치고 군대를 동원해서 밀어부치는 일은 당연히 없지만 그 대신 더욱 교묘해지고 비밀스러워지진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었다. 살기좋아졌다고 안도하며 즐거워하는 우리의 모습 뒤편에 그들이 웃음짓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뼛속까지 뿌리깊은 정치에 대한 불신)

 

어쨌든 80년대를 치열한 20대로 살아본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책!

 

 

- 내.가.알.아.서.할.게

내가 그에게 내뱉은 말은 결국 나를 고독하게 했다.

 

- 누군가 약속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말이야. 믿을 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 손을 잡으면 놓을 때를 잘 알아야 한다. 무심코 잡은 손을 놓는 순간을 놓치면 곧 서먹해지고 어색해진다.

 

-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 폭력적으로 된다.

 

-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Posted by 릴리06